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 산업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며, 국내 수소 시장에 진출했던 SK플러그하이버스가 제주 동복·북촌 풍력발전 단지에서 진행 중인 그린수소 실증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이와 동시에 탄소 배출 에너지원인 액화수소를 활용한 수소 인프라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SK플러그하이버스는 현재는 SK이노베이션으로 자회사 편입한 SK이노베이션 E&S와 미국 수소 기업 플러그파워가 2022년 1월 공동 투자한 수소 전문 조인트벤처(JV)다. SK이노베이션 E&S가 5100억원, 플러그파워가 4900억원을 부담했다. SK플러그하이버스는 지난해 제주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 그린수소 상용화 사업에 참여 철회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SK플러그하이버스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E&S 측은 "사업 일정이 지연되고 발전 규모가 축소되면서, 5MW급 수전해(PEM) 설비 프로젝트가 3MW급으로 변경됐다"며 "SK플러그하이버스는 1MW 수전해 설비 3기로 실증 연구를 이미 진행했었기 때문에, 중복되는 연구 및 설비 개발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SK플러그하이버스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 E&S는 지난해 5월 인천에 세계 최대 규모 액화수소 플랜트를 준공하는 등 액화수소 인프라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해당 플랜트는 연3만톤의 액화수소를 생산한다. 이는 1년간 수소버스 5000여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E&S가 추진하는 액화수소 사업은 무탄소 에너지원인 그린수소가 아닌 그레이수소를 주원료로 사용한다. 그린수소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기 때문에 수소 1kg 생산 시, 탄소 배출이 1kg 미만이다. 반면 그레이수소는 LNG연료를 개질해 수소를 얻고 부가 생산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 및 저장(CCUS), 활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소가 다량 배출된다.
기후솔루션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부생수소가 공정 부산물이므로 ‘추가적인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면서도 “온실가스가 다배출되는 석유화학 공정중에 발생하는 수소이기 때문에 청정수소로 분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美 수소 기업 플러그 파워...어떤 회사?
SK플러그하이버스의 모회사인 플러그파워는 1997년 조지 C. 맥나미가 JV 형태로 설립했다. 1999년 상장하며, 고정형 연료전지를 선보였다. 2000년 유럽 시장에 진출한 이후 플러그파워는 렐리온(ReliOn) 인수를 시작으로 아메리칸퓨얼셀, 지너 ELX(Giner ELX) 등 수소 연료전지 및 수소 충전소 경쟁사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했다.
플러그파워는 2021년 3월 우리나라에 본격 진출했다. 당시 SK(주)와 SK이노베이션 E&S는 플러그파워 주식을 사들여 최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 E&S와 플러그파워는 JV 설립을 통해 아시아 수소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린수소 분야에 주로 쓰이는 플러그파워의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 기술은 미국 뉴욕을 비롯해 유럽 지역에서 실증 및 상업 생산 중이며, 핵잠수함과 나사의 우주선에도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러그파워는 현재까지 세계 최대 규모인 6만여개의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과 200여개 이상의 수소충전소를 구축했다.
