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온 K-조선, 기술 초격차 지킬 '백업' 시그널 보내다

  • 등록 2025.06.19 16: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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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급과잉·친환경 선박 대전환·자율운항 기술 선점 등 직격탄
韓 조선 ‘빅3’, 차세대 CAD·AI 자동화·가상 시뮬레이션 기법 대응
전문가들 "정부 전략 지원 속 민·관·학 구조적 대안 설계 실천해야"

 

 

세계 시장을 주도하던 한국 조선업계가 최근 중국의 추격과 글로벌 기술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친환경 선박 전환, 자율운항 기술선점 경쟁, 조선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재편은 단순한 생산성 향상 수준을 넘어 국가전략산업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시점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아래, 정부·산업계·학계 전문가들이 조선업의 기술 초격차 확보와 정책적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안도걸·허성무 의원(더불어민주당) 주최로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K-조선 글로벌 미래 초격차 기술 확보 토론회’에서는 산업의 위기 진단과 함께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전환 전략이 제시됐다.

 

이날 전문가들은 “조선업의 국가전략산업 지정은 시작에 불과하며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기술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며 “민·관·학이 함께 구조적 대안을 설계하고 실천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 ‘기술선도’ 韓, ‘생태계 장악’ 中… 조선산업 주도권 전쟁 본격화

 

이날 토론회에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팬데믹 이후 반등한 글로벌 조선업은 2024년 들어 초호황 수준의 발주량을 기록하며 호조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흐름 속에서 조선 패권이 급속히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은 한국 산업계에 중대한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연구위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 전 세계 발주량은 전년 대비 70.3% 급증한 4,740만 CGT(표준환산톤수)를 기록했으며, 이 중 중국이 절반 이상인 53.8%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점유율은 16.3%에 그쳐, 과거 ‘조선 강국’의 위상을 무색케 했다. 특히 2025년 1~4월 누계 수주량에서 한국은 전년 대비 25% 감소한 280만 CGT에 그친 반면, 중국은 54% 증가한 680만 CGT로 더욱 격차를 벌렸다.

 

 

중국의 거센 상승세는 단순한 물량 확대를 넘어 고부가가치 선종으로의 진입 가속화와도 맞물려 있다. 양쯔장조선, Hengli HI(STX 다롄), 우후조선소 등 주요 조선소들이 대형화와 자동화를 통해 2028년까지 수주 잔량을 확보했으며, 한국의 ‘조선 빅3’도 2027년까지의 물량은 확보했지만 중장기 경쟁 구도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은 납기 신뢰도와 원천기술력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다”면서도 “중국발 공급과잉이 조선업 경기 하락 시 경쟁력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경규제는 또 다른 도전과 기회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기조가 강화되면서 LNG·LPG·메탄올 추진선 외에도 암모니아, 수소, 배터리, 원자력 기반 선박까지 발주가 확대되는 추세다. 이는 기술력 중심의 대응이 가능한 한국 조선사에는 기회지만, 기자재 조달력과 가격 경쟁력에서는 중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건조 척수는 중국 1,103척, 일본 278척, 한국 240척으로,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한국은 밀리고 있다. 기자재 시장 점유율도 중국 59.6%, 일본 15.0%, 한국은 13.0%로 격차가 크다.

 

한국은 ‘기술-설계-R&D’에서는 선두지만 ‘조달-생산-서비스’ 등 산업 가치사슬 전반의 종합 경쟁력에서는 중국에 밀리고 있는 셈이다. 이 연구위원은 “조선산업은 단순 수주를 넘어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탄소중립’ 파도 타는 K-조선…친환경·AI 기술로 초격차 도전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형택 HD한국조선해양 상무에 따르면, 중국의 조선굴기에 맞서 한국 조선업계는 기술 초격차 전략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LNG 추진선을 넘어, 수소·암모니아·원자력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와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운항 기술까지 개발 영역을 확장하며, 조선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조선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친환경 추진 기술’이다. 한국은 LNG 추진 기술에서 이미 글로벌 리더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수소 및 암모니아 추진 선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조선사들은 현재 연료처리 및 공급 시스템, 노출 감지 및 대응 시스템, 대기 배출 저감장치 등 다양한 안전 패키지 기술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이러한 기술은 단지 환경 대응 차원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도와 브랜드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기술 초격차는 차세대 원자력 추진선 개발로도 이어진다. 아직 국제적 규제와 상용화에 시간이 필요한 분야지만, 한국은 원자력 기반 선박 추진 시스템에 대한 기초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 중이다. 이는 원거리 운항 및 대형 선박의 연료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큰 잠재력을 가진 기술로 평가된다.

