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기업들은 숫자에 몰입한다. 매출과 영업이익, 비용 집행률, KPI 달성률이 종합되며 한 해의 성과가 평가된다. 하지만 이 숫자들은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일했는지, 어떤 흐름 속에서 성과가 만들어졌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단기적인 결과는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은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기업 현장에서 20년 넘게 조직을 들여다보며 확인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단기 성과는 숫자로 보여주나 지속 가능한 성장은 조직의 리듬이 만들어 준다. 조직의 리듬이란 일의 흐름, 의사결정 방향, 협업화 방식, 구성원의 에너지까지 한데 맞물려 돌아가는 일 종의 ‘조직의 호흡’이다. 이 호흡이 안정적일수록 기업은 지속 성장가능한 경영을 추진 할 수 있다.
◇빠른 조직과 좋은 조직은 다르다
많은 기업이 ‘속도’를 성과의 근거로 삼는다. “이번 제품은 계획보다 빨리 출시했다”, “의사결정을 빠르게 처리했다”는 문장이 곧 경쟁력의 증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빠른 조직 이 반드시 좋은 조직은 아니다. 속도를 중시하는 조직에서는 몇 가지 패턴이 반복된다. 업무는 빠르게 처리되나 리듬이 일정하지 않아 구성원 간 에너지 격차가 커지고,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구성원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해결되지만 근본적인 조직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된다. 반대로 리듬이 있는 조직은 다소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일의 흐름이 안정적이다. 업무의 속도가 일정하고 예측이 가능하며 구성원들이 자신의 템포를 잃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의 체계와 습관이 유지되며, 번 아웃이 적고 장기적인 성과가 도출되는 특징이 있다. 빠른 조직이 순간의 성과를 낸다면, 리듬 있는 조직은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이 결국 지속 가능한 성장을 완성한다.
◇조직의 리듬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
조직의 리듬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드러나는 그 리듬의 바탕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작동하고 있다. 첫째는 의사결정의 리듬이다. 의사결정이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좋은 조직은 기준이 명확하고 예외가 적으며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다. 한 번 흐름이 흔들리면 조직 전체의 리듬은 즉시 무너지게 된다.
둘째는 협업의 리듬이다. 협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습관이다. 회의가 불규칙하게 길어지고, 정보 공유가 체계적이지 않으며, 역할이 모호한 순간 조직은 가장 먼저 리듬을 잃게 된다. 반대로 협업의 흐름이 정형화 된 조직은 정보가 일정한 박자에 맞춰 움직이며, 구성원의 몰입도가 높아진다.
셋째는 구성원의 에너지 리듬이다. 조직의 체력은 구성원의 심리적 에너지에서 시작된다. 집중할 때 집중하고, 회복할 때 쉬며, 위기에는 즉시 정렬하는 조직일수록 리듬의 힘이 더욱 단단 해진다.
◇성과 부진은 숫자보다 먼저 리듬에서 무너진다
조직의 성과가 흔들릴 때는 공통된 신호가 발견된다. 의사결정이 느려지는 데 이유를 설명할 수 없고, 업무량은 늘어 나지만 성과는 정체된다. 구성원의 피로감이 누적돼 연말이 다가올수록 감정적 이슈가 증가한다. 문제는 해결되나 근본적 패턴은 바뀌지 않고, 위기 순간에는 조직이 힘을 모으지 못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러한 모든 징후는 결국 조직 리듬의 균열에서 비롯된다. 성과 부진은 숫자가 아니라 리듬에서 먼저 드러난다. 흐름이 흔들리고, 의사결정이 어긋나고, 협업의 호흡이 맞지 않기 시작할 때 이미 성과는 뒤처지기 시작한 것이다. 리듬 경영의 새로운 시각 최근 경영 현장에서는 ‘리듬 경영’이라는 관점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조직의 속도와 에너지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게 하는 경영 방식이다. 리듬 경영을 결정 짓는 다섯 가지 핵심 축을 살펴보면 ‘속도보다 흐름을 중시하고’, ‘사람의 에너지를 고려하며’, ‘반복되는 업무 패턴을 최적화하고’, ‘업과 의사결정의 일관된 박자를 만들고’, ‘조직 전체가 같은 방향을 보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이러한 리듬이 갖춰지면 조직은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불필요한 업무가 줄며, 구성원 피로도가 낮아지고, 위기 상황 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성과보다는 ‘리듬’을 점검하라
현장에서 기업과 함께 연말 점검을 진 행할 때 나는 다섯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올해 우리 조직은 어디에서 리듬이 흔들렸는가? 그 리듬을 깨뜨린 핵심 원인은 무엇인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병목은 무엇인가? 올해 만들어 ‘좋은 리듬’은 무엇인가? 내년 성과로 이 어지기 위한 구조는 갖추어져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성과 검토가 아니라 조직의 다음 연도 전략 프레임워크를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연말에는 성과표보다는 조직의 리듬을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 경영자는 지휘자다 경영자의 역할은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의 박자와 흐름을 설계하고 조정하는 ‘지휘자’에 가깝다. 조직의 에너지를 읽고, 병목을 파악하고 흐름이 흔들릴 때 즉시 조정하며, 특정 인물에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경영자의 핵심 역할이다.
좋은 지휘자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조직 전체가 흔들림없이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이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지휘자이다. 내년을 준비하려면 숫자보다 리듬을 먼저 정비해야 한다. 올해의 성과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내년의 성과는 올해의 리듬에서 출발한다. 연말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 우리 조직은 어떤 리듬으로 일할 것인가?
빠른 조직은 단기 성과를 내지만, 리듬 있는 조직은 불확실한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기업은 결국 흐름을 잃지 않는 조직이다. 그리고 그 리듬을 만드는 것이 경영의 본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