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시민사회에서는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시해 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규정하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법에는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만 제시되어 있는데, 2050년 탄소중립까지 장기 감축목표가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점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헌법불합치의 주요 근거였다.
헌재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과학기술이나 환경 문제가 아닌 ‘기본권 침해’로 바라보며, 국가가 실효적인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행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감축목표는 수치로만 제시될 것이 아니라, 그 이행 경로와 수단이 명확히 법에 담겨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접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또, 감사원은 기후대응기금의 집행률 저조와 감축 사업 지연을 지적했고, 국회 예산정책처도 2030년 국가 감축목표(NDC)의 달성을 위해서는 추가적 수단이 필요하다며 탄소세 등 강제적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재 탄소중립기본법에는 ‘2030년까지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 감축만이 중장기 목표로 설정되어 있을 뿐, 2050년까지의 목표는 부재하다. 헌법재판소가 짚었듯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목표의 설정은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미래세대의 권리를 고려할 때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를 위해 2030년 이후의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감축목표와 이행 경로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이에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은 기후환경단체 플랜 1.5와 함께 지난 11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과 국가의 감축 책임 강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탄소배출 감축목표,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헌법상 의무
이번 토론회 발제에 나선 박시원 강원대학교 교수는 “감축목표는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헌법상 의무이며, 실효성 없는 목표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국가 간 공정 배분과 세대 간 책임을 명확히 요구한 이번 판결은 산업정책 전반의 설계 원칙을 바꾸라는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미 IPCC와 UN 기후 협약에서도 탄소 예산에 관한 다양한 협의와 보고서에서 내용들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심사할 때 독일과 스위스의 감축 목포 위헌성 심사를 할 때도 탄소 예산을 중요한 개념으로 소개한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탄소 예산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동의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작년 6월, 스위스 여성 노인들의 기본권을 스위스 정부가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거기서도 유럽 인권재판소가 활용했던 심사 기준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이번에 제시하는 심사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박 교수는 “중장기 감축목표는 2035년, 2040년, 2045년 등 중간 목표를 명시하도록 하고 헌재가 제시한 공정배분, 미래세대 부담, 감축의 실효성 등을 고려 요소에 반영해야 한다”며 “ 2035 NDC를 비롯한 장기 감축 경로는 파리 협정의 온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우리나라가 기여할 것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설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감축 의무는 이제 이러한 심사 기준을 통과할 수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탄중법의 개정은 탄소 예산과 형평성 원칙 즉 공정 배분의 원칙을 명시하는 방식으로 개정이 돼야 한다”면서 “중간 목표를 명시하고 중장기 목표는 국제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에 근거해야 되고 배출량의 정의도 순 배출량으로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없게 정리해야 될 것이다. 또 진전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거버넌스를 재정비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현재 감축 경로, 탄소예산 2030년 전후로 거의 소진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2035년까지 65%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창민 플랜 1.5 정책활동가는 이어진 발제에서 “헌재는 감축목표가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우리나라가 기여해야 할 몫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미래의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면서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현재 감축 경로는 탄소예산을 2030년 전후로 거의 소진하게 되며, 2036년 이후에는 연평균 27%의 급격한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또한 “2050년 목표가 법에서 빠진 지금 구조는 결국 미래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라며 탄소중립기본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특히 “2023년에 COP 28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당사국에 대해서 2035 NDC를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설정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했다”면서 “헌재 역시 결정문에서 감축목표 근거 조항인 탄소 중립 기본법 제8조 1항이 1.5도 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전제로 한다고 판시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헌법재판소는 과학적 사실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전 지구적 탄소 예산을 인용했다. 탄소 예산은 지구 온난화를 특정한 온도 목표 이내로 억제하기 위한 잔여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 총량을 의미한다”며 “IPCC 6차 보고서는 온난화를 1.5도로 제한할 확률이 50%인 2020년 기준 전지구적 탄소 예산을 5천억 톤으로 제시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국제 기준으로 전 지구적 감축 경로를 중요하게 인용했다. 