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은 우리 삶의 근간이다. 주거지·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을 조성하고, 국가 경제를 이끄는 동시에 시대 문화를 반영하는 현대 문명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안전한 집에서 생활하고, 편리한 교통망을 이용하며, 다양한 공간에서 일상과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것도 모두 건설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려온 수많은 건설근로자들의 헌신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건설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이들이 건설일용근로자다. 건설근로자들이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고용계약이 불안정한 일용직 근로자에게 임금체불은 곧바로 생계 위기로 이어지며, 소송이나 진정 절차조차 쉽지 않다.
◇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인가?...사각지대에 처한 건설 일용직
이재명 대통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나라,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노동 존중사회 실현의 일환으로 최근 고용노동부는 지난 2년간 임금체불이 빈번했던 기업들에 대한 통합감사에 착수를 발표했다. 또한 임금체불 예방을 위한 다양한 법안과 정책이 강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와 정책을 모든 건설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고용기간, 고용형태 등 건설근로자의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의 필수 인력인 일용직 근로자들은 획일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또, 건설일용근로자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해 고용이 불안정하고 당일 임금 지급도 불확실하다. 이를 임시로 해결해온 것이 바로 직업소개소의 ‘임금대위변제’ 관행이었다. 최근 공공 분야 공사의 경우 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해 임금을 직접 지급하는 국토부 고시로 이런 관행이 금지됐다. 이점을 살려 민간에도 확대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하루 일하고 그날 임금을 정산받아야 하는 일용근로자의 현실과는 맞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자조달시스템으로 월 단위의 임금지급은 가능해졌지만, 일용근로자의 경우는 오히려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당일 임금지급이 어려워졌고 당일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일용근로자들에게 큰 타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일용근로자’란 근로계약을 1일 단위로 체결하고 그날의 근로가 끝나면 근로관계가 종료되어 계속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근로자로서 소정근로일과 결근의 의미가 없는 근로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매일 근로관계가 단절되므로 임금산정은 시간급 또는 일급 단위가 원칙이며, 근로관계가 종료한 시점에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용노동부, 「임금의 매월 1회 이상 정기지급 원칙에 관한해석기준」).
건설일용근로자가 임금 체불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지난달 31일 국회에서는 조국혁신당 황운하·더불어민주당 신영대·정준호 의원실 주최하고 전국고용서비스협회와 한국공인노무사회, 소상공인연합회가 주관하는 「건설일용근로자 임금체불 방지 제도화를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 ‘당일 임금 대위변제’ 제도화한다면 임금체불 방지 완성할 수 있어
이날 토론회에선 건설분야 일용노동자 임금체불 방지를 위해 임금 대위변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제언이 나왔다.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으로 건설업 임금체불을 예방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고시를 통해 공공공사에서 적용되던 ‘임금 직접지급’ 제도를 민간공사로까지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건설일용근로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며 ‘직업소개사업자에 대한 임금지급 위탁’과 ‘선불노무비 지급보증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일일 고용 및 당일 임금 지급에 적합한 대위변제 제도화’란 주제로 발제에 나선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경제학 박사)는 “건설노동시장에는 월 1회 임금 지급 가능한 근로자와 당일 임금 지급이 필요한 근로자가 공존한다"며 "전자대급지급시스템 확대에 앞서 ‘당일 임금 대위변제’를 제도화한다면 임금체불 방지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건설근로자 유형에 따라 임금지급 주기에 따른 편차가 발생한다”며 “월 1회 임금지급이 가능한 건설근로자에게는 국토부 고시의 민간 확대 적용이 바람직하지만 ‘당일 임금지급’이 필요한 건설일용근로자에게는 불합리 또는 불가능해 ‘임금 대위변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금 대위변제는 하루 단위로 고용하는 건설일용근로자의 임금을 직업소개소가 당일 현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건설업체로부터 해당 임금과 소개수수료(선불노무비)를 수령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2022년 고시를 통해 임금체불을 막고 근로기준법의 임금 직접지급 원칙을 준수하겠다며 공공공사에서 임금 대위변제를 금지시켰다.
