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의 만남, 새로운 열림(2)

  • 등록 2024.01.2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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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35)

기독교가 이 땅에 미친 영향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은 기독교가 전해 내려오기 전에 모두 유교와 불교, 도교, 무속(샤머니즘)을 공통으로 갖고 있었는데, 나라마다 그것들의 혼합된 모습이나 특징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들 세 나라는 유일신의 종교 전통을 가진 적이 없으므로 심성이 불안하다. 불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세 나라 중 그래도 불교와 무속 신앙에 의지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가장 안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불교와 무속 신앙은 염세적이고 운명적인 성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조선은 성리학이 정치와 사회 전반을 지배했고, 양반 지식인들은 불교와 무속에 대해 무시하거나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듯하다. 일반 백성들은 불교와 무속에 의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가 들어왔다. 기독교는 죽음 이후 천국을 약속하는 구원과 삶이 끝나고 그 이후에도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종교다. 기독교는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의 십자가 희생과 그것을 기록한 성경이 증명해주고 있다는 믿음이다. 인류를 위한 예수의 구원 사상은 자연스럽게 인종과 혈연과 국가,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평등, 자유의 가치를 아울러 탄생하게 했다.

 

이와 같은 구원, 사랑, 평등, 자유의 가치는 유교와 불교에서는 없거나 미약한 관념이었다. 기독교는 그것을 믿는 한국인들에게 처음으로 사후 구원의 확신하게 했고 현세의 삶에서 목표를 설정하여 긍정적이고 진취적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게 했다.

 

구원과 희망과 사랑을 믿으므로, 프랑스와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이 낯선 조선 땅에 와서 전도하다 순교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외국인 성직자들이 자국의 안온한 삶을 버리고 한국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다. 이제는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먼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나라를 찾아가 봉사하는 것도 동일한 믿음과 가치를 실천하려는 까닭이다.

 

기독교는 특히 신분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 사회는 양반과 중인, 상민 간 구분을 엄격히 하는 것이 사회를 안정시킨다는 사고가 지배했던 시대였다. 또 여성들은 윤리와 관습의 굴레에 갇혀 자유가 없는 존재로 살아가야 했으며 글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기독교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자유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고종은 선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선교사들은 병원을 열고 학교를 설립하는 활동으로 우회적인 선교 방법을 택했다.

 

기독교 선교는 앞선 의학 기술로 조선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고 병을 고치는 일을 행했다. 의학과 더불어 기독교가 세운 학교들은 학문과 과학과 기술을 전파하는 선봉장이 됐다. 기독교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의학과 학문, 과학, 기술의 발달은 한참 늦어졌을 것이고 교육도 충실히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글 성경의 보급과 간행은 한국인의 평균 문해율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했다.

 

기독교는 식민지 시대 한국인들의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혹자는 외국 선교사들이 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과 선교사의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 평가라고 본다.

 

일본강점기 조선인의 독립운동은 바로 체포, 구금되고, 혹독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외국인 선교사는 이 땅에 종교를 전파하고 사랑을 실천하러 온 것이지 조선의 독립운동을 하러 파견된 것은 아니다. 또 외국인 선교사들이 독립운동가를 돕고, 그런 활동에 가담하는 일은 곧 일본 경찰에 적발돼, 처벌받거나 추방되기 마련이다.

 

역사를 씀에 있어서 이분법적 시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항상 그 시대로 돌아가서 당시의 환경, 각 사람의 역할과 처한 사정을 살펴보고 판단하지 않으면 천박한 역사 서술이 되기 쉽다.

 

어떤 종교도 마찬가지이지만 성직자와 신자들이 순도 1백 퍼센트 교리대로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고, 그런 이유로 인간에게 순수한 가르침을 따르라는 종교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는 순도가 높은 사람들과 좀 낮은 순도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진보해왔고, 그렇게 기록해야 전체상을 볼 수 있으며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편협한 역사 서술은 후대인들에게 갈등과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될 수 있다.

 

개개인의 행동을 볼 때 한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뉘우치고 끝이 좋으면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고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이 선의 잣대에서 굴곡이 있다고 해도 너그럽게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야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의 흐름 의미와 방향을 알 수 있다.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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