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배터리] 中 굴기에 밀린 K-배터리, 정부차원 '신소재·소부장 R&D' 단비

  • 등록 2025.06.15 17: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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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엔솔, SK온, 삼성SDI 등 국내 3사 점유율 글로벌 20%에 그쳐
전고체 배터리 R&D, 생산세액공제, 정책금융 등 종합지원책 내놔
제조업 육성책, 공급망 독립, 모빌리티 플랫폼 등 미래기술 확보전

 

 

글로벌 배터리 산업에서 ‘K-배터리’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중국의 CATL과 BYD를 중심으로 한 중국 기업들이 점유율 60%를 넘어서며 독주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나아가 15일에는 중국 배터리 업계 5위인 이브 에너지는 홍콩 증권거래소 IPO를 통해 신규 자본을 조달할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20%에도 못 미쳐 기술력과 투자 여력 모두에서 경쟁력을 위협받고 있다. 배터리 소재 분야 역시 중국의 우세가 두드러지며, 한국은 포스코퓨처엠 외에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K-배터리 지원 공약’은 업계에 단비처럼 작용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 R&D, 생산세액공제, 정책금융 등으로 이어지는 종합적 지원책은 국내 기업들이 다시금 반격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조세특례제한법의 구조적 한계, 세액공제의 실효성 등 당면 과제도 만만치 않다.

 

본 기획에서는 글로벌 배터리 주도권을 둘러싼 격변 속에서 K-배터리가 처한 현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 방향, 그리고 전문가들의 해법을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 이호근 대덕대학교 교수, 박철완 서정대 교수 및 업계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 “中 기술 굴기, 글로벌 배터리 삼켰다”… 李정부 배터리정책, 구원투수 될까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은 연평균 13.0%의 고성장을 거듭하며 2035년 5,78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수치는 2030년을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에너지전환 가속화에 따라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성장 곡선 위에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입지는 점점 흔들리고 있다. 올해 1~4월 글로벌 전기차 등록 대수는 580만 대를 돌파하며 전년 동기 대비 34.6% 늘었지만,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은 17.9%로 주저앉았다.

 

반면 중국 기업들의 질주는 멈출 줄 모른다. CATL은 글로벌 배터리 사용량 기준 점유율 38.1%로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BYD는 무려 127.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격차를 좁히고 있다. 이들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데 더해, 헝가리·태국 등 해외 거점까지 빠르게 확장해 북미와 유럽시장까지 잠식 중이다.

 

한국 배터리 업계에 가장 뼈아픈 부분은 미중 무역전쟁 여파다. 중국은 배터리 원재료 선점을 강화하고, 미국은 전기차 억제 및 내연기관차 지원으로 산업 지형을 흔들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맞춰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국내 배터리 3사 입장에서는, 미국이 전기차 보조금 축소나 정책 전환을 시사하는 움직임은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이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률 50% 달성’을 포함한 ‘K-배터리 육성’ 공약을 발표해 업계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M이코노미뉴스에 “글로벌 수요 둔화와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정부의 전략적 지원은 절실한 상황”이라며 “조세 환급이나 세제 혜택을 포함한 구체적인 제도들이 조속히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이재명 대통령의 배터리 공약에 환영을 뜻을 밝히면서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 성장을 위해 한국판 IRA 제도를 신설해 소비자들이 직접 혜택을 볼 수 있는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 밸류체인 갖춘 K-배터리, 살아남아야 빛 본다…“지금이 결정적 순간”

 

글로벌 완성품 시장에서는 중국에 밀리고 있지만, 한국 배터리 산업의 생태계는 의외로 탄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배터리 셀뿐 아니라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핵심 소재와 제조 장비까지 ‘전 밸류체인’을 자체 구축한 몇 안 되는 국가다. 실제로 에코프로와 LG화학(양극재), 포스코퓨처엠(음극재), W-scope와 SKIET(분리막), 엔켐과 솔브레인(전해액)은 각각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제조 장비의 국산화율도 90%에 달한다.

