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미국의회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한 편의 텔레비전 원맨쇼였다. 연설 도중 막 폐막된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남자 하키 선수들이 입장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갑작스럽게 애국심과 박수를 강요하는 듯해 뭔가 부자연스럽다.
전 세계가 불안한 시선으로 연설을 지켜보고 있을 터인데, 역시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이전에는 이런 파격된 연설도 미국적인 것이려니 너그럽게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관세로 팍팍해진 세계인들은 이런 연설을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하다.
트럼프 정부가 전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지난 2월 20일 미 연방 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고 무효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나자, 다른 법률인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각국에 10%의 관세를 24일부터 부과 하겠다고 밝혔다가 다시 5%를 더 올렸다.
미 대법원은 상호관세의 인용법인 국제비상경제권한법 (IEEPA)에 의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및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 대한 ‘펜타닐 관세’ 부과는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대법관 9명 가운데 6명이 위법에 손을 들어줬다,
이는 충분히 예상됐던 바다. 대법원은 특히 관세를 의회의 고유 권한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15% 관세 부과와 함께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각국을 상대로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국에 추가적인 관세를 매길 것임을 예고했다.
상호관세와는 별도로 철강과 자동차에 부과된 품목별 관세는 이번 대법원 판결 대상이 아니므로 영향이 없다. 따라서 상호관 세 무효화로 인한 부분은 품목별 관세 확대로 벌충할 가 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201조, 관세법 338조, 수입 라이선스 수수료 등을 인용하면서 얼마든지 관세를 거둘 수 있음을 격앙된 어조로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무효화 판결에 근거한 환급 소송은 당연히 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를 우려해 환급 소송을 하지 않는 것은 넌센스다. 한국은 새로운 법적 환경 변화에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과 환급과는 상관이 없다. 끝까지 소송을 해서 받아낼 건 받아내고 줄 것을 주는 방식이 미국이 즐겨 해오던 관행적 사고로 알고 있다. 환급 소송을 하지 않고 눈치 보고 점잔빼다가는 나중에 다른 나라들은 모두 권리를 찾아 가는데, 한국만 ‘바보’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트럼프 정부 관세의 진짜 목표는 동맹 조이기?
전 세계 무역 상대국을 향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거의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19일 발표한 미국 상무부 무역 통계에 따르면 상품 및 서비스 무역 수지는 0.2% 줄었으나 상품 수지는 오히려 2.1% 증가한 1조124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간 대미 무역흑자국이었던 중국의 흑자액은 30% 감소하고, 일본과 한국도 그 흑자 폭이 감소한 반면, 대만과 베트남은 오히려 대폭 증가했다. 미국 전체 수입액 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 13%에서 작년 9%로 축소됐다. 이것은 미국이 중국에게 쓸 카드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운동 중에서나 취임 이후에도 관세 부과를 통해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무역 수지를 개선 할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그렇게 했지만 현재까지는 그 효과는커녕 부정적 효과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 이후 2800여억 달러가 관세수입 으로 징수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관세 몫만큼 누군가는 부담했을 것이다. 물가 상승이 크지 않은 것으로 봐 수출 업자와 수입업자들이 아직은 상당 부분 안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관세 부과의 목적 중의 하나인 중국 등 대미 흑자국의 수출을 억제하고자 하는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풍선 효과로 대만과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크게 증가했다. 관세 부과 위협의 가장 큰 효과는 대미 투자를 이끌어낸 점이고 관세 무효 판정이 내려져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일본과 EU, 한국, 중동 산유국들은 미국의 보복이 두려워 일단 막대한 대미 투자 약속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관세 위협으로 대미 흑자국들로 하여금 미국 투자를 유도해 제조업을 부흥하고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국가 부채는 이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해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는 국가 살림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 정부는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보다는 한국 정부와 기업 등 외국의 직접 투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처럼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을 유인하는 것이 아니라 관세 압박으로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대법원의 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즉각 다른 법으로 현행 관세율을 유지했다. 더욱이 추가적인 관세 를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것만 봐도 관세에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지를 반증해주고 있다.
세계 각국이 관세 압박에도 거의 저항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 파워 때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 경제 파워의 핵심도 달러 파워이며 미국 경제 쇠퇴의 가장 큰 요인도 달러 기축 통화를 가지고 있는 데서 오는 본질적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든 지구상의 어느 나라든 달러를 가지고 있어야 필요한 에너지와 식량, 원자재를 살 수 있다. 달러는 국제 무역에서 혈액과 같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을 잘 알고 있고, 이번에 자신의 2기 정부에서 굳센 마음을 품고 시행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강점과 세계의 약점을 철저히 이용하자는 것이므로 동맹이라고 봐줄 수도 없다. 만약 동맹에게 관세를 매기지 않으면 관세 부과를 당한 나라들은 미국에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관세 부과의 의미를 미국 입장에서 왜 사용하는가를 유추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절묘한 묘수로 보이는 관세 부과 정책은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부정적 효과는 세계 무역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미국 자신에게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 증거가 중국의 대응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계 무역에서 중국의 위치는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에 미국 경제에 의존했던 취약 국가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