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식품 제조업체 창업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작은 소스 공장 하나를 차리려 해도 설비 비용, 임차료, 위생 설비, 냉장·냉동 시설, 포장라인 구축, HACCP 인증 비용까지 합치면 수억 원이 훌쩍 넘는다. 여기에 원재료 확보 비용과 인건비, 물류비까지 더하면 청년이나 소규모 창업자가 이를 감당하기에는 벽이 너무 높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브랜드는 서울에, 제조는 지방에서’라는 이원적 구조를 선택한다. 당연히 서울은 마케팅과 유통의 도시가 되고, 제조는 외곽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지금, 이 구조는 재검토할 시점에 와 있다.
최근 K-푸드 수출은 124억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고, 5년 연속 100억 달러를 상회하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라면, 김, 김치, 소스류, 과일 가공품 등 다양한 품목이 글로벌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과 달리 제조 현장의 디지털화 수준은 매우 낮다.
◇ 스마트공장의 필요성
국내 식품 제조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률은 2.3%에 불과하다. 근로자 10인 미만 기업은 이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식품산업은 여전히 영세 구조에 머물러 있으며, 원재료 가격 변동과 인건비 상승, 물류비 증가 등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 제조 원가가 흔들리면 수출 경쟁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농림축산식품부는 시설 현대화 자금과 수출 지원 정책을 통해 식품산업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지원 규모는 제한적이었고, 설비 교체 중심의 전통적 접근이 많았다. 반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제조업 전반에서 스마트공장 보급과 고도화를 추진해 왔다. 스마트공장 도입 기업은 생산성이 평균 30% 이상 향상되고, 품질은 40% 이상 개선되며, 원가는 10~15% 절감된다는 성과가 보고된다. 특히 소규모 기업일수록 개선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문제는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스마트공장을 구축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장을 소유하지 않아도 제조할 수 있는 구조, 즉 공유 스마트제조 인프라에 기초한 ‘공장 없는 창업’ 모델이다.
◇ 공장 없는 창업
서울은 이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도시다. 서울에는 가락시장과 강서시장이라는 대규모 식자재 집적 인프라가 존재한다. 이 공간은 단순 도매 기능을 넘어 집하·저온·분산 물류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허브다. 여기에 스마트 소분·전처리 시스템을 결합하면 규격화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이는 원가 변동성을 줄이고, 수출형 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다.
서울형 농식품 스마트제조 클러스터의 구조는 명확하다. 공유 스마트공장, 자동화·스마트 HACCP 시스템, 공동 저온물류, 공동 브랜드 운영이 결합된 플랫폼이다. 기존의 제조업체 창업 모델은 설비 구축비와 HACCP 인증 비용, 냉장·냉동 인프라 확보 등으로 인해 초기 투자금이 수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공유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면, 설비는 공동 사용 구조로 전환되고, 스마트 HACCP은 통합 운영되며, 저온물류 역시 공동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창업자는 설비를 소유하지 않고도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 초기 투자비가 대폭 줄어들어 창업 문턱이 획기적으로 낮아진다.
◇ 청년의 아침밥
서울시는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는 한편, 중앙정부 정책과 연계된 플랫폼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서울이 제조혁신 정책과 수출 전략을 실현하는 공간적 실험장이 될 수 있다. 서울은 소비의 도시를 넘어 제조와 브랜드를 동시에 창출하는 도시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공유 제조 인프라만으로 산업이 구축되는 건 아니다. 그것이 안정적 수요와 결합할 때 비로소 가능성이 열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청년 아침밥’ 정책이 산업 전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서울의 청년은 배가 고프다. 단지 식욕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에 쫓기고, 월세에 눌리고,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청년에게 아침밥은 사치가 되어가고 있다.
농촌 청년 역시 배가 고프다. 농산물 판로는 불안정하고, 가격은 출렁이며, 장기적 투자를 감행할 토대가 약하다. 도시와 농촌, 두 청년은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구조적 문제에 묶여 있다. 생산과 소비, 제조와 유통이 분절된 구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생산을 늘리거나, 예산을 보조하거나, 소비를 권고하는 방식에 머물렀다. 그러나 단순한 확대 정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구조를 연결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수요가 있어야 생산을 위한 투자가 이어지고, 표준화된 조달이 있어야 제조가 산업이 되며, 데이터 활용 체계가 작동할 때 비로소 가격과 수급이 관리된다.
