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기 추진됐던 산업은행 이전과 자산 매각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관여했던 인물들이 다시 핵심 보직으로 거론되면서 내부 반발이 터져 나왔다. 특히 당시 정책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부행장, 수석부행장 등 주요 요직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되자, 산업은행 노조는 “역사의 퇴행”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윤석열 정부 시절 추진됐던 산업은행 이전과 자산 매각 정책이다. 당시 정부는 재정 확보를 이유로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 빠르게 돈을 만들자”는 기조를 내세웠고, 산업은행 이전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 부지와 관련한 부동산 구조 조정, 이른바 ‘부동산 세이프’ 논의가 있었고, 최근 공개된 문자 메시지 등을 보면 특정 종교 단체가 배후로 거론되는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처음에는 대기업, 특히 롯데그룹 쪽으로 부지를 넘기는 시나리오를 예상했지만, 지금 드러난 자료들을 종합하면 통일교와의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당시 이를 주도하거나 묵인했던 인물들이 지금 다시 요직으로 복귀하려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김현준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최근 통일교 관련 이슈를 보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과 산업은행 이사회 간 문자 내용에서 ‘산업은행 부동산 PF’ 얘기가 나오는 걸 보고 ‘배후가 롯데가 아니라 통일교 아니었나’라는 얘기가 다시 도는 것”이라며 “다만 저는 그 정도 수준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책임과 반성 회피하는 윤석열 정부 인물들 이사회 진입 초읽기
현재 논란의 중심에는 산업은행 이사회가 있다. 이사회 안건에는 내년도 사업계획과 함께 임원 인사 문제가 포함돼 있고, 부행장 인선이 마지막 안건으로 상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이 인사가 강행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이사회가 열리는 시점을 ‘디데이’로 규정하며, 회장실 앞에서 천막 농성과 단식에 들어갔다. 천막 농성은 7일째, 단식은 3일째 이어지고 있다.
노조의 반발은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선다. 핵심은 ‘책임과 반성’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3년간 직원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당시 경영진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 시절 정책을 앞장서 집행했던 인물들을 다시 중용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갈등은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과의 면담 과정에서 더욱 깊어졌다. 김 위원장은 “은행 역사 70년 만에 처음으로 내부 출신 회장이 발탁돼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당시 책임이 있던 부행장들이 직원들께 사과했으면 한다’는 취지로 의견을 전달했지만, 박 회장은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박 회장이 “산업은행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었고 모두가 피해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그 논리라면 역사 속의 모든 부역 행위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정당화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김 위원장은 “군대도 명령을 받지만, 앞장서 행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구분된다”며 “당시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인물들까지 피해자로 묶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시기 산은 이전 반대 투쟁이 “2022년 6월 7일부터 2025년 6월 5일까지 1094일 동안 매일 아침 집회를 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3일 대선 이후 정권이 바뀌고, 하루 뒤인 6월 5일 전임 강석훈 회장도 퇴임해 ‘이제는 달라지겠구나’ 기대했는데, 예전에 은행에 반하는 방향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다시 주요 보직으로 가는 걸 보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노조가 특히 문제 삼는 것은 “윤석열 정부 때 부산 이전에 앞장섰던 인물”의 핵심 보직 복귀 가능성이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두 사람이 거론된다. 한 명은 강석훈 전 회장의 비서실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부산 이전을 위해 만든 ‘부산 이전 준비단’ 단장이었다”며 “이 두 명을 주요 보직으로 올리겠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주요 보직 인사 논쟁 넘어...150조 기금 운용 체계가 새 쟁점으로
산업은행 내부의 긴장은 인사 문제를 넘어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최근 발표된 150조원 규모의 전략 산업 투자 구상 역시 노조의 비판 대상이다. 노조 측은 이 기금이 사실상 대기업과 첨단산업 위주로 설계돼 있으며, 지역과 중소·중견기업, 문화산업에는 거의 배분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K-컬처나 지역 경제를 언급하지만 실제 숫자를 보면 0점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기금이 기존 산업은행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별도의 기금 조직을 은행 내부에 또 하나의 ‘회사’처럼 얹는 구조라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인력은 줄어든 상태에서 업무는 늘어나고, 신규 인력 충원 역시 기획재정부의 승인 없이는 쉽지 않은 구조라는 설명이다. 노조 관계자는 “150조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최소 100명 이상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첨단산업 기금을 150조원 규모로 운영하게 되면서 산은 역할이 더 커졌고, 그렇기 때문에 70년 역사상 처음 나온 내부 회장이 성공하길 바랐지만, 큰 역할을 수행하려면 노사 갈등 없이 가는 게 맞다”며 “임원 인사에서 이렇게 갈등이 터진 것은 상당히 안타깝다”고 했다.
노조는 이번 투쟁의 방향을 단순한 ‘인사 반대’가 아니라 국정 철학과의 불일치 문제로 설정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 충성했던 인물들을 다시 중용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온 국정 기조, 특히 분배와 지역, 노동 중심의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노조는 향후 보도자료와 성명서를 통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노조가 권력을 달라는 것도, 자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산업은행이 새로운 정부의 국정 방향에 맞게 다시 설 수 있도록 최소한의 명분과 정당성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더 강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단식을 시작했으니, 만약 인사가 강행된다면 투쟁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며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산업은행을 둘러싼 이번 갈등은 단순한 내부 인사를 넘어 과거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와 책임, 그리고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사회와 정부의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나올지에 따라 금융 공공기관 개혁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