◇하이버스, 제주 그린수소 실증 사업 포기…'그레이수소 액화수소' 충전소 사업 주력
SK플러그하이버스는 제주 동복·북촌 풍력단지에서 준비하던 10.9MW급 그린수소 실증 사업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국내 액화수소 인프라 구축 사업에 주력한다. 현재는 그레이수소를 공급하는 액화수소 충전소를 전국에 건설하고 관련 인력을 충원하는 동시에 쿠팡이 운영하는 물류 센터에 수소 지게차를 공급하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SK플러그하이버스는 2023년 4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청정에너지 파트너십’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한미 에너지 업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SK이노베이션 E&S는 플러그파워·제너럴일렉트릭(GE)·HD한국조선해양과 함께 국내에서 블루수소 전주기 사업 협력(MOU)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사업을 통해 총 6조7000억원의 대규모 직접투자가 이뤄져, 10만5000명의 일자리와 59조원 규모의 사회·경제적 편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 E&S가 준공한 액화수소 플랜트는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약 7000억원을 투자해 구축한 시설로, 하루 30t급 액화수소 생산설비 3기와 20t급 저장설비 6기 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지주사인 SK(주)가 2023년 5월 발표한 투자 계획은 SK이노베이션 E&S와 플러그파워가 합작법인 SK플러그하이버스를 통해 국내 수소 산업에 1조원을 투입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SK(주)는 미디어센터 보도자료를 통해 “SK플러그하이버스가 수소기술 R&D 센터 및 수소 핵심설비 생산기지인 기가팩토리(Giga-factory)와 수소 연료전지 및 전해조 설비의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E&S 역시 2021년 3월 뉴스룸 보도자료를 통해 “SK(주)와 플러그파워가 설립하는 아시아JV가 2023년까지 연료전지, 수전해 설비 등 수소 사업 핵심 설비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생산기지를 국내에 건설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설비의 공급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춰 국내 및 아시아 시장에 공급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SK플러그하이버스가 주요 사업으로 실행할 것처럼 거론됐던 인천 지역 수소 기가팩토리 사업은 현재 사업 부지도 선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수소기술 R&D센터 및 수소 연료전지, 전해조 설비의 대량 생산 체계 사업은 현 시점에서 진행하고 있지 않다.
그린수소 사업의 경우, SK플러그하이버스가 제주 행원 풍력발전단지에 모회사인 플러그파워가 개발한 1MW급 수전해 설비를 납품한 것이 전부다. 이는 정부가 2022년 11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를 통해 2028년까지 단일 시스템 10MW급 수전해 설비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비교할 때, 의미 있는 성과로 보기 힘들다.

◇정부 지원금 1335억원 수령한 하이버스...그린수소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지 의문
SK플러그하이버스는 2023년~2024년까지 정부 지원금을 수령했다. 해당 시기 정부는 SK플러그하이버스에 정부보조금과 국고보조금 두 가지 형태로 1335억원을 지급했다. 이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 E&S 측은 SK플러그하이버스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액화수소 충전소 보급 사업에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SK플러그하이버스는 채용공고 사이트에 액화수소 충전소 안전 관리자 구인 공고를 여러 건 게시하고 있다. 또한 액화수소 충전소 증설을 위해 정부 나라장터와 민간 건설 입찰 공고 사이트에 공고도 꾸준히 내고 있다. 이는 SK플러그하이버스가 탈탄소 움직임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기후솔루션 관계자는 “액화수소 플랜트가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를 저장, 유통, 활용하기 위한 사업이라면 정부의 지원 타당성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청정수소가 아닌 화석연료 기반의 수소 활용 활성화를 위해 정부 지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제주대학교, 서울대학교, 울산대학교, 국립한국해양대학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학계를 중심으로 수많은 그린수소 관련 연구센터가 운영되고 있고, 다양한 규모의 그린수소 연구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또한 발전·자원 공기업 중에는 남부발전, 한국가스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서부발전,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그린수소 분야에 뛰어든 상황이다.
그동안 SK플러그하이버스는 한국가스공사(제주 행원 그린수소 실증 사업·수전해 설비 납품), 남동발전(청정수소·암모니아 사업과 혼소발전 실증사업 MOU), 한국수력원자력(그린수소 확대 보급 및 산업 활성화MOU), 한국수자원공사(그린수소 확대 보급 및 산업 활성화 MOU) 등 국내 발전·자원 공기업들과 몇 차례 업무협약(MOU)을 맺고 수전해 설비 납품 1차례를 진행한 것이 전부다.
SK플러그하이버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며, 선언했던 ▲수소기술 R&D 센터 개소 ▲수소 핵심설비 생산기지 '기가팩토리' 구축 ▲수소 연료전지 및 전해조 설비의 대량 생산 체계 구축 등 검증된 청정 수소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발표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