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안보 환경의 재편 속에 한국 방위산업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 변화로 인해 유럽과 캐나다 등 전통적 동맹국들이 대미 의존도를 줄이고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무기체계 수요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NATO 국가들의 무기 수입 중 미국산 비중은 여전히 64%에 달하지만, 유럽은 8,000억 유로 규모의 재무장 계획을 통해 회원국 내 결속과 자립을 강화하고 있으며, 캐나다 역시 F-35 구매 재검토 및 자국 무기 구매 확대 등 자주 국방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4년 글로벌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9.3% 증가한 2조 7,000억 달러에 이르며, 미국·유럽·한국 등 주요국 간 수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EU의 공동조달 비중이 2022년 기준 18%에 머무는 등 역내 방산 협력이 아직 제한적인 점은 한국 기업에겐 틈새시장 공략의 기회로 작용한다.
이처럼 우호적인 여건과 더불어 이재명 대통령의 방산산업 육성 공약이 추진력을 얻는다면 K-방산의 글로벌 도약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수출 확대에 앞서 정부·군·민간이 서로 협력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체계마련과 민간 첨단기업의 진입 및 연계가 가능한 국내 방산 생태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K-방산 ‘4대 강국’ 도약 선언… 李 정부 공약에 업계 ‘기대감’
글로벌 방산시장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글로벌 방위산업 4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K-방산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 공약에는 방산 수출을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 신설과 대통령 주재 방산수출전략회의 정례화, 정책금융 지원체계 재편, 방산기업 R&D 세액감면 등 구체적 지원책이 담겨 있어 업계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장 양상의 급변과 유럽·중동·동남아 등 주요 지역의 국방예산 확대는 한국 방산업계에 유례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권역별 맞춤형 윈-윈 전략 수립과 기술이전·군사교육 협력을 통해 ‘방산 외교’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럽과 중동, 인도, 중남미 등으로 협력국을 대폭 확대하고, K-방산의 국제 위상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산업 생태계 확장을 위한 구체적 방안도 제시됐다. 방산 스타트업 육성, 병역특례 확대를 통한 인재양성, 지역 주력산업과 방산기술 융합을 통한 방산 클러스터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도 반색하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방산 수출과 관련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은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정부 부처 간 정책 조율은 물론, 해외 수출에서 중요한 정치적 교섭까지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정부에서 이를 본격 추진할 것으로 보여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도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가동되면 글로벌 시장 진출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연구개발 강화와 미래 인재 확보까지 이어지면 K-방산 생태계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K-방산 도약, 금융부터 군수지원까지 ‘토탈 패키지’ 필요
국내 주요 방산기업들의 수주 잔액이 100조원을 넘어서며 국산 무기체계의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는 세계무대에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호재 속에서도 정부 차원의 방산수출 지원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문근식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군사평론가)는 M이코노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방산 수출의 핵심 요소로 ‘수출 금융’을 꼽았다. 그는 “방산 장비는 단가가 수백억, 수천억 원대인 고가 상품이고, 구매국의 국방 예산은 항상 빠듯하다. 이 때문에 폴란드 같은 나라에 수출하려면 한국 정부가 저리로 자금을 빌려줘야만 계약이 성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방산을 위한 전용 수출기금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여전히 논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전략 산업으로 방산을 육성하겠다는 말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금융 지원 구조부터 독립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승인기관이 아니라 ‘세일즈 파트너’로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방산 수출은 대부분 G2G(정부 간 계약)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 보증과 외교적 개입이 핵심”이라면서 하지만 최근 6개월간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수출협상에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방산수입 국가들도 “한국 정부는 신뢰성이 약하다고 말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와 더불어 방산수출 성공의 열쇠는 단순한 무기판매를 넘어, 현지 맞춤형 통합 솔루션 제공에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교수는 “현지 교육·훈련, 후속 군수지원, 군과의 협업 체계 구축까지 포함된 ‘토탈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정부와 군, 기업의 명확한 역할 분담과 전략적 협업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정부에 대해 “반도체나 배터리는 이미 민간이 잘 굴리는 산업이다. 하지만 방산과 AI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며,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라며 “정부가 방산을 수출산업이자 국가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통합적이고 과감한 육성책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 K-방산, 수출 넘어 생태계 재설계할 때… 민간 개방과 통합 거버넌스 시급
K-방산기업의 해외 수출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K-방산 수출뿐 아니라 장기적인 국내 방산산업을 위해 생태계 구축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방산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방산 생태계는 여전히 ‘협소한 구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부교수는 “현재 국내 방산은 정부 지정 방산업체와 국방과학연구소(ADD) 중심의 구조로, 민간혁신 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참여할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AI, 드론, 로봇, 민간 우주기술이 방산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지만, 국내에는 미국 방산협력 기업인 팔란티어 같은 기업이 부재하다”며 이는 공동개발 제도와 규정의 미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장 교수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민간혁신 주체를 포괄하는 새로운 방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한국도 우방국과의 공동개발을 포함한 협력모델 확대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대표 사례로는 미군의 차세대 무기체계인 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 개발 초기부터의 협력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방산 수출 확대를 위해선 민간 금융기관,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의 정책금융이 체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국방기술학회 박영욱 이사장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방산 수출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국내 생태계의 기초체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신기술 시대에 맞는 유연하고 플렉시블한 무기 획득 및 개발 체계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방위사업청, 국방부, 군 간 거버넌스 정렬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시스템적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방산 연구기관 관계자는 “민간기업이 방위산업에 진입하기 위해선 국방 수요의 일정 수준 보장과 함께, 방산물자 지정제도의 진입 장벽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도 방산업체로 지정된 기업에 대한 의무(망 분리, 공개 의무 등) 완화와 혜택 유지를 동시에 검토 중”이라며 “중소 협력업체의 도산이 부품 단종으로 이어지는 공급망 리스크 역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원준 교수는 이 정부의 방산수출 컨트롤 타워와 정례회의 개최 등 공약에 대해 “큰 방향은 옳지만, 규제 완화·법제 정비·예산 확보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며 “무엇보다 방산수출뿐 아니라 전체 생태계를 아우를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영욱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은 “대통령 직속 방산 수출 컨트롤타워 설치는 상징성과 추진력을 갖춘 결정이지만, 실질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방부·방위사업청·산업부·과기부 간의 유기적 조율이 필수”라며 “현재 국방부 내 수출기획과 수준으로는 컨트롤타워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현재의 이원화된 국방 획득체계 통합도 시급한 해결과제로 꼽힌다. 무기 조달과 개발, R&D를 아우르는 통합 시스템이 아닌, 방위사업청과 국방부 간 기능 중복과 책임 분산 구조가 지속되면서 정책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방위사업청의 한계를 보완하려면 국방부가 직접 조율하는 고위급 조정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방산수출 컨트롤타워 논의는 단순한 조직 신설이 아닌, 대한민국 방위산업 생태계의 근본적 구조개편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방부, 방사청, 산업부, 과기부 간의 정책·예산·권한이 수평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통합 국방획득체계’ 없이는 컨트롤타워 역시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궁극적으로는 무기체계 개발과 수출, 기술혁신이 하나의 전략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한국형 방산 전략사령부’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해야만,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