 

▶ 이차전지 글로벌 기술수준 비교

 

이러한 소재와 부품 경쟁력은 수출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완제품은 해외에서 조립되지만, 해외 공장에 납품되는 부품은 한국산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배터리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8%, 양극재 수출은 2021년 43억 달러에서 2023년 127억 달러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청주, 울산, 포항, 새만금 등 전국 곳곳의 산업단지가 배터리 생태계의 허브로 자리 잡으며 지역균형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표면적인 수출 성과와 달리 업계 내부에서는 깊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는 “전기차 보급이 일시적으로 둔화된 캐즘(Casm) 상태지만, 앞으로 드론, 항공기, 선박 등 새로운 수요처가 열릴 것”이라며 “문제는 그 시점까지 국내 기업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배터리 슈퍼사이클을 기대하며 대기업들이 중소 협력업체들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며 독려하고 있지만, 이미 상당수는 벼랑 끝에 몰려 있다”며 “하청 생태계가 무너지면 결국 산업 전반의 기반이 무너지는 만큼,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해외 경쟁국은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중국은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전기차 보조금으로만 2310억 달러를 투입했고, 일본도 ‘탈탄소 이행채권’을 발행하며 1조6000억 엔 규모의 재정을 이차전지 산업에 쏟고 있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통해 배터리 및 전기차 생태계를 전방위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정부도 이에 대응책을 내놨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차전지 공약으로 생산세액공제 및 투자세액공제의 이월·적용 기준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은 적자 기업이 세제 혜택을 받기 어려운 구조여서, 초기 투자가 큰 배터리 산업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제도 개편이 실현될 경우 실질적인 투자 여력 확대와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정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보다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의 지원 방향은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이제부터는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K-배터리, 신소재·소부장 R&D가 승부처... “단기 물량전은 경계해야”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과 미국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K-배터리 생존전략으로 신소재 배터리 및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 강화가 핵심 대응책으로 제시됐다.

 

정형곤 박사는 “이제는 많은 인력을 동원해 싸우는 시대가 지났다”며 “효율적인 인프라와 고도화된 기술 중심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재·중간재·장비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에 집중적인 R&D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특히 “기술이 고급화될수록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선도 기술 확보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부 교수는 소재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소디움(나트륨) 배터리는 리튬보다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자원 매장량이 풍부하고 원가도 낮다”며 “전고체, 소디움 등 신소재 배터리 기술로의 전환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기술력은 민간이 주도하더라도, 초기 R&D는 정부가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원이 단기적 ‘물량전’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철완 교수는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충분한 경제성 평가 없이 반복적인 단기 지원이 계속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불필요한 예산 낭비와 실패를 방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K-배터리 생존 위한 마지막 퍼즐…‘공급망 독립’과 법제정비 시급

 

K-배터리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더불어 공급망 독립도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배터리 핵심 광물의 정제·가공 대부분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어, 시장 가격 변동에 따른 손익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호근 교수는 “K-배터리가 유럽 시장 점유율 60%를 넘기며 선전했지만, 수익을 내지 못한 배경에는 중국의 광물 가격 조정 전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튬 가격을 4년간 8배 올렸다가 갑자기 40% 떨어뜨리는 식으로 변동시키면, 국내 배터리 업체는 고가 원료로 생산한 제품을 헐값에 납품하게 된다”며 “이런 가격 장난은 후발주자의 수익률을 붕괴시키고, 결국 R&D와 팔로우업도 무너뜨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의 가공 비율에서 중국 의존도는 각각 60~90%에 달하며, 전구체·흑연 등의 경우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호주·아르헨티나 등 자원국과의 협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제와 가공은 여전히 중국이 지배하는 구조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핵심 광물 가격 하락이 배터리와 소재 단가 인하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전기차 제조사들의 구매가 지연되면서 결과적으로 재고가 쌓이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해외자원개발 정책과 정·제련 분야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첨단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해 규제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연구개발(R&D) 현장에서 주 52시간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형곤 박사는 “사회과학처럼 장소 제약이 없는 연구는 52시간제가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이공계 특히 R&D는 보안과 실험 환경 특성상 기업 내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개발은 유연한 시간 운용이 필요하고, 더 일한 만큼의 보상과 휴식이 뒤따라야 하지만 현재는 보상과 처우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호근 교수도 “노란봉투법,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특히 배터리·반도체 산업처럼 시간 단위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선 유연한 근무 제도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배터리·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경쟁사에 뒤쳐쳤을 때 그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집중 근무와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며 “기술 경쟁력을 위해 규제부터 풀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노동 유연성뿐 아니라, 제도 전반의 정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배터리는 이제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인프라”라며 “하지만 제조부터 폐기, 재활용까지 단계별로 법과 규제가 부처마다 흩어져 있어 산업을 통합적으로 육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초기 투자 부담, 순환경제 요구 등 복합적 특성을 고려하면, 배터리 산업 전 주기를 포괄하는 체계적이고 일관된 법제 마련이 시급하다”며 “‘배터리 산업 기본법’ 제정을 통해 흩어진 법과 제도를 통합하고, 산업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은주 기자 kwon@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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