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과 보호주의는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높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현상 뒤의 실체를 살피면 오히려 ‘확실성’이 분명히 나타난다. 2차대전 이후 80년간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지만 미국의 경제 펀더멘탈은 참담하게 무너진 상태다.
미국 경제의 화려한 경제 수치는 기축 통화인 달러의 위력이 만들어 낸 거대한 ‘거품’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 거품에는 세계 각국의 돈들이 몰려들어 만들어 낸 것이지 미국 경제가 튼튼해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한국 서학개미들의 투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미국의 거의 유일한 경쟁력인 AI 분야도 반도체가 없다면 설계도에 불과하다.
미국 경제의 민낯은 이미 파탄 지경에 빠진 미국 조선산업 현실에서 낱낱이 드러난 바 있다. 트럼프는 지금 미국의 가지고 있는 무기인 군사력과 엄청 난 소비시장, 달러 위상을 가지고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어찌 보면 미국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쓰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에 기회인 이유 한국경제의 강점은 중후장대형(제조산업 중에서도 무거우면서, 두텁고 길면서 큰 산업)과 첨단기술형의 제조업 경쟁력이다. 이 제조업 덕분에 한국은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중화학공업과 첨단기술업의 모든 제조업에서 중국세에 밀려 오래 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지금 중국의 저가 공급 과잉 공세에 시달리다가 구조조정을 맞이하고 있는 석유화학산업이다.
석유화학산업은 박정희 대통령 때 시작된 산업으로서 한국 수출의 효자 산업이었다. 최근에 더욱 석유화학산업이 어려워진 것은 중동 산유국들도 자체 석유화학산업을 육성해 생산함 으로써 한국은 중국과 중동 사이에서 사면초가에 빠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저임금과 국가적 지원으로, 중동은 원료 공급의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생산원가와 물량 면에서 활로를 찾지 못했다.
조선산업과 배터리 산업도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준 지는 오래됐다. 반도체도 HBM(고대역폭 메모리)으로 버티고 있으나 중국에 메모리 분야에 밀리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전기차는 멀찌감치 중국이 앞서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중화학산업과 첨단기술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한국은 북한과 마주하고 동아시아와 남중 국해를 둘러싸고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방위산업을 국가 생존 차원에서 발전해 가야 한다. 방위산업은 중화학산업과 첨단기술업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경공업과 서비스업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중화학공업과 첨단기술업을 생명의 끈으로 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중국이 아무리 저가공세로 밀어붙이고 있어도 우리나라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제조업 수준을 국내에 유지해야 하고 저가의 물량 공세에 맞서기 위해 사력을 다해 기술개발과 품질 향상, 그리고 혁신에 매달려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마가(MAGA, 미국을 위대하게)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7월 30일 한미 간 관세합의에서 15% 관세로 선방한 것은 조선 협력안을 제시한 덕분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가장 약한 고리인 조선 협력은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꺼내든 제안이었다. 우리는 단기적 안목에서 소탐대실(小貪大失)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도 관세협상 이전에 미국 내 투자를 한 결실이 이번에 테슬라의 AI칩을 삼성전자가 수주함으로써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반도체와 AI 산업을 최대한 이른 시기 안에 모두 자국 기업만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물론 미국도 인텔을 회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반도체 제조가 자국 내에서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 점을 잘 활용하면 한국 반도체는 미국 시장에서 얻는 이득은 크고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미국에 종속되는 것 아닌가 우려하는 시선도 있으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은 세계 각국이 자체 생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반도체는 안보에 중요하고 AI산업에도 필수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국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 기회를 노릴 수 있다. 한국 방산이 세계 각 국의 군사력 강화에 힘입어 성장하는 것과 같은 경로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미국 시장의 핵심 공급망으로 확실히 굳히는 것은 꼭 필요한 세계 시장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배터리 산업도 미국과의 협력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에서 중국에 밀렸지만 ESS 분야와 고급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또 빼 놓을 수 없는 분야는 원전과 제약 및 바이오 분야다.