이는 온난화를 1.5도로 제한할 확률이 50% 이상인 전 지구적 감축 경로로서 IPCC 6차 보고서가 제시하고 COP 28에서 공인됐다”며 “전 지구적 감축 경로는 온실가스 감축률과 이산화탄소 감축률을 함께 보여진다. 참고로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75% 수준임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온실가스에서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보다 훨씬 높은 90%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최 활동가는 “우리나라의 감축 경로는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전 지구적 감축 경로에서 온실가스 감축률보다 이산화탄소 감축률에 가깝게 수립돼야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전지구적 감축 경로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은 2019년 대비 2030년까지 48%, 2035년까지 65% 감축해야 하고 2050년에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기 감축 경로의 누적 배출량에 대해서 고려할 수 있는 증거가 되는 우리나라의 탄소 예산을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 구체적으로 전지 부적 감축 경로 및 탄소 예산, CBDR-RC 원칙 (파리협정의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등에 근거해서 조속하게 산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감축목표 설정을 위한 탄소 예산 산출의 근거 조항을 법률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모든 이의 권리가 지켜져야 기후위기 대응에 성공하는 것
기후위기를 환경 문제가 아닌 기본권 침해의 문제로 바라보며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어진 토론에서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기후위기는 권리의 문제이기에 우리는 기후 대응을 어떻게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로 바라봐야 한다”며 “단지 설정해 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기후 대응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이의 권리가 지켜져야 기후위기 대응에 성공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 활동가는 “지금까지 국가의 기후 대응 과정에서 국민은 기후 정책의 당사자가 아닌 수혜자로 간주되어 왔다”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임이 아닌 선택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국가의 기후 대응은 현실적으로 타협하고 가능한 만큼만의 논의만을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한 기후에서 살아갈 권리에 관한 내용을 법의 목적 조항에 명시해야 권리 중심의 기후 정책도 실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온실가스 감축, 윤리적 의무를 어떻게 법적 의무로 끌어올 거냐?
이어진 토론에선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해 윤리적 의무와 법적 의무에 대한 고찰이 이어졌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이재홍 교수는 “전체 국가 구조 안에서 국회와 행정부가 담당한 역할과 헌법재판소나 법원이 담당하는 역할은 매우 다르다”며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진전의 속도 얘기를 하는데 진전의 속도가 심사 기준으로 쓰이지 못했다. 이것은 입법자가 결정할 문제고 최악을 심사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본격적인 심사 기준으로 못 들어왔다”고 지적했다.
이재홍 교수는 “윤리적 의무를 어떻게 법적 의무로 끌어올 거냐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해야 된다’ 여기까지 동의할 수 있지만 ‘급속하게 감축해야 된다’라고 하면 그때부터 사람들이 갈리게 된다”면서 “결국 이 상황에서 처음에 어디로 설정할지는 입법자나 행정부의 윤리적 판단이 중요하다. 이후 설정하고 나면 이에 관해서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굉장히 특이하기 때문에 일단 입법자가 윤리적 판단을 해야 되고 행정부에서도 또 윤리적 판단을 해야 된다. 그 결과가 어떻게 설정될지 모르겠지만 설정한 다음에는 일반 국민을 감지할 수 있는 강력한 강제 장치가 의무의 수준이든 권리의 수준이 있어야 된다”고 부연했다. 이어 “물론 탄소 감축에 관해서 권리를 어떻게 설정할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탄소배출 거래권 얘기를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설정할지도 조금 고민을 해봐야 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이번 토론회에선 2030 NDC 달성을 위해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이 수립됐지만 실행력이 없는 방안들로 한국의 탄소예산의 70%를 소진할 2030 NDC 달성조차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배슬기 환경운동연합에서 중앙사무처 활동가는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턴중위에 역할이 부여된 것이 부처 간 정책 예산들을 조율하고 감축목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기획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가 돼야 되는데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배 활동가는 “단기간의 사회경제적 충격을 위해 ‘Bottom-up’ 방식으로 감축 정책과 목표를 수립하는 방식이 원인으로 해석되며, 지속가능한 경제기반 전환의 시그널을 약화시키고 있다”면서 “에너지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적응에 사회적 비용이 늘어남에 따라 탄소세 도입 및 배출권 거래제 유상할당 대폭 강화 등 적극적 목표 관리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을 다시 재생에너지 기술 향상 및 수소 환원제철 등 기후테크에 지원하는 선순환 ‘기후순환경제’ 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정책 개편이 시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감축 이행을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는 감시 및 의무 체계 구축 또한 절실하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부처 간 정책 및 예산을 강력히 조율하고, 감축목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기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실질적인 컨트롤타워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광역시도 및 기초지자체의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중앙계획을 실현하는 핵심 현장이므로 중앙정부와의 유기적 연계를 강화하고 지역 실정을 반영한 하향식 목표 설정이 반드시 개정논의에 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