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타오른 촛불, 대한민국을 뒤덮다

  • 등록 2016.11.07 16: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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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의 화살 직접 대통령에게 향해


[m이코노미 최종윤·이홍빈·이승엽 기자]

증거는 찾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었을까.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모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있을 만한 일이냐”라고 되려 목소리를 높였던 정부의 말이 언론보도에 의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밀접한 관계를 맺은 정황들이 하루하루 양파를 까듯이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은 직접 대국민사과를 통해 “정권초기 도움을 받았다”면서 관계를 인정했고, 관계부처에 머물던 의혹의 눈길은 그대로 청와대로 돌려졌다. 뒤늦게 검찰이 수사의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시민들은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면서 직접 거리로 나섰다. 대학가,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종교계, 문화계 등 전국적으로 시국선언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10월29일 전국은 촛불로 다시금 환해졌다. 현장을 찾아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0월29일 일찌감치 찾은 광화문 청계광장은 입구부터 몰려드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어린 학생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현장으로 들어섰다. 예정된 6시보다 한 시간 가량 이른 시간임에도 청계광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찼다.


살짝 떨어져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던 한 중년남성(60세)은 “최근에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논란이 돼온 일련의 사태로 국민들이 그동안 쌓인 것들을 터뜨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뭔가 의사표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왔다”면서 “그래야 사람들이 말하는 하야, 퇴진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이 사람들이 봐야 느끼지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30년 지기 친구라는 옆의 남성은 “우리가 그동안 힘들게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는데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꾸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면서 “이제 그야말로 터질 게 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갑자기 찾아온 차가운 날씨도 몰려드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나둘씩 켜져 가며 모여드는 촛불은 어느 새 광장을 가득 메웠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퇴진을 큰소리로 외쳤다.


경찰추산 7천명, 주최측 추산 3만명이 모인 이번 촛불집회는 오후 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진행됐다. 촛불집회 현장은 집회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어린 학생부터 백발의 노인, 여기에 아이를 안고 나온 부모들까지 몰려나오며, 현 시국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10대에서 70대까지 세대불문 몰려든 청계광장


북받쳐 오르는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도 시민들마다 제각각이었다. 일부 시민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라는 구호를 목청껏 외치며 청계광장을 가로 질렀고, 또 다른 시민들은 한 손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과 또 다른 손에는 붉게 타오르는 촛불을 쥐고 차가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청계광장 곳곳에는 장문의 대자보를 써 붙인 피켓을 몸에 걸친 학생들이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기도 했다. 홀로 대자보 피켓을 들고 서 있던 동국대학교 박병수 학생(25세)은 “사람들이 이렇게 거리로 몰려나온 이유는 국민의 목소리를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못 듣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면서 “최순실 게이트라는 사건이 터진 뒤 어떻게 1분30초짜리 녹화방송으로 사과를 대신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청계광장 거리 한쪽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한 퍼포먼스도 펼쳐지고 있었다. 최순실, 재벌, 부패관료, 기득권 가면을 쓴 시민들은 국민과 박근혜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의 몸에 실을 묶어 뒤에서 조종하는 인형극을 펼쳐보였다. 이날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은 연신 플래쉬를 터트리며 퍼포먼스에 관심을 가졌다.




이날 퍼포먼스를 기획한 이효상(36세) 씨는 “현 시국에 대해 울분에 찬 청년들 20명을 주축으로 이번 퍼포먼스를 진행하게 됐다”며 “웃기면서 슬픈 현 상황에 울상만 지을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풀어보자는 의도로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스크를 쓰고 현 상황을 우습게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펼쳐 보인 이효상 씨는 “현 시국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넘어 이제는 슬픔을 느낀다”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비리와 부패를 넘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찌 이렇게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군중이 모인 청계광장 안쪽에는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음에도 현장으로는 계속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4학년 김주란 학생은 “외대 총학에서 이 집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고, 오늘 집회를 위해 50명 정도 참가했다”며 “한 개인이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 뿐만 아니라 A부터 Z에 이르기까지 국정 전반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최순실 씨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이번 사태에 대한 검찰수사가 이뤄지면서 각종 소환과 압수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나라의 명운이 달린 만큼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라며 성역없는 수사가 진행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김주란 학생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라도 끝까지 행동하는 시민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스스로 물러날 때를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외국어대학교는 28일 한국어를 포함한 10개 언어로 시국선언을 낭독했으며, 현 사태에 대한 입장을 철회하지 않겠다”며 투쟁을 이어간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췄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리인일 뿐”


이날 촛불집회에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노회찬 의원, 표창원 의원 등 정치계 인사도 참여해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며 “대통령이 지금 떠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더 나빠지고 한반도가 더 위험해 처하겠느냐. 이미 나빠질게 없을 만큼 망가졌다. 더 위험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며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이어 “이제는 탄핵이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자가 아닌 대리인일 뿐이므로 국민이 언제든 내 쫓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시장의 연설에 청계광장에 모인 3만여 시민들은 광장이 떠나갈 듯 이재명 시장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노회찬 의원도 “누가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었나. 정부는 아직도 이런 국민의 마음을 알지도 못한다”며 “이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의 하야다. 오늘도 내일도 박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촛불로 함께 해야 한다”면서 민심을 어루만졌다. 아울러 “박근혜가 하야해서 국정공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야하지 않기 때문에 국정 공백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이번 사태의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하야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성난 민심을 막아선 경찰의 방패


