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수입 콩을 들여오면서 특정 업체 창고까지 수입 콩을 운송해주고 실경비의 절반 정도만 받으며 연간 수십억 원을 낭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임직원 77명에게는 정부지침을 어기고 주택자금 명목으로 72억을 대출해준 것이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21일, 임미애 의원(농해수위. 더불어민주당)이 aT 및 감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T는 ‘99년부터 올 초까지 매년 약 6만 톤의 수입콩을 비수도권에 소재한 콩 수입단체(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 한국콩가공식품협회 등 4개 단체) 창고에 운송해줬다.
aT는 이 과정에서 운송 업체에 지급해야 할 운송비를 농안기금으로 우선 지불하고 단체로부터 운송비에 대한 금액을 추후 정산 받았다. 그런데 운송비 책정을 실제 운송비용이 아닌 kg당 10원(22년부터 20원/kg)으로 일괄 책정하면서 실제 운송비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국민 세금, 운송비 명목으로 매해 15억 증발
감사원 감사 결과, 2006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aT가 지출한 운송비는 총 244억이었으나 콩 수입 단체가 부담한 운송비는 121억으로, 123억의 차액은 aT가 농안기금으로 메우면서 기금손실이 발생했다. 농산물가격안정을 위해 걷힌 국민 세금이 aT의 방만한 경영으로 매해 15억이 증발된 셈이다. aT가 운송대행을 시작한 것은 1999년으로 2005년까지의 자료는 오래되어 확인이 불가하다고 밝혀 실제 농안기금 손실은 이보다 클 것으로 추정된다.
aT는 운송비 지원 사유에 대해 영세한 두부가공업체의 경영지원과 국민기초식품인 두부의 가격안정을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콩 수입 단체 소속으로 실질적인 운송비 혜택을 받은 업체에 국내 두부 점유율 1,2,3위의 대기업(풀무원, CJ제일제당, 대상)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단체로부터 수입콩을 배정받는 업체는 1,151개로 이 중 3사가 10%의 물량을 차지하고 있다.
◇ 농안기금 123억 탕진, 책임은 나 몰라라
aT 관계자는 운송비를 kg당 10원으로 책정한 이유를 묻는 M이코노미뉴스 기자의 질문에 "지난 1999년 이전에는 두부가공업체 단체인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가 콩을 일괄 구매하여 인천에 있는 정선공장에서 전국에 산재한 회원사에 운송해줬다. 당시 단체는 운송거리에 관계없이 운송비를 정액(21.6원/kg)으로 받았는데, 수도권에 있는 업체들이 형평성에 불만을 제기해서 이때부터 aT가 비수도권에 있는 단체의 지부 창고까지 수입콩을 운송해주게 됐다. 지역 단체창고에서 각 가공업체 공장까지 배달되는 운송비는 각 업체가 지불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운송비가 많이 드는 비수도권 두부가공업체 지원을 목적으로 kg당 10원으로 운송비를 책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수도권 12원, 대전 32원, 부산 40원, 제주 86원 대비 절반을 훨씬 밑도는 파격적인 금액이다. 영세한 두부가공업체에 대한 지원이라면 농안기금 성격상 충분히 이해될만 하지만 수입콩 물량 10%를 차지하는 대기업에까지 실질적인 운송비 혜택이 간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aT 관계자는 농안기금 지원 사업에 대기업이 왜 포함된 건지를 묻는 질문엔 “단체에 소속된 비수도권 두부가공업체를 위해 단체의 지부창고까지 수입콩을 운송했다. 두부용 콩에 대한 신청, 배분에 관한 사항은 단체의 소관으로 대기업은 그 단체의 회원이기에 공사가 개별업체의 신청, 배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발뺌했다.
M이코노미뉴스가 한 수입단체에 수입콩 운송에 대해 묻자 단체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왜 우리에게 물어보냐. aT가 진행한 거니 거기에 물으라”고 난색을 표했다. 국민세금 123억 원이 증발했는 데 책임지는 곳은 없다는 얘기다.
국감에서 문제를 제기한 임미애 의원은 “aT가 농안기금으로 국내 농가를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수입콩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농안기금이 농산물가격안정을 위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만큼 대기업을 배불리는 게 아닌 우리 농민의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aT, 임직원 77명에 특혜성 주택자금 77억 대출 점입가경
지난 22일 열린 국감에서는 aT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최근 3년간 임직원들에게 400억 원 상당의 특혜성 대출을 해줬다는 지적도 제기돼 충격을 더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천호 의원이 받은 자료에 따르면, 두 공사는 2022년부터 최근까지 정부 지침을 위반하고 임직원 1천75명에게 389억6천700만원의 대출을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촌공사는 주택자금 대출한도 기준을 초과해 최근 3년간 임직원 67명에게 총 71억3천만 원의 주택자금을 대출해줬고, 일부 직원은 주택자금 대출한도의 배에 달하는 1억2천만 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aT 역시 같은 기간 임직원 77명에게 주택자금 대출한도(7천만원)를 초과해 최대 1억 원까지 총 72억9천500만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서천호 의원은 "국민들이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임직원에게 특혜성 대출을 해준 것은 부적절하다. 사회 통념상 과도한 복리후생제도 운용을 지양하라는 정부 지침의 취지를 고려해 노사 간 협의를 통해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국민세금인데 자기 배 불리기에만 혈안된 모습에 공분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에 대해 정부기관 조직진단 자문을 맡고 있는 임도빈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오래된 문제다.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제도는 있지만 이를 안 지키는 게 문제다. 도덕은 수치심에서 비롯하는데 수치심이 없는데 어떻게 도덕을 지키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공공기관의 자정 방법에 대해 그는 “공공기관장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평가에 이런 문제를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 외부에서 감시역할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