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산토끼가 인간에게 느리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고?

  • 등록 2025.03.07 09: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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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무의 기후 칼럼

 

사람들은 대개 산토끼와 집토끼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리고 산토끼가 우리나라의 고유종이라는 사실도 잘 모른다. 산토끼는 학명이 래푸스 코레아나(Lepus coreana)로 한반도에서만 산다. 흔히 알고 있는 흰토끼는 일본에서 들여온 수입종이다.

 

집토끼는 굴을 파지만 산토끼는 굴을 파지 않는다. 바위틈이나 숲에서 산다. 최근 들어 서식지가 파괴되고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몰려 산토끼를 만나기 어렵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토끼몰이를 할 정도로 흔했다. 달리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서 허공을 붕붕 날아다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산토끼가 언제 어떻게 영국으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산토끼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그곳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펜데믹으로 도시가 봉쇄됐을 때 시골집에 머물던 한 작가가 우연히 산토끼 새끼를 기르면서 인생관이 바뀌었다. 가축을 길러본 사람은 알지만 우리는 동물로부터 인생살이를 배울 때가 많다. 오죽하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속담도 있잖은가.

 

생태적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주는 “산토끼 기르기”란 책을 소개한다. 이 책 저자인 영국출신의 작가. 클로이 달튼(Chloe Dalton)이 팬데믹 기간과 그 이후에 산토끼를 기르며 자신의 인생관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봉쇄로 인터넷은 많은 화이트칼라 근로자에게 일, 학교, 오락, 사회 활동의 생명선이었다. 그 생명선을 이어주는 라우터 케이블이 끊어진 처참한 꼴을 보았을 때 클로이 달튼은 당황하진 않았다. 하지만 잇몸을 드러내는 가해자-자신의 영국 시골집을 공유한 갈색 산토끼한테는 “짜증이 최고조로 오르는 드문 순간”을 체험했다.

 

그녀는 "한숨이 나왔다,”면서 “그놈의 산토끼 암컷이 TV의 연결선까지 잘라 먹어버렸으니까”라고 쓰고 있다.

 

영국의 외교 정책의 전문가이자 작가, 그리고 정치 고문인 달튼은 자기 집 전기선이 갉아 먹힌 꼴을 보면 완전히 멘붕에 빠지는 그런 유형의 사람처럼 비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우선순위는 외견상 버려진 듯 보이는 레버렛(levernet, 토끼를 뜻하는 프랑스어 리에브르의 애칭)을 구출하는 그녀의 명상적인 회고록 “산토끼 키우기”를 쓰는 동안 바뀌었다. 이제는 오히려 날카로운 구리 선을 갉아먹으면서 혹시 녀석이 입을 다쳤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 책은 2021년 연초, 추운 어느 날 아침에 달튼이 밖에서 짖어 대는 개가 왜 그런지를 보러 나가본 후 자기 삶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에 대한 일화다. 밖으로 나갔다가 그녀는 보금자리의 덮개나 어미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땅에 널브러져 있는 갓 태어난 산토끼 새끼를 발견했다.

 

처음에 그녀는 그대로 두었다. 자연의 방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몇 시간 후 돌아와 보니, 녀석은 여전히 땅바닥에 있었고 혹독한 날씨와 잠재적인 포식자에게 노출되어 있음을 알고 별다른 계획도, 산토끼를 키우는 방법에 관한 지식도 없이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집으로 옮겼다.

 

지역 환경보호론자가 녀석이 생존할 가능성에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는 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달튼은 헌신했다. 젖먹을 어미에게서 떨어진 동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먹이를 줘 본 사람은 첫날밤 레버렛의 입에 필사적으로 양의 분유를 물린 일화를 읽으면 즉시 지나간 일을 떠올리리라.

 

그녀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토끼(집토끼를 말함)에 대한 정보만 가득했다. 산토끼 자체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녀는 산토끼 연구에 깊이 파고들었고, 심지어 18세기 윌리엄 카우퍼의 시를 참고하여 레버렛에게 어떤 고형물을 먹이면 좋을지 단서를 찾았다.

 

"오트밀 죽을 먹이라는 마지막 계시를 얻었지요. 그릇에 오트밀을 몇 개 뿌리자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이 오트밀을 삼켰습니다"라고 썼다.

 

달튼은 녀석에게 이름을 붙이거나, 녀석을 길들이거나, 토끼장에 가두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집을 산토끼 방목형 숙박 시설로 만들고,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녀석의 행동은 그녀의 행동도 바꾸기 시작했다. "저는 레버렛의 위엄있는 모습, 그 모습에서 나오는 행복감과 평온함, 그리고 삶의 단순함에 감동했습니다."

 

일에 치중한 자신의 삶을 집의 새 동료가 된 털북숭이가 소개하는 일상적 리듬과 환경 의식에 적응하면서 그녀는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난 코로나가 끝나고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만 기다려 왔어, 하지만 내가 이렇게도 단순한 피조물에서 이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무엇을 또 기다리며 뭔가를 찾아내려고 애써야 하는 걸까?” 라고 달리는 속도로 잘 알려진 이 동물에게 느림의 미학을 배우는 아이러니를 저자는 잃지 않는다.

 

많은 토끼에 대한 지식과 역사가 이 책의 이야기에 섬유처럼 짜여 있고 달튼은 그 섬유를 세심한 묘사와 실용적인 감성으로 전하고 있다.

 

정보적인 측면은 때때로 첨벙거리며 건성으로 다니는 게 아니냐고 느낄 수 있는데 여러 구절(句節)마다 인간과 산토끼 간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며 이 동물들이 때로 얼마나 끔찍하게 대우받았는지 보여준다(영국의 산토끼 보존 위탁 사업체, Hare Preservation Trust에 따르면, 사냥과 농업으로 영국의 갈색 산토끼 개체수는 지난 세기에 80%가 감소했다).

 

동물과의 조우를 다룬 책이 많이 나와 있고, 그런 주제의 좋은 책은 자연이 점점 훼손되고 건설로 파괴되고, 도로가 포장(鋪裝)되면서 우리에게 목가적인 휴양처 역할을 한다.

 

우리는 구태여 캐서린 레이븐(Catherine Raven)의 "Fox & I", 칼 사피나(Carl Safina)의 "Alfie & Me", 헬렌 맥도날드(Helen Macdonald)의 "H Is for Hawk"와 같이 비슷한 주제의 최근 회고록을 펼치지 않고서도 변형적인 줄거리의 전반적인 윤곽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달튼이 보살피는 연약한 피조물은 먹이 사슬에서 훨씬 더 아래 단계에 있는 동물이라, "산토끼 기르기"를 읽다 보면 오히려 극적인 긴장감이 더해진다. 과연 이 작은 피조물이 끝까지 이야기를 꾸려갈 수 있기나 할까?

 

책의 줄거리를 더 공개하면 독자는 가장 흥미로운 순간을 놓치기 마련이다. 특히 토끼가 성숙해지고 우선순위가 바뀌는 순간은 더 그렇다. 하지만 달튼의 명확하고 절제된 산문과 데니스 네스터(Denise Nestor)의 섬세한 삽화는 시골에서 생활하는 듯한 부드러운 분위기와 오히려 펜데믹 이전보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상태로 돌아온 어느 한 세계에서 작은 위안거리를 제공한다. "산토끼 기르기"에서 자연은 실제로 자연스럽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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