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업계와 협업 가능하고 고용창출 가능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주소는?

  • 등록 2022.08.10 18: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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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이코노미뉴스 = 최종대 기자】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1년 하반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매출 규모는 5631억4800만 원으로 한국 콘텐츠산업 전체의 0.4%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된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1936년 11월 25일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일보에 실린 ‘개꿈’이다. 청림촬영소에서 김용운, 임석기가 참여해 만든 첫 작품인데 강아지가 의인화 된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알려졌다. 성인 취향의 풍자적인 작품에 가까울 것으로 추측되는 이 작품은 약 3분 분량을 제작 완성했다고 전해지나 완성조차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 50~6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민화와 동화, 만화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TV보급률이 낮았던 시기라 TV용 애니메이션보다는 극장용이나 CF 위주의 애니메이션이 주류였다. 그러다 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 가정의 TV보급률이 오르자 반공과 SF, 로봇 등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이 성행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와 문화주권을 되찾자는 시민운동의 영향으로 ‘달려라 호돌이’,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 등이 등장하면서 부터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작품을 완성하지 않은 채 돈을 빼돌리는 ‘먹튀’ 제작자가 생기면서 작품의 질은 떨어지고 인건비가 상승하는 악재가 겹치자 침체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침체는 2000년대 까지 이어진다. 지난 2005년 우리 정부는 국내 제작 TV 애니메이션에 대한 쿼터제를 실시하는 등 시장의 순기능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방영권료가 하락하며 품질 저하를 가져왔고, 극장용 애니메이션 또한 계속된 흥행 실패 등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 전체에 재차 침체기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운데 ‘뽀롱뽀롱 뽀로로’, ‘냉장고 나라 코코몽’ 등의 일부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러한 기조를 이어 ‘마당을 나온 암탉(2011년 작)’, ‘언더독(2019년작)’, ‘레드슈즈(2019년 작)’ 등의 일부 10대 연령층 타겟의 극장용 작품이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고, 2010년대 중·후반 부터는 웹툰 애니메이션화가 제작되며 활로를 찾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TV 애니메이션 ‘고고 다이노’, ‘꾸다’ 등을 제작하고 ‘타요’, ‘뽀로로’, ‘코코몽’, ‘콩순이’ 등의 작품 제작에 참여한 연매출 40억 규모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모꼬지’ 변권철 대표는 “최근까지는 라바나 뽀로로 등 몇몇 특출난 애니메이션의 제작사들이 그 능력을 해외에서 인정받았지만, 한국 작품 자체가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변 대표는 이어 “유럽이나 미국이 워낙 오랫동안 키즈애니메이션 혹은 애니메이션 자체를 탄탄하게 만들어왔던 스튜디오가 많아 한국 애니메이션은 비주류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 콘텐츠는 유튜브를 통해 해외에서 일반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한국 IP가 영국 회사에 팔리거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몇 백만 구독자를 확보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변 대표는 실질적인 고객들에게 한국 애니메이션을 인정받게 된 핑크퐁, 브레드이발소 등 사례를 들었다. 일본의 유명한 프로듀서들도 한국으로 작품을 찾으러 오는 것은 성인 콘텐츠부터 키즈문화 쪽으로 문화가 확장된 것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고질병, ‘인력난’과 ‘자금부족’

 

지난 2019년의 6,405억 원 규모이던 애니메이션 산업은 코로나19로 매출이 감소했으나,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8% 상승하며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액 또한 전년 대비 15.4% 증가하는 등 글로벌 콘텐츠로서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력난’과 ‘자금부족’ 문제는 여전한 상황. 어째서 이런 일은 지속되는 것일까.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프레임(frame)인데 애니메이션이 진행되는 매순간의 장면을 그린 것을 말한다. 인간의 눈은 최소 초당 8프레임 이상의 변화가 있을 때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판단한다.

 

일본 TV 애니메이션은 최소 초당 12~16프레임을 구성한다. 디즈니 등에서 제작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평균적으로 초당 24프레임 이상을 사용한다. 즉, 프레임을 완성하기 위한 제작 인력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2D 애니메이션의 경우 각 프레임을 그리고 채색하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기 때문에 그만큼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고 제작 방법에 따라 여러 팀의 유기적인 협력도 필요하다.

 

 

더욱이 3D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각 캐릭터의 모델링, 머리카락이나 액체 등의 사물이 어색하지 않게 움직여야 하므로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변 대표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서는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자금이 부족한게 가장 큰 문
제”라며 “6~7년간 제작 위주로 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매달 월급 주는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내 인건비가 해외 인건비보다 상승하면서 제작팀을 꾸리는데 있어서도 리스크가 크고 인력난이 겹치다 보니 한 팀에 30명을 세팅하는 것도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현재 애니메이션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 수는 2021년 기준 5519명이다. 이는 2020년 기준 490개인 애니메이션 사업체 수를 따져봤을 때 업체 당 약 11명이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중 애니메이션 유통 및 기업 경영자를 제외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이보다 적은 숫자가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변 대표는 “해외에서 퀄리티가 좋고 비용 측면에서 비교적 저렴한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제작시장을 찾으며 일거리는 넘쳐나지만, 제작할 인력이 없어 안타깝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재우 교수(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텍)는 “애니메이션 제작 인력을 육성하려면 민·관·학의 협동을 통한 양성이 가장 성공적인데 콘텐츠 분야에서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2021년부터 시행된 산학연계 현장실습(이하 학생인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저임금의 75% 이상을 실습자원비로 지급하도록 개정된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으로 인해 대부분 중소기업인 애니메이션 업체들이 부담을 느끼면서 학생과 회사 간 밀접하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학생인턴을 하는 회사가 당연히 돈을 주고 학생들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학생들이 오히려 일을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회사는 오히려 불편해 한다”며 “정책이 잘못되다 보니 결국 학생들의 인턴십이 줄어들어 이로 인한 타격은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인력 양성 중 학생들의 이탈 또한 문제점으로 꼽았다. 또 게임 업계 쪽에서는 애니메이션 트레이닝이 된 학생을 선호하는데 중소기업들이다 보니 월급이 게임회사 보다 낮아 이탈하는 학생들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지원체계부터 손질 필요

