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며 북극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구매, 캐나다 51번째 주 편입, 한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투자 발언 등이 북극패권 경쟁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흐름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영토야욕 발언’은 날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에 대해 100% 얻을 것이고 군사력 개입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해 파장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그린란드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그린란드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으로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공격이나 잠수함 작전을 막을 수 있는 길목에 있다. 더불어 희토류, 광물,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이 풍부하고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 북극해에 유럽과 아시아 및 북미를 잇는 항로가 열릴 것으로 예상돼 전략적, 안보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 북극항로, 지구온난화로 운송량 37%↑... 지정학·경제효과 급부상
북극이사회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지난 10년 동안 북극을 통과하는 선박의 운송량이 37% 증가했다. 특히 홍해지역에서 후티반군의 선박공격으로 수에즈 운하의 항행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고, 파나마운하 역시 가뭄으로 통항량이 줄어들면서 북극항로가 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 북미를 잇는 최단 경로에 위치한 그린란드는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는 북극 항로의 중요한 전진 기지다. 북극 항로는 과거 1년의 절반 이상 얼어붙었으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차 운항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기존 수에즈운하를 이용할 때보다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가는 거리를 30~40%까지 줄일 수 있고 운송기간은 10일, 화물 운송비용은 25%까지 줄일 수 있다.

북극패권 경쟁의 또 다른 한축은 북극권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에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북극 해저에 매장된 석유는 약 899억9000만배럴 규모로 전 세계 매장량의 1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천연가스는 47조㎥로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30%에 이른다. 여기에 망간, 니켈, 금, 구리 등 주요 광물과 희토류도 풍부하다.
북극의 군사적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은 2010년부터 북극항로 개척과 군사적 협력강화를 위해 쇄빙선 함대 훈련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무역로 보호를 명분으로 그린란드 인근과 북극해에서 군사적 전개 및 전략 작전을 실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며 그린란드가 동서갈등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 세계 패권 각축전 된 ‘북극’... 러·중 밀착에 속도내는 美·加
현재 북극해 영토를 주장하고 있는 나라들은 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캐나다 등 북극과 북극해에 인접해 있는 8개 나라다. 이들은 ‘북극이사회’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북극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논의하며 결정하고 있다.
특히 북극해의 절반 이상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는 이미 북극 지방을 상업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최근 30년간 23개 유전을 발굴했는데 이는 북극 유전의 46%에 달한다. 또 LNG 프로젝트 등 대규모 에너지 개발과 세계 최대 규모의 쇄빙선단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올해까지 러시아의 북극 기지는 8곳에서 21곳으로 급증했지만, 미국이 포함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32개 가입국의 기지는 31곳에서 33곳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또 러시아는 30척의 쇄빙선을 가진 반면 미국이 북극에서 운영하는 쇄빙선은 3척에 불과하다.
중국은 2018년 '중국은 북극에 가까운 국가'라 규정하고 ‘북극 군기지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 4월에는 러시아와 해안 경비대간 북극 해상 안보 협력을 심화하기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그해 10월 첫 번째 합동 해상 순찰도 실시했다. 또 과학적 탐사를 명분으로 여러 척의 쇄빙선을 동원해 북극 지역에 대한 다양한 조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의 원자력잠수함 활동 감시를 위한 장비가 설치되고 있다는 주장도 여러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

북극패권에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뒤늦게 패권 경쟁에 뛰어든 모양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발표한 ‘북극전략’에서 북극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안보환경이 변화됨에 따라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한 논조로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해안경비대는 쇄빙 쾌속정이나 쇄빙기능이 있는 선박건조를 정부로부터 승인받았고, 이를 동맹국에게 맡길 수 있도록 ‘존스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북극권 국가에 속하는 캐나다도 최근 북극정책을 발표했다. 캐나다는 2050년이면 북극항로가 국제해운항로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이 될 것으로 전망하며 그린란드, 알래스카와 더불어 핵심광물 협력을 중요 국가 이익분야로 강조했다. 또 러시아·중국의 군사 활동 증가에 우려를 나타내며 지난달에는 미군과 함께 북극해에 인접한 캐나다 최북단 일대에서 연례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또 지난해 캐나다 정부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기지 옆에 위치한 개인 소유 항공기 격납고에 중국과 러시아가 관심을 보이자 860만 캐나다 달러(약 87억원)의 예산을 들여 인수하면서 북극권 안보에 극도로 신경쓰고 있는 상황이다.
◇ 북극항로, K-조선에 기회... “韓 해양패권, 정부차원에서 준비해야”
미국이 가세한 북극패권 경쟁은 국내 조선업계에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북극에서 자원을 탐사하고 새로운 항로개척을 위해서는 빙하를 깨고 운항할 수 있는 쇄빙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일각에서는 러우 전쟁이 종식되면 러시아의 쇄빙선 수주가 늘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쟁으로 서방 국가들의 제재를 받으면서 쇄빙선 발주가 막히기 전까지 러시아는 국내 조선사의 최대 고객이었다. 러시아는 지난 2021년 한화오션(전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 각각 4척씩 쇄빙선을 발주한 바 있다.
북극권과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가 가시화되면서 ‘쇄빙 LNG운반선’ 수주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쇄빙 LNG 운반선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실제로 러시아 등에 30여척 가까이 납품한 경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미 양측은 쇄빙선 관련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월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미국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 논의와 함께 한국 측의 쇄빙선 건조에 대한 얘기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안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해군함정에 대한 유지·보수·정비와 에너지 수출을 위한 탱커, 쇄빙선 등을 급하게 필요로 한다. 미국과 조선 분야에서 합의가 된다고 하면 미국의 관련 법 정비 전이라도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미국은 해군력 강화에 한국이 중요한 파트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떻게든 조선 분야에서 빨리 협력을 해보자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세계가 북극패권 경쟁에 치열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경제안보와 글로벌 물류전략을 위한 ‘북극협력위원회’를 만들어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2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북극항로 시대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최수범 박사(고려대 법학연구원 해상법연구센터)는 “정부는 국가차원의 기구를 만들어 통합적이고 일관된 정책 수립과 실행을 총괄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북극 관련 외교, 해양, 산업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정책 추진의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팀코리아 전략을 도입해 지역별 강점과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북극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며 “부산은 컨테이너 환적 허브, 울산은 친환경 에너지 중심 산업 클러스터, 포항은 북극해운정보 연구클러스터 등 지역별 강점과 특성에 맞는 맞춤형 북극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문대림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갑)은 31일 ‘북극항로 구축 지원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북극항로 특별법은 우리나라의 북극이사회 옵서버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비롯하여 범정부 차원의 북극협력위원회 신설, 관련 인재 양성 지원 등 북극항로 개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대림 의원은 “북극항로 개척은 새로운 항로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안인 만큼 시급하고, 중대하게 다루어야 한다”며 “북극항로 특별법 통과로 북극항로 구축 및 활성화 전략을 수립하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해양 강국으로 도약할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