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반란이 시작됐다(8-)

  • 등록 2023.09.11 13: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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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무 기자가 간다- 고랑’에 풀 심는 초생재배로 병충해 예방


초생재배를 설명하기 전에 농사와 관련한 우리말을 알아 보자. 농사짓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농사에 딸린 말도 달라 지거나 사라졌다. 경운기,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이 나오고 우리말인 극젱이(훌칭이), 쟁기, 써레, 고무래(곰배), 홀케, 도리깨가 꼬리를 감췄고 따비와 보습은 쓰지 않는 말이 되 었다. 그렇지만 ‘이랑’과 ‘고랑’은 끝까지 살아남을 말이다.  


웬만해서 흙을 뒤엎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정석이지만, 유기 밭농사를 하더라도 보통 고랑과 이랑을 만든다. 밭의 흙을 갈아엎어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고른 다음, 괭이로 비가와 도 흙이 잠기지 않도록 흙을 파 올려 길게 높이 만들어 놓은 곳을 ‘이랑’이라고 한다. 종자를 뿌리거나 모종을 옮겨 심어 남새(채소)나 곡식을 키우는 곳이다.  


이랑과 반대로 흙바닥이 낮아진 공간을 ‘고랑’이라고 한다. 농부들은 고랑을 발로 밟고 가면서 이랑에서 자라는 작물을 돌본다. 그러나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된다”는 속담처럼 이랑과 고랑은 하루아침에 신세가 뒤바뀐다. 한편 흙을 끌어올려 논밭의 가장자리를 둑처럼 쌓아 놓은 곳을 ‘두둑’이라 하여 논밭의 경계선으로 삼고 사람이나 마소가 걸어 다니는 길로 이용한다. 


초생재배는 이랑이 아닌 ‘고랑’에 풀을 키워 풀이 자라면 큰 낫으로 싹둑싹둑 베어내 ‘이랑’ 위에 덮는 것을 말한다. 이랑위에 풀을 덮으면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랑이 허물어 지지 않고 흙이 비옥해지고 병충해가 달려들지 못한다. 그래서 초생재배를 하면 유채(油菜)꽃과의 채소에 뿌리혹 병이 생기지 않는다.

 

작물의 뿌리가 이랑 위를 덮은 풀로 인해 이랑 흙속에서 빽빽하고 무성하게 자라 자생력을 갖 춘 건강한 상태가 되기 때문인데 설령 뿌리혹 병균이 있다 고 하더라도 유채꽃과의 뿌리에는 쉽게 감염되지 않는다.  


 무경운(無耕耘)으로 콩과의 목초나 볏과 식물을 키워야

 
초생재배 방법은 첫째로, 밭을 갈아엎지 않는 무경운 재배법으로 다년생 풀을 키우는 것이다. 반드시 콩과의 목초(牧草)를 첨가한다. 그러나 콩과 목초 중에서 ‘빨간 클로버’나 ‘크림슨 클로버’와 같이 종류는 좋지 않다. 이들은 잎이 한 그루에서 갈라져 나오는 주립성(株立性)이거나 포복 (匍匐, 땅에 배를 엎드리고 기는 것)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무성하게 퍼지면 나중에 처치하기 곤란하다. 물론 과수원이라면 이런 풀들을 재배하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다. 만약 콩과 식물을 고랑에 키우기로 했다면 볏과 식물을 같이 키우면 좋다. 왜냐하면 이들은 각기 땅속으로 뻗어 가는 뿌리의 갈래가 전혀 달라 서로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콩과 식물은 심근성(心根性)이다. 뿌리가 땅속 깊숙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볏과는 천근성(淺近性)이어서 수염 뿌리가 지표 근처의 얕은 곳으로 퍼져나간다. 콩과 식물은 질소고정을 해 주므로 흙속에 질소성분이 점점 증가하고, 볏과 작물은 수염뿌리를 많이 뻗어 흙 안의 유기물을 대량으로 섞어주는 효과가 있다.

 
뿌리는 영양분을 흡수하고 수소이온 방출, 뿌리 주변의 pH를 낮춰 


니시무라 카즈오 교수는 자신을 가르친 토양학 선생이 흙에 대해 한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분은 “땅을 일구거나, 작물을 심거나, 혹은 비료를 주거나 할 때마다 흙은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흙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어느 한쪽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흙이 어느 방향으로 나 가려고 하는지 그것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다.  