심 대표는 “임금 대위변제 도입을 위해서는 건설사업자가 임금을 직접 지급하면 된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건설사업자가 ‘금지급위탁계약’을 추가하면 가능하다”면서 “위탁지급계약을 추가할 경우 지급하는 주체가 명확해지고 직접지급이 인정되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건설일용근로자 선불노무비 확보 장치가 마련되고 폐해 예방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 위탁지급 제도할 경우, 법적 혼선 우려
이번 토론회에선 위탁지급을 제도할 경우에 법적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환주 대한전문건설협회 본부장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문제는 근로자 개인의 생계를 넘어서 업계 전반의 신뢰와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중요한 현안이고 일용직 근로자의 고용 구조 특수성을 감안할 때 임금 체불 문제는 단순히 도덕적인 이슈가 아니라 구조적인 리스크 관리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유료 직업 소개소 중심의 모델은 시장 안에서 이미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현실적으로 기능해 온 중요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또 “전문 건설업체들이 조공이나 준기공 같은 일용근로자의 경우 유료 직업 소개 구인 지원과 행정 지원 역할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현실"이라며 "특히나 최근 건설근로자의 고령화로 인해서 인맥이 약화되고 있고 상시 고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 고용 중개 기능은 점차 더 중요도가 증가하는 추세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현장이나 기능도가 있어서 반복 투입되는 인력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팀 단위 팀장 중심으로 인력 구성이 이뤄진다. 65% 정도를 차지한다"며 "중소규모 현장이나 단기 위주의 고용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유료 직업 소개소를 통해서 구인 구직이 대부분 이루어지는 데 (이게) 12% 정도 된다”면서 “일용 근로자의 임금 체불 방지를 위한 제도화는 중소규모 현장이나 단기 위주의 고용 형태의 일용근로자 보호를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선불노무비 지급 보증보험 도입이라든가 임금 대위변제의 제도화 방안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는 공감을 하고 찬성하는 입장”이라면서도 “현재 법에서 정하고 있는 임금 직불 규정과 근로기준법, 국토부 고시에서는 임금 직불을 규정하고 있는데 위탁지급을 제도할 경우에 법적 혼선이 좀 생길 수 있다”며 우려했다.
그는 또 현장의 행정적 부담을 지적하며 “현장에서는 근로자 고용부터 임금 정산 교육, 보증보험 관리까지 처리하는 게 순전히 중소 건설업체의 몫인데 현실적으로 건설업체가 다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 노동자가 원하는 구인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
이어진 토론에선 건설사와 일용직 근로자와의 근로조건 불일치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진덕 도봉인력 대표는 “구인자인 건설사는 공정에 따라 필요한 일용근로자를 고용하게 되며 그 노임을 당해 달에 결산해 그 다음달 15일( 30+15=45일 ), 또는 기성이 들어오는 다음 달 30일( 30+30=60일 ), 또는 발주처 정산 및 어음 등을 받아 2~3개월(30+60=90일 이상) 후 지급하는 방식( 유보임금 방식 )을 선호한다”며 “이는 공정, 날씨, 현장여건 등의 변화와 근로자에게 부과된 4대보험의 산정 및 원천징수 등 일용근로자도 상용에 준하는 막대한 행정력과 비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건설일용직 구직자는 열악한 소득수준 및 낮은 신용등급 등에 비춰 일용직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당일고용/당일지급 받는 형식을 가장 선호한다”면서 “노동자가 원하는 구인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은 대부분 소득 1, 2분위의 저소득자인 경우가 많아 짧게는 45일, 길게는 90일 이상의 유보임금을 견딜 수(복지제도가 있으나 일당을 포기하고 민원을 제기하기에는 실익이 없음)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직업소개사업자에게 개인적인 가불(Micro Credit:무보증/무수수료 소액대출 )의 형태로 당일 노임에 해당하는 금액을 빌리기 시작했고 상환이 곤란해지자 그 노임에 대한 청구 및수금 등의 모든 행위를 양도하여 직업소개사업자는 건설사(구인자)에게 유보임금을 지급받기 시작했으니 이를 대위변제(대불) 방식이라 하며 건설사와 일용근로자간의 ‘근로조건 불일치를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하며 거의 모든 현장에 자리잡았다”고도 했다.
이진덕 대표는 “전문가들은 체불발생의 원인에 대해 건설업의 고질적 병폐인 최저가 낙찰, 다단계 하도급 등 구조 문제를 지적했다”며 “건설공사의 특성 상 인건비 등은 미리 투입되고 그 기성은 3~6개월 후 지급되며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면 공사비 증액이 없는 한 필연적인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때 상기 ‘유보임금’에 대한 체불이 발생 (‘당일임금’의 경우 체불이 발생하지 않거나 소액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국토부 고시 제2022-430호 「전자조달시스템등을 통한 공사대금의 청구 및 지급 등에 관한 고시」를 통해 공공공사에서 직업소개사업자의 대위변제가 체불의 원인이므로 이를 사실상 금지(첨부:고시 제정안에 대한 의견 회신)하고 당일임금을 받아야 하는 일용근로자와 직업소개사업자의 피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영향평가 마저 생략했으며 추후 민간공사 까지 확대 적용하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체불임금 해소의 핵심은 건설일용근로자는 반드시 당일 노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누가 누구에게 주는지는 두 번째 문제"라며 "현장을 바라봐 달라 거기에 수많은 사연에도 불구하고 재기를 꿈꾸며 당당히 일하는 적지 않은 건설일용직 노동자가 있다. 이들이 손쉽게 취업할 수 있는 더 많은 일자리(국가의 공공공사는 분배도 하나의 목적이기에 더욱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 그리고 당일 노임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의 방식을 좀 더 발전시키고 다듬어 달라”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