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대법원서 IEEPA 막히자 ‘글로벌 15%’로 선회...중국은 반사이익, 한국은 복합 타격 우려
- 232·301조까지 겹치면 관세 ‘다층화’...대미 수출기업은 가격·원산지·투자 전략 재설계 압박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 세계 상호관세’ 조치에 제동을 걸자,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글로벌 단일관세’라는 대안을 꺼내 들었다. 국가별로 25~50%까지 차등 적용하던 상호관세 대신, 전 세계 수입품에 최대 15%를 일괄 부과하는 방식이다. 형식은 단순해졌지만, 법적 근거와 정책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관세율 조정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의 통상 권한 범위를 둘러싼 사법·행정부 간 힘겨루기, 그리고 ‘관세-대미투자 연계 전략’의 향방을 가르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다.
◇ 대법원 “IEEPA는 관세 권한 아니다”...상호관세의 법적 기반 붕괴
미 연방대법원은 20일(현지시간) 6대3 의견으로,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한 것은 법적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했다. IEEPA는 원래 국가 비상상황에서 해외 자산 동결이나 금융 제재를 가능하게 하는 법률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확장 해석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했고,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왔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에서 “헌법은 과세 및 관세 권한을 의회에 부여한다”며 “IEEPA는 대통령에게 포괄적 관세 부과 권한을 명시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IEEPA를 근거로 한 상호관세는 법적 효력을 상실했다. 한국에 적용됐던 상호관세 역시 무효가 됐다. 다만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부과된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관세는 이번 판결과 무관하다.
이 판결은 단순히 관세율을 되돌린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통상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그간 유지돼 온 ‘관세를 지렛대로 한 대미투자 유치 전략’의 법적 정당성도 흔들리게 됐다.
◇ 트럼프의 ‘플랜B’는 무역법 122조...150일짜리 글로벌 관세
대법원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대안은 1974년 발효된 무역법 122조다. 무역법 122조는 국제수지 악화 등 지급 불균형이 발생했을 경우, 대통령이 최장 150일간 최대 15%의 임시 수입부과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회의 추가 승인 없이 일시적으로 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활용 가능한 카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대법원의 터무니없고 반미적인 판결을 검토했다”며 “즉각적으로 전 세계 국가에 대한 10% 관세를 법적 최대치인 15%까지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십여 년간 미국을 갈취해 온 국가들에 대한 응징”이라고 표현하며 추가 조치를 예고했다.
그러나 122조 관세는 본질적으로 ‘임시 조치’다. 150일 이후에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즉 장기적 협상 구조를 설계하기에는 제도적 한계가 분명하다. 기존 상호관세가 국가별 차등을 통해 협상 압박을 가하는 전략이었다면, 글로벌 단일관세는 ‘속도전’에 가까운 전술적 대응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 232·301조 병행 가능성...관세 정책의 다층화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안보 위협 품목 관세)와 무역법 301조(불공정 무역행위 대응)를 병행해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32조는 이미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적용되고 있으며, 301조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보복관세에 활용돼 왔다. IEEPA가 막힌 상황에서, 개별 품목과 특정 국가를 조합한 ‘다층적 관세 구조’로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관세 체계는 단일 전략이 아니라 △122조 단기 전면관세 △232조 안보 관세 △301조 국가별 보복관세가 중첩되는 구조로 변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기업 입장에서 가장 불확실한 시나리오다.
◇ 중국은 숨통, 한국은 부담?...동맹국의 역설
국가별 고율 차등관세가 사라지고 15% 단일관세로 전환될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를 적용받았던 중국·브라질 등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기존에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 또는 예외를 기대했던 한국·영국·EU 국가들은 실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자동차·배터리·철강·반도체·정유·화학 등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상호관세가 무효가 됐다고 해도 232조 품목관세는 유지된다. 여기에 15% 글로벌 관세까지 겹칠 경우, 가격 경쟁력 악화와 마진 압박이 불가피하다.
또 다른 변수는 ‘관세-대미투자 연계 딜’의 재구성이다. 그간 한국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설비투자를 통해 관세 리스크를 완화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포스코·현대제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관세의 법적 근거가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기존 합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관세의 문제가 아니라 ‘통상 질서’의 문제
이번 사태는 단순히 트럼프식 보호무역이 강화됐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의 판결로 대통령의 통상 권한 범위가 제한되면서, 미국 통상정책은 사법·행정부·의회 간 정치적 충돌 구도로 재편됐다. 122조 관세는 150일짜리 임시 해법일 뿐이며, 이후 의회의 동의 여부에 따라 정책 방향이 급변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단일세율이라는 외형적 단순함과 달리, 법적 기반이 취약한 ‘한시적 관세’가 반복 발동될 경우, 투자와 생산 전략을 중장기적으로 설계하기 어려워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적으로 허용되는 새로운 관세를 결정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분명한 신호를 던졌다. 관세는 대통령의 정치적 무기가 아니라, 헌법이 정한 권력 구조 안에서 행사돼야 한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세계 무역 질서 속에서 경제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공급망 재편과 통상 불확실성에 선제 대응하고 있는 우리의 혜안(慧眼) 있는 판단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