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 기업들에 종전 이후 재건 사업 협조 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하면서 발발했다. 이후 미국 4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러-우 전쟁 종전을 공약하면서 종전 이후 재건 사업에 세계 각국 기업들이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그동안 한국 정부도 관련 기업들과 함께 꾸준히 재건 사업 지원을 위한 검토와 준비를 진행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급물살을 탈 것처럼 보였던 종전 협상은 기대와는 달리 현재 미궁에 빠져 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이후 3년이나 지난 만큼 종전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적극적으로 재건 사업을 추진하는 분위기다. 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올렉시 쿨레바(Oleksiy Kuleba) 우크라이나 재건부총리 겸 영토개발부 장관이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인프라 협력 컨퍼런스(GICC 2025)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쿨레바 부총리는 국내 철도 차량 제작 업체들과 회동하며 재건 사업을 논의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우리 정부에 4억5000만 달러(약 6200억원) 규모의 차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023년 5월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20억 달러(약 2조7800억원)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를 지원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쿨레바 부총리는 이와 관련해 한국수출입은행을 방문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과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만큼 향후 관계 형상에 따라 국내 기업의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수례 향뱡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 HD현대건설기계 방문한 우크라이나 정부
지난 18일 마리나 데니시우크(Maryna Denysiuk) 영토개발부 차관과 코스티안틴 코발추크(Kostiatyn Kovalchuk) 차관, 스호믈린 세르히(Sukhomlyn Serhii) 재건청장, 미콜러이우 주정부, 국가비상사태청 관계자 등 고위급 인사 10명이 HD현대건설기계 울산캠퍼스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와 한국건설기계연구원 주관으로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건설기계 역량 강화 초청 연수’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연수단은 이 기간 동안 건설장비 운용과 유지보수, 재난복구 및 친환경 시공 기술 등 재건에 필요한 노하우를 공유받고 건설장비 공급 및 교육사업과의 연계 방안을 논의했다.
HD현대인프라코어와 HD현대건설기계는 전쟁 전 우크라이나 건설기계 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차지했으며, 전후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설장비 공급 등 우크라이나 정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
한국의 건설장비는 세계 각지의 재난 현장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조영철 HD현대사이트솔루션 사장은 “이번 재건 협력은 교육과 기술 전수를 통해 복구 기반을 마련하고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데니시우크 차관은 “이번 한국 방문은 전후 재건 과정에서 필요한 산업 발전의 경험과 기술력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며 “HD현대와의 파트너십이 우크라이나의 복구와 미래 성장에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국내 은행들도 뛰어들고 점은 흥미롭다.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최근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지점을 열었다. 브로츠와프 지역은 LG에너지솔루션 등 2차 전지 관련 한국 기업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우리은행도 지난 4월 폴란드 바르샤바에 지점을 열었다. 바르샤바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산업 등 국내 대표 방산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이밖에 신한은행은 이미 2014년 설립한 브로츠와프 사무소를 갖췄고 국민은행은 지난해 바르샤바 현지 은행에 ‘코리아데스크’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은행들이 폴란드에 지점이나 사무소를 개설하는 이유는 이미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경제적·인도적 지원하고 있으며 향후 재건 사업의 중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전쟁 피해 규모 주택·운송·상업/산업 순으로 커
재건 관련 기업들이 재건 사업 중추 지역인 폴란드에 몰리니 은행들도 자연스럽게 그 지역을 공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재건이 가장 필요한 곳은 어느 부문일까.
지난 2월 발행된 그로쓰리서치 ‘다가오는 기회, 우크라이나 재건’ 보고서에 따르면, 직접 피해액 기준 가장 큰 패해를 입은 부문은 주택(약 560억 달러, 37%), 운송(약 340억 달러, 22%), 상업/산업(약 160억 달러, 11%) 순이다.
특히 주택 부문의 경우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총 주택 재고의 10%가 손실되거나 파괴돼 전국의 200만개 이상의 주택이 피해를 입었다. 운송 부문 역시 290개 이상의 교량, 8400km가 넘는 고속도로 및 국도, 50km가 넘는 철도 등이 손상되거나 파괴됐다. 아직 전쟁 중이기 때문에 피해 규모는 이보다 더 많이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 700조 시장 국내 기업 얼마나 가져올까
문제는 국내 기업이나 한국 정부가 재건 사업을 얼마만큼 수주해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느냐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재건 사업은 국제사회의 우크라이나 지원 기금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전쟁을 겪은 우크라이나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로쓰리서치 보고서는 국가별 지원 약정액은 미국 1189억 유로, EU 기관(EU집행위·EU 이사회·유럽투자은행 합계) 1157억 유로, 기타 공여국 1651억 유로라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 약정액은 30.5억 유로를 약정했다. 미국에 비해 많이 적은 금액이다.
건설업계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지원 금액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민간이 직접 참여하기는 매우 어렵고 반드시 정부가 뒷받침해줘야 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만약 민간이 참여하게 된다면 폴란드와 같은 접경 지역이나 주변국에서 건설 경험을 가진 기업들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국 정부는 2023년 9월 우크라이나 정부와 공동으로 6대 선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6대 프로젝트는 △키이우 교통 마스터플랜 △우만시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 △보리스필 공항 현대화 △부차시 하수처리시설 △카호우카 댐 재건 지원 △철도노선 고속화 등이다.
국토교통부를 주축으로 구성된 원팀코리아에는 삼성물산, HD현대건설기계, 현대로템, KT, 포스코 인터내셔널 등 18개의 주요 민간기업이 참여했다. 2024년 2월 국토교통부는 주요 7개국 주도의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 협의체인 ‘우크라이나 공여자 공조 플랫폼’(MDCP)에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수주 규모는 한국 정부가 얼마나 지원했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 미-러 협상 불확실성 커 구체적 계획 어려워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종전 협상이 종결되지 않아 재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도 “730조 이상의 사업 규모인 만큼 우크라이나 재건 시장은 국내 건설 업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이 열리면 반드시 도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기술·관리연구실 실장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 원조를 지원한 모든 국가에 잠재적인 기회요인이지만, 현재 미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재건 사업을 위한 계획을 구체화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또 그는 “우리가 거는 기대들이 언제쯤 가시화 할지 알 수 없다”면서 “정치적인 문제들이 선행적으로 해결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건설기업 입장에서도 개별 액션을 취하기에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기대감을 가져도 될 것 같은 시그널도 나온다. 쿨레바 재건부총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복구 과정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나’라는 질문에 “한국은 고속철도, 공항, 재생 에너지, 에너지 저장 시스넴, 스마트시티 설루션, 공공주택 등 분야에서 우리를 지원할 수 있다”면서 “한국은 최악의 파괴 속에서도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국가의 모범이다. 우리는 한국과 새 ‘드니프로강의 기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드니프로강의 기적’은 ‘한강의 기적’을 빗댄 말로 풀이된다. 이런 만큼 우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우크라이나 정부라면 한국 기업들도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