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하며 학교를 떠났던 의대생들이 1년 반 만에 전원 복귀를 선언했다.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실제 의대생들이 복귀하려면 의대 학사 유연화 등 추가 조치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 12일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한의사협회(의협) 대강당에서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김택우 의협 회장과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 입장문’을 전격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국민께 드리는 약속”이라며, “국회와 정부를 믿고 학생 전원이 학교에 돌아감으로써 의대 교육과 의료체계 정상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선우 비대위원장은 “전 정부 때 잃었던 신뢰를 새 정부와 대화하면서 회복해 왔다”며 “(정부가) 학사일정 정상화를 통해 의대생들이 교육에 복귀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어 “방학이나 계절학기 등을 활용해 제대로 교육받겠다. 학사 유연화 등 특혜와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의대협이 태도를 바꾼 것은 정권교체로 정부·국회와 대화의 장이 열린 가운데, 유급 등 학사 불이익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말한다.

●무늬만 조건 없는 복귀...학사일정·유급·형평성 문제 산적
이처럼 의대생 전원 복귀 메시지에 반기고 반응은 많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학사 일정 ▲조정 유급 문제 해결 ▲기존 복귀 학생들과의 형평성 ▲전공의 추가 복귀 여부 등 숙제가 남아 있다.
우선 대다수 의대 교육은 학기제가 아닌 학년제로 운영되는 만큼, 올해 1학기 유급 조처를 받으면 2학기 복학이 아예 불가능해질 수 있다. 교육부(올 5월 기준)는 전국 40개 의대 재학생 중 유급 대상자가 42.6%인 8305명이고, 제적 대상은 46명이라고 밝혔다. 대학에선 이달 말부터 유급 등 학적 처리를 예정하고 있었다. 의대생이 복귀하기 위해선 대상자까지 정해진 유급 조처를 완화하는 학사 조정이 필요한 셈이다.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 이종태 이사장은 13일 “학생들의 복귀를 환영한다”면서도 “의대협회는 1학기에 복귀하지 않았던 학생들에 대해선 유급 처리를 하고, 새 학기에 교육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학생들의 요구대로 하려면 유급 등과 관련한 학칙도 개정해야 하고, 교육부의 승인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급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의대 본과생(3·4학년)은 1년에 최소 40주가량의 실습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이미 7월 중순을 넘긴 시점에서 제대로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반응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또다시 의대생들에게 특혜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의과대학 관계자는 “이미 1학기가 다 지난 시점에서 남은 한 학기 동안만 수업을 듣고 진급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다른 타과생과 이미 복귀한 의대생 사이에서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12일 입장문에서 “의대협이 국회·정부를 믿고 학교에 돌아오겠다고 발표한 것을 환영한다”며 “다만 시기·방법 등을 포함한 복귀 방안은 대학 학사일정과 교육 여건, 의대 교육과정의 특성을 고려해 대학 및 관계부처와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대생들의 전격적인 화해의 손짓에는 더 이상 버티면 24·25학번과 내년에 입학할 26학번 등 3개 학년이 동시 수업을 받는 ‘트리플링’을 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늦어도 7월 중순 이전에 복귀를 발표해야 여름 계절학기나 2학기 주말 수업 등을 활용해 1학기 과정을 소화해야 24학번과 25학번이 정상적으로 학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또한 이미 1학기에 복귀해 수업을 이수하고 시험을 치른 학생들과 뒤늦게 복귀하는 학생들 간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학내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여기에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에도 영향을 미칠지도 관건인데, 개인병원으로 떠난 전공의들이 복귀를 위한 추가 요구사항(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수련 환경 개선 등)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전문 과목에서 수련전공의들의 복귀 의사는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1년 반 가까이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워온 진료지원(PA) 간호사들과의 역할 재정립, 의료사고 특례법 개정 논의, 전공의 수련 시간 단축 등도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박주민 국회 복지위원장은 의대생과의 공동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실과 정부에 학사 일정 정상화를 통해 의대생들이 교육에 복귀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고 강조했다.

●의료대란 만든 尹 감옥행...결국 난제를 풀어야 하는 이재명 정부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기존 전공의 7대 요구안보다 간소화한 대정부 협상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오늘 오후 5시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과의 간담회 결과를 토대로 19일 대의원 총회를 열어 새로운 대정부 요구안을 확정할 전망이다.
16개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도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이제 필요한 것은 복귀한 학생들에 대한 제도적 보호와 배려”라며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학사 일정 조율, 수련 과정 설계, 정서적 안정과 권리 보장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역시 “새 정부와 국회,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마련해 나가야 할 때”라며 “국회가 대통령과 정부에 건의한 교육 정상화 방안과 지속적인 협의 구조 마련 요청에 깊이 공감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이탈로 1년 반 넘게 '의료대란'을 겪은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앞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의료단체들의 회동 이후 낸 성명에서 “정부가 전공의·의대생에게만 지속해서 특혜성 조치를 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먼저 돌아온 전공의·의대생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다른 환자단체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의대생 복귀를 두고 “사과 없는 복귀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며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다시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있다”는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현재 전국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총 2,532명으로, 의-정 갈등 이전 18.7% 수준에 불과하다. 사직 전공의들은 이달 말 공고될 하반기 모집을 통해 수련병원에 복귀할 수 있다. 다만 절반 이상이 일반의로 의료기관에 취업했고 일부는 수련을 포기해 의대생과 같은 전원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 또한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 대학 간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