1시간30여 분간의 촛불집회 이후 시민들은 청계광장-광교-종각-종각2가-인사동-북인사마당으로 이어지는 행진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시민들은 당초 행진 코스에서 청와대 측 방향인 광화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순식간에 해일처럼 밀려드는 3만여 시민들은 순식간에 광화문 사거리를 가득 메웠고 경찰은 세종대왕상 앞에 전 병력을 배치하며 간신히 시민들의 행렬을 막아섰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광화문 일대에서 분노한 시민들과 이를 막아선 경찰의 대치는 오후 8시께부터 수 시간 동안 이어졌다. 경찰의 방패 앞에 가로막힌 시민들은 “비켜라. 경찰은 국민을 지켜라”고 외치며 경찰 병력의 해산을 촉구했다. 하지만 경찰 병력은 더욱 견고하게 방패를 모았다. 더욱 견고하게 진열을 정비하는 경찰 병력에 분노한 군중들은 경찰 진영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방패에 직접 몸을 부딪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치가 길어질수록 분노한 시민의 파도는 더 크게 몰아쳤고, 견고했던 경찰 진영에도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경찰 방패를 하나씩 손으로 뜯어냈고 시민들의 손에 순식간에 뜯겨나온 경찰 병력은 군중 틈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분노한 군중의 화살은 경찰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경찰의 방패를 손에서 손으로 옮겨 대열에서 이탈돼 군중 틈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경찰들의 손에 다시 쥐어주었다.



일부 시민들은 상기된 얼굴의 경찰의 어깨를 토닥이며 젊은 경찰의 놀란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6시30분 촛불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청계광장을 지키고 있었다는 주진호(가명, 27세) 씨는 “대통령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모르는 척하는 행동은 안 된다”며 대통령은 하루 빨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처음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 상황 속에서 종종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폭력시위로 변질될까 두려웠는데 다행히도 평화시위를 외치는 대부분의 시민들의 목소리에 시민들 스스로 자중하는 모습을 보
이며 끝까지 평화시위를 이어가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고 덧붙이면서 다음 촛불 시위에도 참여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경찰도 시위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도로를 점거하게 된 시민들에게 이전에는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즉시 해산해 주십시오”라고 응대한 반면 이날은 달랐다. 종로경찰서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라며 도로 점거를 풀고 인도로 올라와달라고 거듭 방송을 거듭했다. 이후에도 경찰은 크게 시민들을 자극하지 않고, 방송으로 거듭 호소했다.


광화문 일대를 촛불로 가득 메웠던 시민들은 경찰의 간곡한 호소에 조금씩 뒤로 물러났고 오후 10시께에는 절반가량의 시민만이 남아 못다 한 분노의 외침을 쏟아냈다. 그러나 시민들도 분노를 무력시위가 아닌 울분 섞인 목소리로 토해내며 평화시위를 이어갔다.


29일 시민과 경찰의 대치는 오후 11시께 막을 내렸다. 이에 시민들과 극한의 대치 상황을 벌인 서울지방경찰청은 “행진 도중 신고 코스를 벗어나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든 시민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도 있었으나, 경찰은 시민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고 대처했으며, 시민들도 경찰의 안내에 따라 이성적으로 협조해 주었다”면서 시민들에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전국으로 퍼지는 시국선언
… 국민들의 시선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정
… 고등학생들도 동참 눈길


29일 전국적인 촛불시위 이후, 최순실 씨가 귀국해 31일 검찰에 출두했다. 이후 검찰 조사에서 최 씨가 각종 혐의를 부인하면서 검찰은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긴급체포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 씨가 귀국 후 30시간을 허용한 검찰이 이후 긴급체포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야권은 “이미 직무유기” “제기된 의혹 확인도 못하는 검찰이라면 국민이 퇴출할 것”이라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최순실 씨의 귀국과 함께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29일 이후 매일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전국에서는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 대학생들과 교수 등 학계는 계속 시국선언을 하고 있으며, 종교계·문화계까지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11월1일에는 바른불교재가모임, 불교인권위원회, 불교환경연대 등 ‘불교단체 공동행동’이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라며 시국선언을 했고, 대학가에서는 경희대학교 총학생회가 “‘박근혜-최순실’ 유린한 민주주의는 그들의 사유물이 아닌 국민의 주권”이라며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들이 박근혜 정권의 즉각 퇴진을 명하고 있다”면서 시국선언을 했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국민이 위임한 주권을 올바르게 행사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은 이번 사태에 대한 즉각적이고 성역없는 수사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숭실대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직원노조도 시국선언문을 공개했고, 인천대, 동아대, 원광대 등 전현직 교수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시민단체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광화문 분향소에서 11월1일 시국선언을 했다.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피켓을 들고 이 자리에 섰다”면서 “자격이 없으므로 오늘 이 순간부터 대통령이라는 글자를 떼어 버리겠다”면서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는 고등학생들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한겨례는 서울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지난 28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헌법은 민주법치국가의 근본이고 가장 신성한 법으로 결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없다”면서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는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헌법을 그 가림판으로 쓰려 했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고 국가를 우롱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최순실 씨가 귀국하고 30시간이라는 시간을 준 검찰이 이후 긴급체포하면서 향후 검찰수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동안 논란이 돼온 안종범·안봉근·정호성·우병우 등을 경질하면서 청와대 인적쇄신을 강행했다. 청와대 핵심이었던 이들은 수사선상에 오르며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국민들의 시선은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향하고 있어 향후 국민들의 선택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MeCONOMY November 2016

최종윤, 이홍빈, 이승엽 기자 cjy@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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