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해킹사태가 불러온 ‘번호이동 엑소더스’ 확장戰

  • 등록 2025.06.02 12: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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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 3사, 대규모 보조금 할인 이벤트 등 ‘신규 고객 모시기’에 사활
SKT “손해 보더라도 기존 고객 지키자”... KT·LG유플 “이번이 기회”
‘SKT→알뜰폰’ 번호이동 9만명 육박..이통사 경쟁구도 재편 불가피

 

2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달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알뜰폰(MVNO) 간 총 번호이동 가입자 수는 93만3,509명으로 해킹 사고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3월 52만5,937명에 비해 약 77% 증가했다.

 

올해 1월만 해도 49만4,530명 수준이었던 번호이동 가입자는 2월과 3월에는 평소처럼 50만명대에 머물렀으나, SK텔레콤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 70만명에 가까운 숫자로 치솟더니 5월에는 100만명에 가까운 숫자를 기록한 것이다. 최근 5년간 단 한 번도 60만명을 넘긴 적 없다.

 

●SKT 해킹 사고 후폭풍...이통사 가입자 ‘번호이동 고객’ 모시기 전쟁

 

SK텔레콤 해킹 사고로 인해 가장 이득을 많이 본 통신사는 KT다. SK텔레콤에서 KT로 번호 이동한 가입자는 지난달 19만6천685명으로 약 20만명에 달했다. 이 숫자는 평소 3만~4만명대 수준이었으나, 해킹 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부터 9만5,953명으로 대폭 증가한 바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SK텔레콤 고객 15만8,625명이 넘어오면서 반사이익을 누렸다. LG유플러스에서도 지난 4월 평소의 약 2배인 8만6,005명의 가입자가 SK텔레콤에서 번호이동해 오는 등 이례적인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알뜰폰으로의 이동도 많았다. SK텔레콤에서 알뜰폰으로 번호이동한 이용자 수는 8만5,180명으로 집계됐다. 평소에는 많아도 5만명대 수준이었다. 반면 KT나 LG유플러스, 알뜰폰에서 SK텔레콤으로 번호이동한 건수는 각각 1만명대에 그쳤다.

 

4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잃은 SKT와 이를 추격하는 KT, LG유플러스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가며 ‘가입자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SK텔레콤 ‘유심 정보 노출’ 사고 이후 고객 확보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SKT는 가입자가 이탈하는 상황에서 유심 무상 교체 등 지원책에 따라 신규 가입도 중단되자, 최신 스마트폰 모델에 대한 공시지원금과 기기변경(기변) 지원금을 상향하며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KT·LG유플러스가 휴대폰 집단상가 등 일선 판매점에 40만원대의 판매장려금(리베이트)을 지급하는 등 반사이익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실제 SK텔레콤 사이버 침해사고 여파로 이탈하는 가입자를 놓고 이동통신 사업자 간 쟁탈전이 더욱 뜨거워졌다. 온라인 유통망에서 고액 지원금을 뿌리는 행위가 잠잠했던 이동통신 시장이 최근 10년 새 가장 들썩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통 3사 ‘막느냐, 뚫느냐’ 과열 양상...내달 ‘단통법 폐지’가 변수

 

방통통신위원회는 지난주 60만~70만원대의 리베이트 등 2주 연속 시장 과열을 판단해 제동에 들어갔다.

 

방통위는 지난달 26일과 28일 두 차례 ‘이통 3사’ 임원을 불러 과열 경쟁을 불러오는 이용자 차별 영업 정책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30일부터는 직접 현장 실태 점검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 달간 이용자 불안 심리를 악용한 과대 광고나 부당 지원금 차별 등의 행위를 단속할 계획이다.

 

