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classic)을 읽는 것의 중요성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그 난해한 내용과 무게(?)는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의 말처럼 “고전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이 되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면,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더욱 주목하고 곱씹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참된 의미의 고전이란 그 질적인 가치 뿐 아니라 후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향력을 미치는 작품이다.
특히 ‘교육’에 관한 다양하고 방대한 논의 가운데 루소의 『에밀』(1762)은 루소 스스로도 중요하게 여겼던 ‘교육’에 관해 다룬 교육학의 고전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32개가 넘는 출판사를 통해 번역되어 출간된 교육학의 기본서로 불리는 그의 교육사상은 찬찬히 생각하며 고민해야 할 명저이다. 본 칼럼은 특히 공교육과 가정교육의 진자운동 같은 현 시대 교육의 혼란 속에서 교육과 부모의 역할을 재논의 한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한 시각에 산책에 나섰기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산책에 나서는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칸트는 책을 읽다 산책을 빼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이 바로 루소의 『에밀』이라고 한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프랑스 혁명 당시 자유민권사상과 계몽사상의 기초를 놓은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저서 『신엘로이즈』(1761), 『사회계약론』(1762)과 함께 교육에 관한 고전이라 불리는 『에밀』(1762)은 루소 스스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교육’에 관한 다양한 그의 사상을 집약한 책이다.
루소는 『에밀』(책의 원제는 『에밀, 교육에 대하여』 이다)에서 자연과 사회, 자연인과 사회인의 대립, 자연의 우위 등 『학문 예술론』(1750) 이후 자신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내용을 한층 발전시켜 새로운 인간의 형성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의 계몽적 사상의 바탕이 된 ‘자유’라는 개념은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에 의해 약 반세기에 걸쳐 배양된 것으로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한 것’으로 현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여전히 주는 의미가 크다.
최고의 교사는 부모
스위스 제네바에서 가난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난 루소는 어머니가 루소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죽자 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다. 10세 때는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 숙부에게 맡겨졌으며 어려운 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저서 『에밀』은 1762년에 완성한 책으로서 루소 식의 자연 예찬과 인위를 배격한 철학을 교육론으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루소는 자식을 낳고 기르기만 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임무 중 3분의 1밖에 하지 않은 셈이라고 말한다. 또한 로마의 사법관 카토는 만사를 제쳐놓고 아기와의 시간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두었음을 한 예로 비유한다.
“최고의 유모는 어머니이며 최고의 교사는 아버지이다. 부모는 자신의 직분에 따라 혹은 방식에 있어 서로 일치해야 하고 협력해야 한다. 아이에게는 유능한 교사보다도 분별력 있는 아버지의 교육이 더 낫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것은 단순히 어머니가 유모의 역할에만 머물고 교육은 아버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서 양육의 의무가 경시되었던 당시 프랑스 사회의 맥락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7세기 후반과 18세기 프랑스의 보육은 시골 출신의 유모가 부모를 대신해 도시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이는 사회에서 유아의 보육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았었고, 당시 프랑스 사회 문제였던 높은 영아 사망률을 줄이고 어머니 역할의 중요성(모성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루소 등에 의하여 주장되기 시작하였다. 곧 자녀의 양육을 유모에게만 맡기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한 것으로 “아이들은 반드시 유모차로 옮기고 유모는 반드시 아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법률이 그 당시 정해진 것도 이러한 맥락과 유사하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교사로서의 아버지’의 역할 강조이다.
“유능한 교사보다 분별력 있는 아버지의 교육이 더 낫다”라고 말한 루소의 사상은 약 2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곱씹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루소는 “아버지들은 사업이나 직장의 의무 등을 가장 우선시하는데 아버지의 의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제일 뒤로 미루는 아버지로서의 의무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매일 매일의 삶과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아버지의 의무를 어디에 놓고 그것을 어느 정도 비중 있게 접근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동시에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육아와 교육에 대한 균형적인 일치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루소는 책 『에밀』 에서 이러한 부모의 동등한 의무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자식에게 젖을 주어 기르기를 게을리 하는 어머니의 남편이 자식교육을 게을리 한다고 놀랄 것은 없다. 가정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은 한 획만 잘못되어도 전체의 조화는 깨지고 만다.”
즉, 루소는 부와 모의 역할을 동일한 무게로 강조하고 있다. 18세기 당시 유모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린 어머니의 양육태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어린 아이에 대해 게을리 교육하는 아버지의 경시된 역할을 오히려 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사로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에밀』에는 플루타크 영웅전의 이야기를 통해 소개한다. 로마의 유명한 사법관 카토는 자식을 요람 시절부터 자신의 손으로 기르며, 어머니가 자식을 운동시키거나 목욕을 시킬 때면 만사를 제쳐놓고 사법관 카토가 달려올 정도로 자식을 보살핀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전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한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티누스는 황제가 된 이후에도 손자들에게 직접 글씨 쓰는 법과 수영을 가르치며 학문의 기초를 일깨워 주었고, 손자들이 잠시도 황제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는 오늘날 사람들이 읽으면 그 시절에 그와 같이 하찮은 일(손자를 돌본 일)들을 즐기던 그 소인배들에 대해 조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틀림없이 그들은 오늘날의 대인들처럼 옹졸하고 무능한 인물이었을 테니까.”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티누스가 손자들을 위한 교육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루소는 그러한 부모 또는 조부모 등에 행해지는 가정교육의 역할을 강조하며 그것을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 당시 18세기 사회는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