‘은행이 코인’인 시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가야 할 길

  • 등록 2025.06.30 14: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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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스테이블코인 사업진출에 집중... 非은행기업 손잡고 합종연횡 가속화
한은 CBDC 일단멈춤...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 인뱅처럼 금융사 지분 참여
“테라·루나 사태 잊으면 안 돼, 안전성 문제·관리 책임 강화 등 숙제 해결해야”

 

이재명 정부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가격이 크게 변동하지 않도록 설계된 ‘디지털 화폐’가 자산시장의 새로운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로 달러화 같은 법정화폐나 실물에 가치가 연동되도록 설계된 디지털 화폐는 발행회사에 1달러를 맡기면 1달러어치 코인을 계좌에 넣어주는 구조다.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된 이 시스템은 현금을 사용하듯 쓸 수 있고 결제 과정이 간편하고 24시간 연중무휴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이미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1분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된 스테이블코인 규모가 무려 57조원에 달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할 예정이라는 ‘디지털 자산 혁신법’은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제도화해 디지털 자산시장 생태계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신뢰성 확보의 문제

 

정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본격적인 도입을 앞두고 ▲발행 주체와 안전성 문제 ▲준비자산(Reserve) 신뢰 확산 ▲정부 관리체제 신설 및 감시 책임 강화 등 세 가지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우선 발행 주체의 문제다.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의 신뢰와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코인 발행을 은행으로 한정하면 확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빠른 기술 혁신이나 서비스 다양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의 참여가 바람직하다. 미국에서는 민간기업 업체인 테더(USDT)와 USDC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홍콩 모두 비금융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두 번째는 준비자산(Reserve)과 관련한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발성에 기반한다. 코인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 인출을 요구하면 바로 현금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은행에 돈을 맡길 수 있는 것도 언제든 인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고, 그 믿음이 흔들릴 때 ‘뱅크런’이 발생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가치 안정을 위해 담보 자산을 예치해 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는 발행한 코인 가치 이상의 준비자산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단기 국채나 현금만 담보로 인정한다. 우리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유 자산 운용으로 수익을 올려야 하는 코인 발행사로서는 곤란한 일이다. 대형화 없이는 수익을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방어선이라는 게 없다. 대규모 인출 사태에 취약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국채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도 우려된다. 만약 스테이블코인이 인기를 얻어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면 코인 회사는 그만큼 더 국채를 사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시장을 규율하고 감시하는 책임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느냐의 문제다. 국가의 보증은 물론 예금자 보호장치도 없는 코인이 제 역할을 하려면 준비자산의 안전성, 유동성,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준비금의 상태는 실시간 증명은 물론, 감시와 감독이 필수적이다. 또한 보안과 위험 관리 측면에서 구조적인 취약점에 대해서도 대책은 필수요소이다. 블록체인 코드로 돌아가는 코인은 프로그래밍 오류나 해킹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운영사의 내부 통제 미비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별도의 조직 신설이 불가피하다.

 

 

●은행, 증권사 등 스테이블코인 시장 진출...공동 발행 등 상표권 출원 전쟁

 

간편 결제사 카카오페이에 이어 대형 은행인 KB국민·하나은행 등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잇달아 출원하면서 원화 코인 발행 경쟁에 뛰어들었다. 게임사와 증권사, 핀테크 업체들이 앞다퉈 발행 준비에 나서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금융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원화(KRW)에 자사 브랜드KB를 붙인 ‘KBKRW’를 비롯해 ‘KRWN’‘KRWKB’‘KRWL’등 모두 32건의 상표권을 출원했고, 하나은행 역시 이날 HanaKRW,KRWHana 등 총 48건의 상표를 출원 신청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도 ‘BKRW’와 ‘KRWB’, ‘KKBKRW’, ‘KRWKKB’ 등 4개의 상표를 3개의 항목으로 나눠 총 12건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특히 오픈블록체인·DID협회에 가입한 스테이블코인 협의체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iM뱅크·수협·케이뱅크 등 9개 은행이 참여하고 있으며, 합작법인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하는 사업 모델을 구상 중이다.