서울은 이 연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서울의 인구, 청년 밀집도, 도매시장 인프라, 디지털 역량을 활용해 ‘청년 아침밥-스마트 제조-상생 조달’ 패키지 정책을 실행한다면, 단순 복지를 넘어 제조업과 농업을 동시에 살리는 모델이 가능하다. 정책의 출발점은 ‘아침’이다. 청년의 아침 결식 문제는 건강과 학습, 노동 생산성과 직결된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접근하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핵심은 아침밥을 공공수요로 설계하는 것이다.
◇ 도시와 농촌 청년의 연결 고리
서울시가 캠퍼스, 역세권, 산업클러스터 인근에 ‘청년 아침센터’를 설치하거나,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동네 식당을 아침센터로 지정하여 참여시킨다면, 하루 수천에서 수만 식의 안정적 수요가 형성된다. 이 수요는 단순 소비가 아니라, 계약과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앵커(anchor) 수요다.
서울이 하루 5만 명의 청년에게 아침을 제공한다고 가정해 보자. 1식 평균 6천 원만 잡아도 연간 약 1,000억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된다. 10만 식이면 2,000억 원 시장이다. 이는 단순 급식 사업이 아니라 중견 식품산업 규모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매일 반복되는 정기 수요라는 점이다. 외식 시장과 달리 변동성이 낮고, 예측 가능한 수요다. 이 예측 가능성은 농촌 청년에게는 3~5년 단위 계약의 근거가 되고, 도시 청년에게는 제조 설비 투자와 인력 고용의 근거가 된다.
아침밥 정책의 또 다른 핵심은 데이터다. 결제 수단을 ‘서울형 K-푸드 카드’로 통합하면, 메뉴·품목·원산지·친환경 여부·단가가 동시에 기록된다. 이 데이터는 단순 소비 통계가 아니라, 수급 운영의 기초 자료가 된다. 어느 요일에 어떤 메뉴가 많이 소비되는지, 특정 품목의 수요가 급증하는 시점은 언제인지, 친환경 제품의 선택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정보는 농촌 청년의 다음 작기 계획과 직결된다.
데이터가 흐르면 예측이 가능해지고, 예측이 가능하면 가격 변동성이 줄어든다. 결국 청년 아침밥 정책은 복지와 산업을 넘어, 데이터 기반 수급 운영 체계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이 정책은 단순 급식 지원책이 아니다. 도시 청년에게는 창업과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고, 농촌 청년에게는 안정된 농산물 판로를 보장하며, 서울시에는 물가 관리와 산업 육성의 수단이 된다. ‘청년 아침센터’(지정 식당)가 늘어나면, 관련 식재료와 제조업 매출도 증가한다. 공동 제조 라인을 통한 기업 성장 정책을 민간 시장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의 실험장이자, 공공조달 기반의 초기 시장이 된다.
◇ 아침밥이 산업이다
도시는 소비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산업을 설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서울이 가진 시장 규모는 강력한 정책 도구의 산실이 될 수 있다.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서울을 단순한 소비 도시로 남겨선 곤란하다. 신산업과 소비가 조화를 이루는 세계적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정책과 행정 부문에서 시민 삶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설계 능력을 갖춰야 한다. 외견상 청년 아침밥 정책이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산·제조·물류·데이터·가격 정책이 모두 들어 있다.
아침 한 끼를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이 연결되고, 청년이 산업의 주체로 서며, 유통 구조가 재편된다면, 서울은 물가를 통제하는 도시가 아니라 물가를 설계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청년의 아침을 지키는 일은 단순 복지가 아니라 산업정책이며, 농정 개혁의 시발점이자 도시 전략이다. 서울시가 이를 택한다면, 청년은 배부르고, 농촌은 지속가능하며, 도시는 더 강해질 것이다.
결국, 서울이 수요를 조직하면 산업은 따라온다. 서울이 시간을 보장하면 농업은 미래를 설계한다. 서울이 데이터를 축적하면 가격은 관리가 아니라 설계의 대상이 된다. 공장을 소유하지 않아도 창업할 수 있는 도시, 아침 한 끼가 산업을 움직이는 도시, 청년의 삶이 정책의 출발점이 되는 도시…. 그 도시가 서울이라면, 서울은 더 이상 소비의 수도가 아니라 수요를 설계하는 산업 수도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