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26일 한국전력공사와 함께 서울 삼성동의 한국전력 본사 부지에 대한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한전 부지 낙찰가가 감정가인 3조3,346억 원보다 무려 3.2배나 많은 10조5,500억 원으로 밝혀지면서 현대자동차가 매입가를 과다 책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증폭됐다.
100년 앞을 내다 본 글로벌 컨트롤타워
인수대금을 분납하기로 한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3사의 시가총액은 10월 24일 현재, 낙찰 전날인 9월 17일(99조956억 원)에 비해 무려 15조5,862억 원이나 줄어든 83조5,094억 원으로 주가가 지지부진함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 부지 매입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 7만9,342㎡의 부지를 개발하여 제2의 도약을 상징하는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100년 앞을 내다 본 글로벌 컨트롤타워로 그룹 미래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것이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산업 및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자동차 산업 관련 외국인과 관광객을 적극 유치해 경제효과를 창출함으로써 국가 경제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 현대차 측의 입장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전 세계에 산재한 사업장과 자동차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 된 계열사를 일괄 관리할 수 있는 통합컨트롤타워 건립이라는 현실적 필요성과 글로벌 경영계획, 미래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한전 부지 인수는 단순히 중단기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영 차원에서 30여 개 그룹사가 입주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통합사옥 건립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국제적 위상제고를 위해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 및 글로벌 톱 5 완성차 업체 위상에 걸맞은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를 위한 공간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현대차그룹의 부지 개발 계획은 부지가 갖는 상징성과 공공성을 고려해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통합사옥과 자동차를 소재로 한 테마파크, 컨벤션센터, 호텔, 한류체험공간 등을 건립해 한국 자동차산업의 랜드마크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이 같이 광범위한 계획을 추진하며 염두에 둔 시설은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Autostadt)’라는 자동차 테마파크이다.
자동차 테마파크의 상징 ‘아우토슈타트’
지난 2000년 5월 31일 문을 연 아우토슈타트는 독일의 자동차 산업도시인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연간 10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을 유치할 정도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뛰어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동차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폭스바겐 사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아우토슈타트에는 20층짜리 쌍둥이 원통형 건물이 서있다. 이곳은 20층 모두를 투명유리로 장식했으며, 자동차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8개 브랜드자동차 전시장, 어린이 실내 운전교육장, 놀이터, 미래관, 자동차 기술 체험관, 리츠칼튼호텔, 2개의 오프로드 트랙, 전기차 시승코스 등이 들어서 있으며 누적관람객 수는 약 3천만 명에 이른다.
폭스바겐의 본사와 공장이 있던 볼프스부르크는 원래 작은 공업도시였다. 이곳이 세계적인 자동차의 ‘성지’로 개발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회장의 작은 아이디어였다. 피에히 전 회장은 폭스바겐 공장으로 차를 찾으러 오는 고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우토슈타트의 물론 초기 투자비가 4억3,5백만 유로로 엄청났지만 지금은 폭스바겐 고객보다 자동차 애호가들이 더 많이 방문할 정도로 자동차 테마파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고 있다.
아우토슈타트의 홍보 책임자인 산타크루즈 박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현대차의 글로벌 컨트롤 타워 건설에 대한 영감을 줬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과 독일의 상황이 다르므로 특별한 조언을 하기는 어려우나, 각 나라의 사정에 맞는 독창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브랜드가 12개인 우리와 달리 현대차그룹은 2개뿐이고 역사도 길지 않아 전시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가 숙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독일에서 전하는 자동차 이야기’의 파워블로거 ‘스케치북다이어리’는 ‘한국판 아우토슈타트, 20조자리 짝퉁 안 되려면’이라는 게시물을 통해,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와 아우토슈타트는 규모자체가 다르므로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전부지는 8만㎡ 이내이지만 아우토슈타트는 28만㎡에 달한다.