 

은행권의 참전이 본격화하면서 스테이블코인 시장 선점을 둘러싼 경쟁에 불이 붙는 모습이다. 카카오페이와 게임 업체 넥써쓰(NE)를 시작으로 NHN의 핀테크 부문 자회사인 KCP와 미래에셋증권의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도 상표권을 출원했다.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이 해외송금·지급결제 등 실물 결제 수단으로 널리 쓰일 경우,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을 우려해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선점에 매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향후 은행 사업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러한 상황이 오기 전에 먼저 주도권을 잡자는 방어적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핀테크 기업과 스타트업은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주목하고 있다. 결제·송금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와 고객 예치금을 통한 이자 수익 등이 대표적이다.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1위인USDT의 발행사 테더는 이자 수익을 바탕으로 지난해 130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강희창 포필러스 공동창업자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금융 인프라를 자사 시스템이나 다른 플랫폼으로 연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해 신뢰도가 있는 은행을 중심으로 허용 범위를 규제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 한은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안정성과 준비자산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경우 디페깅(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연동 자산의 가치와 괴리되는 현상)과 대규모 상환 요구에 따른 ‘코인런’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경우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은 막을 수 없는 기술의 흐름이라고 입을 모은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급결제 측면에서 볼 때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 활용은 막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한은 CBDC 사업 2차 테스트 앞두고 잠정중단...민간 스테이블코인 탄력 받나

 

그러는 와중에 한국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중앙은행 주도 디지털화폐(CBDC) 사업이 2차 테스트를 앞두고 잠정 중단됐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은행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국회·민간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가열되자, 한은이 CBDC 사업을 보류한 것이다.

 

29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은은 최근 CBDC를 통한 실생활 결제 수단 활용 1차 테스트(프로젝트 한강) 참여 은행들에 2차 테스트 논의를 잠정 보류한다고 이같이 통보했다. 한은은 당초 2차 테스트를 올해 4분기 중 시작할 계획이었다.

 

한은은 중앙은행 주도의 디지털화폐와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병존 여부 등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민간 중심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활성화되자 불확실성 최소화 차원에서 추가 테스트를 보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더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오픈블록체인·DID협회(OBDIA)에는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iM뱅크·수협·케이뱅크 등 9개 은행이 참여 중인데, 여기에 부산은행·경남은행·토스뱅크도 가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내 최대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가 주요 금융지주사 등과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주장과 달리 핀테크 회사와 은행이 손잡는 ‘절충형 모델’이 부상하고 있어 사업이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해시드 경영진은 최근 복수의 금융지주 최고위 관계자들을 연쇄적으로 만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에도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격을 부여한 미국 사례가 제시됐다. 미국 상원이 지난 17일(현지시간) 통과시킨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령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은행뿐 아니라 신용조합, 비은행 기관 등도 연방정부나 주정부 인가만 받으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까지 해시드 측의 사업 제안에 일부 금융지주사들은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시드 측은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 금융지주사에 기술적인 조언을 드리고 있다”며 향후 사업 모델에 대해선 “저희가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은이 CBDC 사업을 잠정 중단하면서 각 은행은 비(非)은행들과 컨소시엄 구성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한 은행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가 은행이 될지 빅테크(대형IT기업)·핀테크(금융기술업체)가 될지 몰라서 두 가지 상황 모두 다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국내 안착의 열쇠는 ‘실효성’이다. 지금까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된다고 해도 일반 소비자에게는 뚜렷한 쓸모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 중 약 99.82%가 달러 기반이다. 지난 1분기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USDT가 83.1%를 차지했고 USDC는 16.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현재 국내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암호화폐를 구매할 때는 대부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먼저 산 뒤, 해당 코인으로 해외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구매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된다고 해도 해외 거래소가 달러 코인만 지원한다면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역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져 대중의 수용성이 높아지면 다양한 형태로 화폐를 대신할 수 있다.

 

김성진 금융위원회 디지털금융정책과 과장은 “금융위는 기본적인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공략을 뒷받침할 실무적인 내용은 마련하고 있지만 앞으로 조직 개편 뒤 실무자의 결단과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참고해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 “‘한은의 CBDC냐, 민간의 스테이블 코인이냐’라기 보다는 전세계적인 관심과 더불어 도입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며 “테라·루나 사태도 어쩌면 일종의 스테이블코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법안을 잘 다듬은 뒤에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승수 기자 sss23@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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