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빵을 먹을까 밥을 먹을까?’ 처럼 간단한 선택도 있지만 ‘내가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까?’, ‘어떤 전공을 선택할까?’ 같은 복잡한 선택도 있다. 간단하든 복잡하든 그 전제는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 인식을 통해 사람은 기회비용이나 기대값을 설정하고 나름의 판단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한다. 그 판단의 기준은 사람마다 무척 달라서 선택의 결과를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대부분의 만성 질환자들이 본인이 그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약을 먹고는 이상해진 몸 상태를 다시 치료하기 위해 또 다른 약을 찾아 헤맨다는 것 같다. 만성질환으로 약을 처방받은 사람들은 모두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고지혈증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본다.
고지혈증으로 진단받기 위한 여러 가지 판단기준이 존재하는데, 대체로 진단의 핵심 지표는 콜레스테롤이다. 콜레스테롤은 그 구조가 큰 데다 복합체를 형성하기 쉽고 지용성이 높아 혈관에 붙음으로써 우리 혈액의 흐름을 막는다. 콜레스테롤 생성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지혈증 치료제의 대표주자가 스타틴 계열의 약물이다.
공기만큼이나 우리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 아세틸-CoA이다. 아세틸-CoA가 없으면 인간은 바로 사망한다. 그 중요한 아세틸-CoA는 콜레스테롤을 만드는데도 사용되는데, 스타틴이란 약물은 아세틸-CoA속에 있는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효소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아세틸-CoA가 콜레스테롤만 만드는 게 아니라, Dolichol, Coenzyme Q와 같은 것들도 만든다는 데 있다. 따라서 콜레스테롤을 줄이기 위해서 스타틴을 복용하면 Dolichol, Coenzyme Q도 만들지 못하게 한다.
Coenzyme Q가 부족하면 근육, 에너지, 신경 관련 문제들이 발생한다. 가볍게는 근육통 같은 문제에서 크게는 기억력 상실까지 나타날 수 있다. Dolichol이 부족하면 발달지연, 간이나 소화기 문제를 일으키고, 근육약화, 면역결핍 등과 관련한 다양한 희귀질환이 나타난다.
많은 고지혈증 치료제 복용 환자들이 ‘나이 먹어서 그런지 요즘 몸이 너무 아파’라고 하거나 ‘40이 넘으니 기억력이 너무 안 좋아졌다’고 한다. 자 이제 고지혈증 환자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지혈증을 막느냐, 여러 부작용을 받아들이느냐 둘 중 하나이다.
나와 친한 사람이 ‘고지혈증 치료제를 먹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 주는 편이다. “심각하거나 급성이 아니라면 식이요법을 먼저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고지혈증 치료제가 완전히 악의 근원이라거나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약을 먹을 때에 적어도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는 알고 선택을 하는 것이 환자들의 권리이니 설명은 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건 우리나라 약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일본, 유럽 어디를 가도 고지혈증 환자에게 그 부작용 설명을 통해 선택지를 주는 나라는 없다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니 결국, 환자가 약을 알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