또한 아우토슈타트의 경우 작은 공업도시로 출발해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방문객들이 주변 호텔에서 숙박하고 지역 내 아울렛에서 물건을 사는 등 지역경제 발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반면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삼성동)는 대형 호텔들과 코엑스, 백화점이 즐비해 건물 자체의 부가가치 창출에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파워블로거 ‘스케치북다이어리’는 현대차그룹이 자동차를 통한 의미 있는 소통의 창구를 만들려고 하는 만큼, 남 부럽지 않은 한국형 자동차 테마파크가 탄생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현대차, 유동성 위기는 없는가
현대차그룹의 한전 부지 매입에 있어서 우선 우려되는 부분은 과연 10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26일 매매 계약 시 매매대금의 10%인 1조 550억 원을 보증금으로 한전에 전달했으며, 나머지 금액은 내년 1월 25일, 5월 25일, 9월 25일로 3회에 걸쳐서 지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신용평가는 인수금액이 감정가액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고 10조 원 이상의 대규모 현금유출이 예상되기 때문에 단기적인 유동성의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향후 인수 주체 간 투자자금의 분담, 향후 구체적인 개발 계획 및 관련 자금조달 방안 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확인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은 2014년 6월 말 현재 별도기준으로 30조 원의 현금성 자산(현금 및 현금성자산, 단기금융자산 포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차입금을 제외한 순현금액(현금성자산-차입금)도 23조원에 이르고 있어 보유 유동성에 기반한 인수자금 조달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인수 이후 현금성 자산과 순현금이 대부분 내부 잉여현금을 통해 보전할 수 있는 수준이며, 중기적인 관점에서 큰 폭의 재무안정성 저하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컨트롤 타워를 건립하면서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동차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 매입비용 외에 추가로도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가진 ‘2014년 3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한전 부지의 개발을 위해 4~5조 원 가량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중 쇼핑몰, 호텔 등은 외부 매각·분양·임대 등을 통해서 2~3조 원 가량을 회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실제로 소요되는 비용은 2~3조 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부지 매입비용을 제외한 건립비 및 제반 비용은 30여개 입주 예정 계열사가 8년간 순차 분산 투자할 예정이어서 사별 부담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위의 그래프에서 4~5조 원의 투자비용을 단순히 현대차의 현금성 자산으로 계산하더라도 12.4조 원에서 7.4조 원가량을 보유할 수 있어 우선 당장 유동성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수금액이 감정가액보다 지나치게 높고, 투자자산의 실질적인 가치, 장기적인 개발 과정 및 자금 소요, 기타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 관련 재원 확보 등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한신평은 내다봤다.
10조 원 낙찰가, 어떻게 볼 것인가
현대차그룹이 자금조달 방안에서는 안정적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한전 부지의 가치가 10조 원에 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그룹 통합사옥 부재로 인해 계열사들이 부담하는 임대료(보증금, 금융비용 포함)가 연간 2,400억 원을 웃돌고 있지만, 글로벌 컨트롤 타워 건설로 임대료로 빠져나가는 부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룹 전체가 하나로 통합되면 수직계열화 된 회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며, 시간적으로나 거리적인 낭비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당내부자거래를 조심스럽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모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동 일대가 국내에서 가장 시세가 비싼 노른자 땅 중의 하나이므로 계열사에게 제시할 임대료 가격은 결코 싸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계열사에게 임대료를 싸게 준다면 이는 부당내부거래가 되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한 경제 전문가는 현대차그룹이 계열사에게 임대료를 싸게 받으면 내부자거래가 되겠지만, 계열사에게 합당한 가격으로 분양을 해서 판매하면 계속해서 들어가는 연간 임대료는 절약되고 내부자거래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전 부지의 가치에 대해서는 의혹이 남는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9월 22일 현대차그룹 한전부지 매입 입찰과 관련해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이사회 열람 및 등사를 청구했다. 지난 2011년 삼성생명은 한전 옆에 위치한 한국감정원 부지를 평당(3.3㎡) 당 6,993만 원에 구입했는데, 현대차그룹은 낙찰가로 평당 4억 3,879만원에 구입해 무려 6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격차는 그동안의 시장가치 반영과 향후 지가상승 등을 감안하더라도 합리적인 범위를 이탈한 수준이다. 실제로 삼성역 주변 부동산 업계에 문의해 본 결과, 현재 한국감정원 부근의 평당 가격은 1억 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경제개혁연대는 9월 22일 이후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입찰과 관련된 이사회 의사록을 열람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사회 의사록을 열람한 후 지배구조 관점에서 불합리한 점을 발견했다. 한전 부지 최종 계약 체결을 위한 9월 26일 이사회에 그룹의 총수인 정몽구 회장은 물론 정의선 부회장도 모두 불참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책임추궁을 피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컨트롤 타워가 어떤 식으로 건립될지는 현 시점에서 알 수는 없다. 그룹 총수가 “현대차그룹의 100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10조 원에 가까운 인수금액을 제시한 만큼, 현대차그룹 이해관계자와 국민이 공감하고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향으로 글로벌 컨트롤 타워가 건설되고 운영되길 바라본다.
MeCONOMY November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