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에너지' 손잡은 사우디...한국은 해상풍력 기자재 국적 논란

  • 등록 2025.08.01 04:55:24
크게보기

아람코, 주요 데이터센터에 중국 ‘딥시크’ 운용...첨단기술 분야 '밀착'
韓 안보위혐 명목 에너지사업에 중국 배제...공급망·기술주권 딜레마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중국과 전통적인 석유 거래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방산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산 해상풍력 기자재를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며 에너지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어, 미중 신냉전 구도 속에서 에너지 주권 확보를 위한 선택지에 이목이 쏠린다.

 

◇ 사우디-중국, 에너지에서 AI·방산까지 협력 확대

 

최근 아람코는 중국이 개발한 대형언어모델(LLM) AI ‘딥시크’를 자사 주요 데이터센터에 도입하며 기술 협력을 본격화했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CEO는 딥시크 도입에 대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자원 절약에 기여하는 흥미로운 알고리즘”이라고 평가했다. 아람코는 올해 5월 중국 국영 방산기업 CETC와 함께 방산 AI 분야 공동연구 추진 계획도 발표했다.

 

 

아람코와 중국 간 협력은 에너지 분야에서 뿌리가 깊다. 아람코는 2005년 중국 국영 에너지화학 기업인 시노펙, 미국 민간 에너지 기업인 엑손모빌과 함께 푸젠성 정유 시설을 확장하며, 대규모 프로젝트 협력을 시작했다.

 

2012년 두 기업 간 협력은 사우디 서부 얀부 지역 정유시설 공동 건설로 이어졌고, 2020년대 들어서는 포괄적 MOU를 통해 석유화학 협력 인프라를 더욱 확장했다. 올해는 아람코와 시노펙이 세운 합작법인 야스레프의 석유화학 단지 확장과 하루 약 165만 배럴 규모의 중국향 원유 수출 계약을 통해 양적인 성과도 확보했다.

 

사우디와 중국 간 협력 강화는 미국이 셰일가스 수출로 에너지 외교 전략을 전환하고, 중동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거두어 들이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중국이라는 거대 원유 수요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중장기 생존 전략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 한국, ‘중국 배제’ 기조 속 해상풍력 사업 논란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 정치권은 중국산 해상풍력 기자재에 대해 ‘안보 위협’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해상풍력 기자재의 중국산 의존이 심각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구 의원은 국내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거론하면서 중국산 핵심 장비가 해저케이블, 해상터빈, 항공감시장치 등에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구조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당시 산업부장관 후보자인 김 후보자에게 “장관직에 취임하면 관련 기자재 선정 과정에서 안보적 요소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며, 당시 김정관 장관 후보자를 가르치듯 일방적인 주장을 했다. 

 

문제는 중국산 기자재에 대한 일방적 배제가 국내 해상풍력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오스테드, 퍼시피코에너지코리아, RWE 등 서구권 개발사들이 국내 해상풍력 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며 해당 기업들과 협력하는 유럽계 제조사들이 터빈 등 주요 기자재를 납품하고 있다. 또한 많은 서구권 기업들이 외국 금융 자본을 유치해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중국산 기자재의 가격 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자국 재생에너지 기업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지원하며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국내 공기업도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중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정치권은 기술력이나 경제성보다 ‘중국 혐오 정서’에 입각한 접근을 보이며 시장경제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에너지 주권 확보, 균형 외교가 해답될까?

 

이처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은 점차 선택의 기로에 몰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안보와 동맹을 내세워 중국 배제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기술 주권을 위해 실용적 접근을 주문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중국 간 협력처럼 미국 등 특정 국가에 일방적으로 기울기보다 다자적 협력과 실용외교 전략을 구사해 에너지 산업을 확장하는 것이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정치적 구호에만 매몰되기보다 경제적 실리를 기반으로 한 ‘균형 외교’가 한국 에너지 주권 확보의 핵심 열쇠가 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사우디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나라고 우리나라는 에너지를 수입하는 국가로서 우방국들과 정책 방향성을 같이 가야 하는 입장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현재 중국이 미국의 공급망 전체를 다 석권하는 상황에 대해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이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며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사우디와 같이 중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은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윤희 한국정책학회 에너지정책연구회 위원장(고려대 교수)는 지난주 한국정책학회 특별 세미나에서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딜레마'와 '기술 주권' 대안을 모색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 위원장은 "현재 에너지 분야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기술 패권을 온전히 넘겨주는 꼴이 되고, 유럽산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며 "터빈 등 해상풍력 기자재 주요 부품의 기술력이 아직 부족한 국내 부품사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6월 해상풍력 설비 입찰에서 국산 R&D 터빈에 대규모 우대가격을 제공하는 등 자국산부품비율(LCR) 제도 부활시켰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국산 부품사를 살리는 정책에 대해 하 위원장은 "국내 발전사가 해상풍력 사업 공급에 있어 한국산 부품을 일정 부분 포함시키는 식의 가점제 방식을 정책화하는 방법을 논의한 적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좋은 중국산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면서 국산 부품사가 '기술 독립'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강화하는 것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승범 기자 jsb21@m-economynews.com
Copyright @2012 M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회사명 (주)방송문화미디어텍|사업자등록번호 107-87-61615 | 등록번호 서울 아02902 | 등록/발행일 2012.06.20 발행인/편집인 : 조재성 |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2길 4. 5층 | 전화 02-6672-0310 | 팩스 02-6499-0311 M이코노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