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볼 경기 장면. 골볼은 소리가 나는 공을 상대팀 골대에 넣는 시각장애인 스포츠로서 올림픽에는 없는 패럴림픽 고유 종목이다. 1946년에 만들어진 골볼은 2차 세계대전에서 시력을 잃은 참전용사들의 재활을 돕기 위한 스포츠로 시작되었다.
패럴림픽의 기원
2021년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2020 도쿄 패럴림픽이 개최된다. 패럴림픽(Paralympics)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전치사 "파라 " (곁에 혹은 함께)와 단어 "올림픽"의 결합으로, 올림픽과 나란히 나아가는 대회이며 패럴림픽 무브먼트와 올림픽 무브먼트는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패럴림픽의 기원은 영국의 스토크 맨더빌 병원의 의사 루트비히 구트만(Guttmann, L.)에 의해 시작되었다. 루트비히 구트만은 나치 독일을 피해 잉글랜드로 건너와 스토크 맨더빌 병원에 척추부상센터를 만들었다. 패럴림픽의 전신인 최초의 스토크맨더빌대회는 병원의 이름을 본딴 것으로 1948년 7월 29일에 열렸고, 16명의 부상 군인들이 양궁 경기를 펼쳤다.
이후 스토크맨더빌대회는 패럴림픽 대회가 되었고, 196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23개국 400명의 선수가 참가한 제1회 패럴림픽 대회가 열렸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와 별도로 설립된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는 전 세계의 패럴림픽 무브먼트를 관장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1989년에 설립되었다. 패럴림픽의 상징(아지토스)은 빨강과 파랑, 초록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 가지 색은 전 세계의 국기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색상이다.
세 아지토스(라틴어로 "나는 움직인다"의 의미)는 중앙 지점을 둘러싼 모양을 하고 있으며, 움직임을 상징하고 전 세계의 선수들이 모여 경쟁을 펼치게 해주는 패럴림픽 무브먼트의 역할을 강조한다. 1964 도쿄 올림픽은 공식 문서에 처음으로 '패럴림픽'이란 용어를 사용한 대회였고, 패럴림픽과 올림픽은 1988 서울 올림픽부터 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2020 도쿄패럴림릭
1964년에도 패럴림픽을 개최했던 도쿄는 역사상 최초로 패럴림픽을 두 번 개최하는 도시이다. 배드민턴과 태권도는 도쿄 2020 패럴림픽 무대에서 처음 선보이게 된다. 2020 도쿄 패럴림픽의 마스코트 소메이티는 벚꽃나무의 한 종인 왕벚나무를 뜻하는 일본어 '소메이요시노'에서 나왔고, 여기에 더해 영어 발음은 "소 마이티(so mighty)"에 가깝다.
도쿄 2020 패럴림픽에서 주목할 점은 최대 여섯 명이 참가하는 패럴림픽 난민 대표팀이 대회에 참가 예정이다. 난민 대표팀의 단장은 미국의 패럴림피언이자 난민 출신인 일레나 로드리게스가 맡게 된다. 로드리게스는 런던 2012 패럴림픽 수영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6명의 난민 대표팀 선수 가운데 파르페 하키지마나는 지금까지 패럴림픽 선수 중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바로 르완다에 위치한 마하마의 난민 캠프에서 곧바로 2020 도쿄 패럴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하키지마나는 조국 브룬디의 폭력과 내전에서 탈출하였는데 이후 캠프는 공격을 받아 그의 어머니는 사망했고, 하키지마나는 총격으로 인한 부상으로 왼팔을 거의 잃게 되었다. 이후 재활을 위해 다양한 운동을 하다가 16살이 되던 해 태권도를 접하게 되었고, 현재 난민 캠프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패럴림픽과 존 롤즈의 차등의 원칙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논쟁이 있지만 불평등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회적 담론이다.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종목에서도 경제 또는 사회적 차이,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신체적 격차 등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파라’ (곁에 혹은 함께)라는 패럴림픽의 무브먼트가 패럴림픽을 계기로 확산되고 있다.
존 롤즈(John Rawls, 1921~2002)는 그의 책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정의의 두 원칙을 설명한다. 그중 제 2원칙 중 ‘차등의 원칙’은 경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고자 제안된 개념이다. 그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산 및 소득의 분배가 반드시 균등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편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롤즈는 단순한 평준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재산 및 소득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편성하기 위해서는 “최소수혜자(least advantaged human beings)의 기대치를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차등의 원칙은 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과도한 기대치를 허용하지 않으며, 가장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의 기대치를 극대화하는 원칙이다. 여기서 확인해야 할 사항은 누가 최소 수혜자인가이다. 롤즈에 의하면 최소수혜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숙련 노동자와 같이 특정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집단의 소득과 부의 평균치 보다 그 이하를 갖는 모든 사람들이 최소수혜자이다. 둘째,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소득이나 부가 중간치의 절반 이하를 갖는 모든 사람들이 최소수혜자이다. 셋째, 다른 사람보다 사회적, 역사적, 자연적인 우연성 등으로부터 최소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 가정의 경제력과 계급적 태생이 불리한 사람들, 타고난 능력이 뛰어나지 못한 사람들 등 운이 상대적으로 나빴던 사람들이 최소수혜자이다.
