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이 조금 낯설다. TV를 켜도 신문 기사나 휴대폰 뉴스를 봐도 정치 뉴스는 건너뛴다. 분노도 없고 기대도 없기 때문인데 관심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한 결과를 보면서 문득 그 압도적 숫자는 정당정치의 성취가 아니라, 더 이상 질문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신호처럼 읽히는 것이었다.
동시에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낙선자를 지지한 사람들의 표가 사표가 되어 그들의 정치적 의사는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절대 다수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선거가 과연 민주적일 수 있을까? 다수의 승리가 곧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패배한 선택들이 제도 안에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구조라면, 선거란 참여를 독려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무력감을 학습시키는 과정이 되지 않는가 이런 회의가 들었다.
이대로 가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정치의 토대였던 ‘정당’ 시스템이 머지 않아 무너지고 말겠다는 예감도 스친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정당보다 더 나은 제도가 있다는 확신은 없다. 정당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 시민의 정치적 삶을 조직하는 중심축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하다.
거리 유세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환호와 야유가 교차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의 정치는 디지털 화면 속에서 소비된다. 참여는 클릭으로 대체되고, 선택은 알고리즘에 둘러싸인다. 그 결과 정치적 미래는 ‘선택의 확장’이 아니라, 무력감의 축적으로 다가온다. 보다시피 이미 사회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행정은 관성처럼 작동하고 경제 역시 그렇다.
트럼프 미 대통령처럼 제도를 흔드는 인물이 등장해도 일상의 체감은 의외로 크지 않은 듯하다. 시장은 요동치지만 삶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도,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는다. 리더가 있어도, 없어도, 세계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치는 과연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예전에는 정치가 사회의 방향을 결정했다. 지금은 정치가 이미 굴러가는 시스템 위에서 미세 조정만 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뉴욕타임스 오피니언(2월 10일 자) 지면에 “그들은 서구를 지배했지만, 지금은 소멸해 가고 있다”는 안톤 예거(Aaton Jäger,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강사)의 글을 읽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서구의 정당들은 조직과 회원 기반을 잃어가며 영향력이 약해져 왔고 전통 정당 간의 경쟁이 시민의 정치적 선택과 연결되는 방식이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세계는 SNS, 뉴스, 문화 소비까지 모든 것이 정치적 언어로 포장되고, 누구나 의견을 내고 논쟁이 끊이지 않지만 그렇게 떠들고 참여해도 실제 정책 변화나 삶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다시 말해 감정과 의견이 넘쳐나지만, 그것을 정치적 결과로 바꿔줄 정당의 역량이 진화하지 못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정치적 발언은 넘치지만 정치적 효능감은 사라진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부는 정치에서 등을 돌리는 건 아닐까. 분노하지 않기 위해서, 헛된 희망을 품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무관심은 방관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방어다. 이것이 더 이상 응답하지 않는 정치에 대한 솔직한 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