방통위의 실태 점검과 제동에 유통채널의 마케팅 활동이 일시적으로 소강 상태를 보였으나 휴대폰 구매 예정인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휴대전화 구매 심리가 확대되면서 중단됐던 신규 영입 전쟁이 이번 달부터 또 다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은 기존 고객 이탈 방지에 집중하고 있다. 영업 중단 조치가 해제되면 이탈 방어를 넘어 점유율 회복을 위한 공격적 신규 유치 전략에 나선다. 여기에 7월 22일부터 시행되는 ‘단통법 폐지’는 점유율 경쟁의 기폭제로 작용할 경우, 지원금 상한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보조금 책정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동 3사의 보조금 경쟁 과열로 이용자 차별, 출혈 경쟁 등 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공지능(AI) 인프라 등 신사업 발굴에 나선 이통사 입장에서는 가입자 점유율 방어를 위한 마케팅에 재원을 더 쏟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건을 이용해 과열 경쟁을 펼치는 것은 시장 왜곡을 발생시킬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으며 소비자 보호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며, “이통 3사 모두 단통법 폐지 이후에도 단순 가격 경쟁을 넘어 품질 등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아직은 단통법이 유효하고 이용자 차별 행위는 전기통신사업법상에서도 위법이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라며 “실태 점검 후 필요할 경우 사실조사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KT와 LG유플러스는 가입자 유치를 위해 지난달 말 보조금을 크게 인상했다. 출시 4개월도 되지 않은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25(출고가 115만원)의 공시 지원금을 기존 50만원에서 70만원까지 올린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휴대폰 대리점에서는 최신 스마트폰을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S25의 경우 이통3사 모두가 ‘공시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을 상향하면서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휴대폰 대리점 관계자는 “어느 통신사든 갤럭시S25, 갤럭시S25 플러스는 조건이 너무 좋다”면서 “기존 통신사에서 기기변경을 하든, 타 통신사에서 SKT로 번호이동을 하든 모든 경우에서 기기값이 거의 무료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SKT와 KT는 갤럭시S25 시리즈의 공시지원금을 각각 68만원, 70만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고, 일부 매장은 판매장려금도 올렸다. LG유플러스 역시 공시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을 높였다고 전했다. 판매장려금은 이통사가 대리점에 고객 유치를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대리점은 이를 활용해 추가지원금(공시지원금의 15%)이나 추가지원금을 고객에게 제공한다.

 

 

●공시지원금·판매장려금 확대...SKT, 신규 가입 늦으면 7월초 가능

 

SKT는 공시지원금을 인상하고 불법보조금으로 활용될 수 있는 판매장려금까지 확대에 나섰다. 앞서 SKT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제재를 받은 뒤 유심 관련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신규 영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29일 오전 12시 기준 ‘누적 유심 교체’ 건수는 517만건을 기록했다. 잔여 예약 고객은 389만명으로, 유심 교체를 예약한 인원의 57%가 유심 교체를 완료한 상태다. SK텔레콤은 지난 6일간 하루 평균 30만명 정도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유심을 교체했다.

 

동시에 유심 교체 업무로 과부하가 걸린 전국 T월드 매장 및 직원(T크루)에게 OCB 포인트 지급, 매장별 500만 원 무이자 운영자금 지원, 대리점 대여금 원금 및 이자 상환 3개월 유예 등 파격적인 유통망 지원책도 내놨다.

 

SK텔레콤 측은 “신규 영업 중단에 대한 유통망 지원책은 검토 중이며, 영업 재개 시점에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일부 대리점에서는 ‘SKT 해킹’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고객 유치에 나서는 공격적인 사례도 포착됐다. LG유플러스의 한 대리점은 SKT를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대행해 주겠다’는 문자를 발송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심을 변경할 경우, 페이백을 주겠다는 대리점도 있었다.

 

●SKT 신규 가입 늦으면 7월초 가능...대리점 점주 단체행동, 영업이익도 타격

 

일부 SKT 대리점이 타 통신사에서 번호이동 시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SKT는 여전히 ‘신규 가입’을 중단한 상태다. 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SK텔레콤의 신규 가입자 모집 재개 시점을 ‘유심(USIM·가입자식별장치) 교체를 전부 완료한 후’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SKT는 7월쯤 신규 가입자 유치가 재개되는 대로 가입자 만회를 위해 총력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SKT 관계자는 ‘통신업계의 가격 경쟁 과열 우려’에 대해 “경쟁사가 SKT 고객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공시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을 지나치게 올려놓은 상태다. 저희도 최소한의 규모 속에서 대응은 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라고 답했다.

 

계속되는 고객 이탈에 SK텔레콤 대리점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SK텔레콤 대리점 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SK텔레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리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신규 모집 중지 기간의 손실에 합당한 보상안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로 인해 더 이상의 소상공인 피해가 가중되는 일이 없도록 신규 모집 정지는 당장 해제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증권가에서는 SK텔레콤 해킹 사고가 올해 실적보다는 내년 영업이익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연간으로는 일회성 비용 발생으로 영업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매출 감소 효과가 마케팅 비용 감소로 상쇄될 것이라 큰 타격은 없을 것이다. 다만 시장점유율 하락에 따른 이동전화 매출 감소는 올해보다는 내년 영업이익에 부정적일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번 SK텔레콤의 사이버 침해 사고와 그로 인한 대규모 고객 이탈은 국내 통신시장의 경쟁 구도와 향후 기업 전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 '통신시장 1위' SK텔레콤 사업자의 신뢰도 하락과 함께 경쟁사들의 가입자 기반 확대라는 직접적인 영향 외에도, 향후 통신사들의 보안 투자·고객 정보보호 강화 노력에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심승수 기자 sss23@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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