 

더불어 디지털 기반의 자율운항 선박 기술도 한국 조선업계의 전략적 우선순위다. AI 기반의 선내 감시·모니터링 시스템, 항로 예측 알고리즘, 충돌 회피 기술 등은 고도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요구한다. 김 상무는 “자율운항 기술은 선원을 대체하는 차원을 넘어, 안전성과 운항 최적화를 실현하는 미래형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이러한 기술들을 무인 함정, 방산 함정 등 국방 분야와 연계해 고도화하고 있으며, 이는 곧 K-방산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은 설계와 생산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 조선 ‘빅3’는 모두 차세대 CAD 시스템, AI 기반 설계 자동화, 가상 시뮬레이션 기법 등을 적극 도입 중이다. 이는 설계 정확도 향상과 생산 기간 단축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와의 실시간 소통을 위한 다국어 AI 인터페이스 개발로도 이어지고 있다.

 

김 상무는 “AI 기술은 현장 소통의 효율을 높이고, 복잡한 선박 공정의 최적화를 가능하게 한다”며 “기술 인프라를 통한 생산성 제고가 글로벌 경쟁에서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중국은 국가가 실증…K-조선, 실증위한 여건부터 갖춰야

 

기술 초격차를 향해 질주하는 K-조선이지만, 기술을 ‘검증’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 실증환경은 경쟁국에 비해 여전히 척박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형택 상무는 “한국은 실증이 가능한 해역조차 확보하기 어렵다”며 자율운항선박 같은 첨단 기술의 현장 시험이 원활하지 못한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기술개발, 설비투자, 산업 생태계를 3대 축으로 대규모 보조금을 집행하며, 실증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며 이와 비교해 한국 조선 기술 개발이 “고립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 조선업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그 기술을 실제로 시험하고 상업화로 연결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과 행정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율운항선박, 수소·암모니아 연료 선박 등은 높은 안전성과 규제 준수를 요구하는 분야로, 실증 테스트 없이는 글로벌 인증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김승혁 삼성중공업 상무는 실증 문제를 산업 생존의 관점에서 직시했다. 그는 “지금 조선업은 위기이자 기회의 교차점에 있다”며 기술 확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그 기술의 ‘실증과 상용화’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실증과정에서 리스크를 분담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국가전략기술로서의 조선업 지정이 이러한 정책적 기반 마련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흑자 전환한 K-조선, 기술 초격차 지킬 ‘국가 백업’이 필요해

 

K-조선이 기술 초격차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은창 연구위원은 중국이 CSSC 등 국영 조선그룹을 중심으로 대규모 R&D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설계 전문 자회사(SDARI, MARIC 등)를 통해 국가 차원의 설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다양한 선형에 대한 표준 설계를 선행한 뒤, 개별 조선소는 이를 기반으로 생산 설계를 진행함으로써 효율성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주요 조선사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설계 인력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가 단위의 통합 설계 체계는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조직 규모나 시스템 효율 측면에서 중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다.

 

김형택 상무 역시 한국이 R&D 및 설계 부문에서 오랜 기간 기술 우위를 유지해왔지만, 현재는 중국과의 격차가 상당히 좁혀졌다고 진단했다. 특히 LNG 및 메탄올 추진 선박 분야에서도 중국 조선소가 국제 수주를 따내는 등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일본 역시 기자재 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한국은 이에 비해 실질적인 지원 제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처럼 조선사 지원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며, 국가전략기술 지정에 따른 세제 혜택 확대가 대규모 기술 투자 유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 문경호 기획재정부 조세특례제도과장은 조선업의 국가전략기술 지정은 단순 산업 차원이 아닌 국가 안보와 국민경제 차원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월 개정된 조세특례제한법을 통해 조선산업이 ‘미래형 운송수단’으로 포함되었으며, 이에 따라 연구개발과 통합 투자에 대해 3단계 세액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의중 산업통상자원부 조선해양플랜트과장은 조선산업이 현재 중국과의 기술 경쟁의 ‘경계선’에 서 있으며, 향후 몇 년이 산업 향방을 가를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조선업의 국가전략기술 지정은 시의적절하지만 다소 늦은 조치였다”고 평가하며 “이제는 대규모 투자보다는 시장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민관 협력 체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조선 3사가 모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기술개발 여력도 생긴 만큼, 정부는 실증 인프라와 기술 확산에 주력하고 민간은 실질적인 기술 트랙 레코드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조선산업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기업의 기술력에 더해 정부의 전략적 지원과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K-조선이 다시금 세계의 해양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넘어 국가가 함께 움직여야 할 때다.

 

 

권은주 기자 kwon@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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