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식 화백

  • 등록 2014.08.07 19:01:14
크게보기

한국의 전통에 서양미를 접목해 생명의 어울림을 담다

 

전남 무안군 삼향 출생인 윤현식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과 목포개항 100주년기념전을 비롯해 필리핀 현대미술관초대전, 부산국제 아트페어 초대전, 대한민국 경찰청 특별기획초대전 등 200여 회의 단체전과 28회의 개인전을 개최한 한국화가다.

 

그는 한국의 전통에 서양의 현대미술을 접목한 생명의 존엄성을 표현해낸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하다. 윤 화백을 만나 30년간 걸어온 화가 인생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한국미술계가 풀어야 할 과제와 해법도 들어봤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동네 아저씨 같은 순박한 모습의 윤현식 화백. 그가 한국 화단에 크게 주목받은 것은 ‘생명의 어울림’이란 주제의 개인전을 통해서다.


“한국의 전통수묵화와 새로운 현대미술의 만남을 보다 활달한 리듬과 색채로 만들어낸 작품들입니다. 윤 화백에게 생명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이며,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생명의 어울림’은 인간과 자연은 한 묶음이고,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 할 수 있으며, 동양정신의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2년 4월 윤현식 화백이 개인전을 열었던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의 장유호 관장은 윤 화백을 조형의 언어를 넘어 정신적인 가치와 미술의 현대성을 추구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또한 그는 윤 화백의 작품을 대담한 필선에서 느껴지는 힘으로의 면이며, 리듬감 있는 움직임의 흐름은 동양의 미적 요소의 ‘기운생동’이며, 대담한 색채에 대한 표현성은 특별한 감동이라고 극찬했다. 아울러 정체된 한국수묵화의 변화와 한국화단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했다.


고집스런 작가 정신이 중요


윤현식 화백이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지는 30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안목을 높이기 위해 유명
화가의 전시회를 찾는다. 작가 스스로 발상을 전환하려는 노력과 고뇌가 있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 화백은 28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를 높이 평가한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면 나와는 다른 세상을 품고있고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또 이해하고 납득하기 힘든 언어로 내면을 표현합니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안주하려는 내 자신을 쓸어버리게 됩니다." 윤 화백은 획일화된 작품보다는 실험정신이 강한 추상적 작품을 추구한다. 그래서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오해도 받았다. 그의 가슴 속에 가장 아픈 기억은 어머니의 말씀이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애국가에 나오는 영상처럼 멋진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며 저를 항상 걱정만 하시다가 4
년 전 작고하셨습니다. 한 번은 그러시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나오는 것 좀 보라
고. 제가 그린 그림을 잘 이해하시지 못한 어머니께서는 눈으로 보기에 멋진 그림을 그리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고집스런 그의 작품세계는 여전히 탐구하고 내면화하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품 활동을 할 때마
다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언제가 아는 지인의 강의를 듣고 느꼈던 한 마디가 작품 활동을 할 때면 늘 생각난다고 했다.


"미술계 아는 지인이셨는데 그분이 목포에 강연을 와서 하시는 말씀이 영국의 어떤 작가는 한 작품을 19년 동안 그렸다고 하는 겁니다. ‘아 저거구나’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품하나 완성하는데 뚝딱 2~3일 내에 소화시키는 그런 영혼 없는 작가들이 너무 많은 요즘, 한 작품을 그리는데 19년이 걸렸다니. 작가로서 참 부끄러웠죠. 지금도 스페인 어떤 건물은 대를 이은 작가가 그림을 계속 그려간다고 하잖아요. 아직도 진행형인거죠. 작가는 그런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품을 사면서 안목 넓혀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고생하기 마련이지만 진짜 힘든 고생은 오히려 인성의 성숙을 가져온다는 것이 윤 화백의 지론이다.


풍족했던 어린 시절 그의 할아버지는 글에 능하여 동네 청년들을 모아 놓고 글을 무료로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셨다. 그의 아버지는 면서기를 하셨는데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갑자기 가세가 기울었다.


철도 들기 전 집안의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그는 운 좋게도 사업을 하면서 큰돈도 벌었다. 이후 아는 지인이 ‘미술품을 사면 돈을 벌 수 있다’고 권유해 이른바 재테크의 하나로 시작한 취미가 미술품 수집이었다. 그러나 미술품에 대해 안목이 없었던 그는 사기도 당하고 가짜 그림도 많이 사면서 당시 2억 5천 만 원이라는 큰돈을 미술안목을 높이는 수업료로 지불했다.