그러나 흙을 눈으로만 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 전혀 알 수 없다. 카즈오 교수는 직접 실험에 나섰다. pH로 색이 변하는 색소를 한천(寒天, 우뭇가사리 따위를 끓여서 식혀 만든 끈끈한 물질. 음식 혹은 약 또는 공업용 으로 씀)에 섞어 그 안에 작물의 뿌리를 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단 하루 만에 뿌리 주변만 색이 변했다. 이틀째가 되자, 색이 변한 범위가 더 넓어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카즈오 교수는 ‘작물이 뿌리에서 양분을 흡수하면 뿌리는 그 대신 수소 이온을 방출하고 이것이 주변 흙의 pH를 낮춰 색소의 색이 바뀌는 것임’을 알았다고 하였다.  


이와 똑같은 일이 흙속에서 일어난다. 작물의 뿌리가 있는 주변의 흙은 뿌리가 없는 곳보다 pH가 낮은 상태이다. “그렇지만 흙이란 놈은 설령 pH가 변했다고 해도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자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카즈오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이를 ‘흙의 완충능력’이라고 했다. 흙은 어떤 쇼크도 가볍게 받아들여 본래대로 되돌아가려는 흙의 능력인 셈이다. 이처럼 흙은 끊임없이 여러 변화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고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풀은 이상적인 흙을 만드는 첫 번째 요소  


어느 책이나 이상적인 흙은 “비옥한 토양으로 단립구조가 발달하고 부드러우며, 부풀어 올라 푹신푹신한 흙, 보수성이 뛰어나고 동시에 배수성도 좋으며 거름의 보유능력이 긴 토 양”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흙에서는 누구나 무엇을 재배해 도 완벽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터이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이상적인 흙을 만들 수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상적인 흙의 정의를 내린 어떤 책이라도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카즈오 교수에 따르면 일본 농림수산성도 흙 만들기를 맹렬하게 이야기하고 농협이나 보급소에서도 ‘유기물을 넣어라, 퇴비를 넣으세요’라고 한다. 그러나 “왜 유기물이나 퇴비를 넣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흙이 좋아지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카즈오 교수는 ‘유기물을 넣으면 그것이 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실제로 아무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답변을 못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저자가 어떤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책에 쓸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최근 필자는 『탄소중립 흙 살리기, 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국회 토론회에서 좌정을 맡은 적이 있다. 2시간이 넘는 전문가 토론을 통해 흙의 중요성이 강조됐고, 흙의 탄소 저장 능력에 대해 비록 긍정적인 의견과 회의적인 의견으로 갈리긴 했더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공감했다. 그러나 흙의 탄소 저장 기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분은 거의 없었다.  


이상적인 흙을 만들려면 ▲첫째, 보비력(保肥力)을 높여야 한다. 보비력은 ‘거름기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흙의 능력’이다. 그런데 흙의 이런 능력을 키우는 데 풀을 덮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둘째, 흙의 부식(腐植)능력을 높여야 한다. 부식은 ‘흙속에서 식물이 썩는 여러 분해단계를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유기물의 혼합물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부식된 흙은 양이온은 물론 점토에서도 불가능한 음이온 흡착 능력을 가지게 되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부식 능력을 키워 영양분의 저장능력을 높이는데 여러 종류의 풀을 사용하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

 

▲셋째, 흙의 토양생물을 늘려야 한다. 유기물을 흙속 에 듬뿍 넣어 주면 토양생물의 좋은 먹이가 된다. 토양생물을 키우고 늘리는 것이 육토(育土)다. 토양생물의 먹이로 풀만큼 좋은 게 없다.  


 흙은 결코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흙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키우고 양육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먹는 모든 것이 흙에서 나온 것이니 흙에 되돌려주면 된다. 옛 조상들은 흙에서 나온 모든 유기물을 가지고 발효과정을 거쳐 다시 흙으로 되돌려 주었다. 그런 순환 사이클이 관행농업에 의해 깨진 것이다. 풀을 키워 다시 풀을 흙으로 돌려주는 일이야 말로 이상적인 흙을 만드는 첫 번째 작업이다. 그래야 흙이 살고 나라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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