미국 진출 방식과 관련해 미국과 공급망 및 이익을 나눠 가지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독점 구조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에서 증명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독점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다. 혼자 다 먹으면 배탈이 난다. 일본 경제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침체를 당한 것은 미국 시장을 너무 독식했던 까닭에 일어난 것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불공정 계약이 이슈화되는 듯한데, 웬만하면 웨스팅하우스와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는 방향이었으면 한다. 한국 원전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으로부터 배워서 온 것이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원전은 반도체와 함께 본시 미국에서 태동하고 산업화된 것이다. 미국이 스승인데, 더 많이 가지려고 하지 말고 어차피 미국에서 대규모 신규 건설시장이 열리는데 눈을 크게 뜰 필요가 있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에 너무 목을 매는 관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미국은 반도체의 인텔을 내버려 두지 않듯 자국의 빅3 자동차 회사들이 망하도록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을 일정 이상 높이지 않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토요타처럼 미국 시장에 혼신을 기울이다 보면 미국 정치 권으로부터 반드시 보복을 당하고 그것은 일본의 여타 산업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현재 현대기아 차의 품질과 혁신력으로 볼 때 미국 외에 세계 시장에 힘을 기울인다면 발전 여지가 더 크다고 본다. 미국과의 협력 모델은 다른 나라에도 적용 가능할 듯 미국과의 제조업과 첨단산업 협력 모델은 중국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유럽도 미국과 비슷하게 높은 코스트와 적극적 투자 회피, 혁신력과 자본 부족으로 인해 제조업과 첨단기술업에서 뒤처지는 바람에 중국 공세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국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유럽은 EU로 통합돼 있다고 하지만 각 나라의 사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협력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원칙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상생 방식이다. 그밖에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 국가들도 제조업과 첨단기술산업의 육성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수준에 맞추어 상생하는 협력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던진 메시지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수출은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역은 원래 물물교환에서 나왔다. 나의 잉여물을 팔았으면 상대의 물건도 사줘야 한다. 설사 그 물건이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무역 관계를 가져가려면 밸런스있게 사고 파는 행위가 이뤄져야 한다. 이게 안 되면 그 나라와는 무역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무역의 원칙이다. 트럼프는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스위스와 중국, 일본 등은 경쟁력 있는 약품과 저가 제품과 자동차를 미국 시장에서 팔리면 된 것 아니냐는 논리를 펴다가 면박을 당했다. 한국 신성장 한류 산업에도 본격적으로 눈을 돌려야 이재명 정부는 AI 육성에 공을 들이는 모습인데 요즘 진짜 새롭게 유망산업으로 뜨는 곳이 한류 산업인 것 같다. 한류 산업은 K팝과 영화, 드라마 덕분에 뜬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한쪽만 보는 듯하다.
한류 산업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모든 면에서 올라가면서 성장해 왔다고 본다. 예를 들면 한국의 안전한 국내 치안 문제, 스포츠의 국위 선양, 평화유지군 활동,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활발히 하는 나라로의 변신, 코이카를 통한 국제공헌 성과 등을 꼽을 수 있다. 한류산업은 우선 식품가공산업과 화장품 산업을 먼저 들 수 있다. 한국의 식품가공기업들 가운데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본다.
파리바게뜨와 같은 한국식 제빵과 제과산업, 라면, 치킨 프랜차이즈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K푸드는 한국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계인의 입맛에 쉽게 친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맥도 날드와 버거킹을 보면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한국의 식품가공업도 최종 생산품은 대기업이 맡고 중소업체와 생산자들이 납품과 협력하는 체제가 바람직한 것 같다. 거대 수출산업으로 K푸드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역시 조직력과 자본력이 필요하다. ‘농어민 돕자’식은 하나의 산업으로 크지는 못한다. 최근 국제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한국화장품은 기초화장 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한국 여성만큼 건강한 얼굴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없다고 한다. 그와 같은 요구 조건에 맞추기 위해 화장품 업계가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우리 기업들의 기초 화장품 품질은 유럽과 미국, 일본의 메이저 화장품기업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평가다. 전문가에 따르면 세계 화장품 시장의 30%만 장악해도 반 도체 매출을 넘어설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때 MICE(Meeting, Incentive Travel, Convention, Exhibition/Event) 산업이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 포상 여행은 한물 간 것 같다. 하지만 국제회의와 전시행사 산업 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더불어 한류 덕택에 한국 관 광업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전통적인 관광지인 유럽 도 시들은 소매치기와 치안 불안, 미국의 도시들은 노숙자들 때문에 관광명소로서 위상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한국이 한류 볼거리와 먹거리, 화장품 체험 등 한국만의 관광체험 상품을 제공한다면 관광 수입에서도 신성장 동 력거리로 삼을 만하다. 사실 중화학 및 첨단기술 제조업의 경쟁 우위만으로는 한나라의 수준을 선진국 경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선진국 경제 구조는 식품과 제약, 문화산업과 같은 신뢰와 소프트 파워를 가진 산업 구조와 함께 제조업도 창조력과 혁신력 을 갖춘 프리미엄급 비중이 커야 한다. 우리나라 AI산업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급을 넘어서는 엔비디아와 테슬라급 빅테크들이 출현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전 세계 시장을 시선 안에 넣고 있어야 한다.
미국 시장만 바라보는 게임은 그들에게 종속되기 쉬운 탓이다. 식품과 약품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품질을 믿을 수 없는 나라의 제품은 일단 제외된다. 미국의 문화 파워는 시들해지고 있는데, 이는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미국 영화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라인은 이제 식상하다. ‘폭력 적인’ 힙합은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미국 문화 파워의 쇠퇴를 반면교사로 삼아 한류산업으로 입증된 한국의 문화 역량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 것인지 정부와 학계, 기업 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한국은 6.25전쟁 때 유엔과 미국 등 수많은 나라의 원조를 받아서 배고픔을 해결하고 그들의 기술과 자본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발전해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나라가 이룩한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나라들과 나누며 협력해 가기를 바란다.
나누면 더 커진다는 말이 있다. 보호무역주의는 모두를 쇠퇴시키고 결국 전쟁으로 종결됐다는 것이 역사적 심판이다. 미국발 관세 폭풍이 몰아치는 때일수록 한국은 상생 무역과 진심 어린 파트너 십으로 자유무역을 지향해 나갈 것을 바란다. 걱정됐던 한미정상회담도 대과 없이 마무리된 것 같고,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 정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이재명 정부도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협력이 한국경제의 난국을 푸는 열쇠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도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