이때부터 윤 화백은 그림 보는 눈높이를 더 높이기 위해 남농 허건 선생(남종화의 대가)의 수제자 박항
한 선생에게 동양화를 배웠다. 또 목포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미술에 대한 공부를 했다. 당시 가짜 그림
을 속지 않고 사기 위해 배운 공부는 그의 미술품을 보는 견해를 한 단계 넓혀줬다. 또 현재 작품 활동의 밑거름이 됐다.


윤 화백의 네 번째 대작전시회


윤 화백은 오는 28일부터 9월 11일까지 목포 문화예술회관에서 대작전시회를 연다. 윤 화백의 대작전시
회는 10여 년 전 서울 인사동 갤러리, 종로 영풍문고, 강남 고속터미널 등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이다.


“대작전시회로 인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지금은 목포 해양경찰청에 걸려 있는 그림인데 500호 정도 되는 큰 그림이었거든요. 그걸 서울에서 전시한다고 하니까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그때 프랑스주재기자로 있다가 국내에 들어와서 미술 분야를 맡은 한 인터넷 매체 기자가 거길 찾아왔는데 물어물어 전시회장에 오니까 엄청난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아무도 없더래요. 대작이라 표구를 하지 못하니까 종이에 그린 그림을 벽에다 붙여 놓은 것이 다라 이 기자가 보기에는 어이가 없었던 거죠. 얼마나 희한한 작가면 이렇게 대범할까. 이건 분명 괴물이다. 그랬었데요. 지금도 그 인연으로 잘 지내는데 아무튼 대작으로 인해 갖게 된 소중한 추억입니다. 이번 대작은 그때보다 더 커지고 내용도 달라졌습니다."


윤 화백에게 대작의 의미를 물었더니 “작가의 생각을 큰 공간에 한 번 펼쳐봤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블루칩 작가 양성이 경쟁력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중 국제교류 정예 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 화백은 한국 미술 발전에도 관심이 크다.


그는 작금의 한국 미술은 트렌드에 맞게 세계화로 변해야 한다며, 한국 경제수준은 높아졌지만 예술 수준은 오히려 ‘캄보디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후진국보다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해 윤 화백은 우리나라 병폐인 학연, 지연, 혈연 등을 꼽았다.


이러한 관계가 미술계의 고질병인 ‘시상식 심사 비리’로 이어지면 미술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화백은 이러한 제한된 틀 속에서는 장 미쉘 바스키아나 장 뒤뷔페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한국 미술계가 고질적인 병폐를 깨고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과 같은 블루칩 작가들을 발굴해 양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계에도 블루칩작가들이 있습니다. 일명 해외파라고 하는데 해외에서 유학하고 온 작가들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작품 활동을 해서 해외에다 작품을 파는 작가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미술계가 이런 능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양심이 바른 집단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런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전시하고 미술계를 리드해 나간다면 미술계는 당연히 발전할테니까요."

 

"우리나라는 겉으로 보이는 것에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술계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디서 무슨 상을 받았다더라, 이런 것들만 중요시 하다 보니 정말로 능력 있는 작가들은 말 그대로 초야(草野)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30년 전 그림이나 지금의 그림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미술의 개념은 창작이거든요. 과학하고는 같이 가야하고 문화보다는 앞질러 가는 게 미술입니다. 그래야 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 미술은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언론 역시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언론이 실력 있는 좋은 작가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 미술계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규칙이 없다. 너무 평범한 것보다는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한다. 낙서를 알아야 한없는 욕구창출이 가능해지는데 우리나라 작가들은 낙서를 쓸모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그는 작품은 그림을 기능화시키는 게 아니라 기(氣)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미술계의 변화를 위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취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곳곳이 너무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미술계까지도 속속히 부패되어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지도 궁금해졌다. 작품성보다는 아는 지인의 그림이라 줄 대기를 하듯 작품을 사가는 이런 현실에서 미술계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워보였다. 앞으로 미술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욕심부터 내려놓은 ‘버림’이 필요해 보인다.

최영석 기자
Copyright @2012 M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회사명 (주)방송문화미디어텍|사업자등록번호 107-87-61615 | 등록번호 서울 아02902 | 등록/발행일 2012.06.20 발행인/편집인 : 조재성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9길 23 한국금융IT빌딩 5층 | 전화 02-6672-0310 | 팩스 02-6499-0311 M이코노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