위와 같이 정의된 최소수혜자들의 기대치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차등의 원칙은 크게 보상, 호혜성, 박애가 그 특징이다. 이러한 롤즈의 차등의 원칙은 올림픽과 패럴림픽 등 스포츠 경기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차등의 원칙에 입각한 최소수혜자에 대해 적극적 정의를 보장하는 것은 특별히 패럴림픽의 무브먼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올림픽 종목에서 이러한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차등이 경기 규칙 속에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를 가진 러너들은 팔이나 손에 묶은 얇은 끈으로 연결된 가이드 러너와 함께 달린다. 하지만, 시각 장애를 가진 러너들은 반드시 가이드 러너보다 앞서서 결승선을 통과해야 하는 규칙도 있다. 즉, 도움을 주지만 결승선의 통과는 참가자 본인의 몫이다.
또 다른 예로는 휠체어 테니스는 공이 지면에 두 번 바운드 되는 것이 인정된다. 그리고 휠체어 농구에서 선수들은 드리블, 슛, 패스 사이에 자기 휠체어를 두 번까지 터치할 수 있다. 그 이외의 상황에서는 트래블 바이얼레이션이 된다. 패럴림픽 유도 선수의 도복에 있는 붉은 점은 이들이 B1 등급 선수란 것을 나타내며, 이 등급의 선수들은 시력이 아주 낮거나 명암을 판별할 수 없는 정도의 시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골볼 선수들의 시각 장애 정도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경기를 위해 모든 선수들은 눈을 완전히 가리는 안대를 착용해야 한다. 또한 선수들이 공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경기를 펼쳐야 하는 5인제 축구와 골볼 종목은 관중의 정숙이 요구된다.
올림픽과 비교하면 배구 경기에서 양 팀 사이의 네트는 남녀 각각 2.43m와 2.24m 높이지만 패럴림픽의 좌식 배구는 네트 상단 높이가 남자 1.15m, 여자 1.05m로 더 낮다. 그리고 유도 경기 시작 전에 양 선수들이 상대의 옷깃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규칙은 패럴림픽 유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축구경기도 마찬가지로 리우 2016부터 5인제 축구의 골대 크기는 너비 3m, 높이 2m에서 하키 골대 사이즈 (너비 3.66m, 높이 2.14m)로 커졌다.
패럴림픽 무브먼트
패럴럼픽의 개최는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넘어서 국제적인 무브먼트, 즉 ‘파라’ (곁에 혹은 함께)라는 사회운동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2008 베이징 패럴림픽은 유명 관광지를 포함해 중국 전역에 있는 기반 시설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만리장성에는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되었고, 600년 된 자금성도 접근성 측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
영국 통계청의 기록에 따르면 2018년에 고용된 장애인 수는 385만 명으로, 이는 2012 런던 패럴림픽 이전보다 거의 100만 명이 늘어난 숫자이다. 이번 2020 도쿄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여자 선수들은 역대 최다 규모이다.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IPC)의 참가자격 기준에 따르면 전체 참가 선수들 중 최소 40.5퍼센트가 여성이며, 이는 1,782명에 해당하는 숫자로, 리우 2016의 1,671명(38.6퍼센트)보다 늘어났다.
동시에 이들의 무브번트는 스포츠경기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최근 다수의 장애인 운동 선수들도 의료인으로서 COVID-19와의 싸움 최전선에 서 있어 그 사회적 무브먼트가 주목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조정 챔피언이자 의사인 애니카 반 데르 미르, 영국 탁구 패럴림피언이자 수영선수인 킴 데이벨,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장애인 수영 선수이자 의사인 제네시스 릴 등 많은 장애인 선수들이 스포츠 경기와 함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활동에 몸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각장애인들이 2020 도쿄 패럴림픽 메달의 차이를 촉감으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패럴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메달 측면에 둥근 모양의 표식이 새겨지게 되었다. 하나는 금메달, 두 개는 은메달, 세 개는 동메달을 뜻하는 이 표식에 더해 메달의 앞면에는 점자로 "도쿄 2020"이 새겨져있다.
이처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패럴림픽의 무브먼트는 코로나 19라는 제한적 상황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변화의 물결을 계승하고 패럴림픽 모토의 가치를 확장하여 지속적으로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권리와 사회와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