 

한국콘텐츠진흥원 애니메이션 산업 지원예산은 2022년 기준 160억 원 규모다. 문체부 전체 예산 중 애니메이션 유통 및 홍보 활성화를 위한 예산을 포함해 하면 185억 원. 이중 제작지원에 사용되는 지원예산은 137억 900만원이다. 2019년 국내 제작사인 싸이더스 애니메이션과 로커스 스튜디오가 공동 제작한 ‘레드슈즈’에 22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퀄리티 있는 3D 애니메이션 한 편 제작하기도 힘든 예산이다. 


변권철 대표는 “해외의 경우 방송권료 자체가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급하거나 세제혜택 주는 등 입체적인 지원이 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프로젝트당 4억원을 지급한다”면서 “이 금액으로는 시작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원액을 늘려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며 “기존에는 주로 애니메이션을 시작하려는 업체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정책이었다면, 지금은 단계별로 나눠서 회사 규모·프로젝트 규모에 따른 차별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획이나 트레일러 등 각 제작순서에 따라 지원금을 지급하는 현재 지원 체계 또한 비판했다. 지원사업 심사에서 사업성만을 보거나 제작비 회수에 집중하다 보니 키즈나 완구를
포함해야 선정되었고 이로 인해 작품이 다양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산업진흥원 올해 예산 12억5000으로 삭감

 

한편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산업진흥원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예산을 기존 40억원에서 올해는 12억5000만 원으로 삭감했다. 그러면서 서울 애니메이션센터는 단편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비롯한 상업애니메이션, 웹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제작지원을 중단했다. 또 25년간 이어져온 국내 최대의 국제애니메이션 행사인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 개최예산도 편성하지 않았다.

 

박재우 교수는 “애니메이션에 편성됐던 예산이 메타버스와 A.I.에 대한 예산으로 옮겨간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세계관이나 캐릭터 등에 대한 기획, 그림, 3D 모델링 등 애니메이션 산업이 근간이 돼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 메타버스 사업인데 이런 부분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변권철 대표는 ‘부산행’, ‘지옥’ 등을 만든 연상호 감독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제작했던 것을 예로 들면서, “연상호 감독 또한 서울산업진흥원에서 꽤 많은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이라며 “정부가 당장의 성과를 보기 위해 갑작스럽게 지원을 끊은 것은 상당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캐나다의 경우 방송국과 정부가 어느정도 편성이 확정된 후 지원금을 지급하고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돈은 은행과 연계해 정부 보증의 대출을 받게해 책임감을 가지게 한다”면서 우리가 그런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 또한 “캐나다 벤쿠버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지역의 경우 디지털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나 VFX(특수영상·시각효과)를 제작을 완료하면 여기에 사용된 인건비의 2~30%를 환급해준다. 회사가 작품을 만들 때 100원이 소모된다고 하면 70원만 들여 100원의 효과를 볼 수 있어 고용창출 효과를 만들고 있다. 호주나 프랑스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싱 투게더’, ‘미니언즈’ 등을 제작한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는 법인이 미국에 있지만 제작 스튜디오는 파리에 있고 프랑스의 지원제도를 통해 작품을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박재우 교수는 인력양성 사업 또한 현재에서 한 발짝 더나아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기업과 더욱 밀접한 형태의 커리큘럼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미국의 ‘American Film Institute(미국영화연구소)나 전문 대학원과 같은 전문과정, 전문가 과정을 통한 특수한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원제도가 됐든 뭐가 됐든 간에 정부가 빠르게 검토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타 업계와 협업도 가능

 

애니메이션 산업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나 IP를 활용한 상품, 완구 등은 아동과 키덜트 층의 구매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또 일손이 많이 드는 노동집약적 특성을 가진 제작방식으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왓챠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한 애니메이션 제작의 성장 가능성도 있다.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광고 영상 ▲게임의 시네마틱 영상 ▲만화·웹툰, 게임, 소설 등을 원작의 애니메이션 ▲영화·드라마 등 실사 영상과 결합된 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한 여러 업계와 콜라보레이션제품 판매 등 타 업계와 협업도 가능하다.

 

여기에 가상세계, 메타버스의 경우 가상인물이나 가상세계의 지형·지물의 디자인 및 모델링, 제작을 통해 메타버스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도 있다. 실례로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로커스 스튜디오’는 자회사인 ‘싸이더스’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 버추얼휴먼 ‘로지’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한 전적이 있다.


정부 정책, 현장의 목소리 반영되어야

 

 이날 박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일화를 털어놨다. 과거 자신이 디즈니에서 일하던 때 같이 일하던 디즈니 감독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제시했더니 “Idea is cheap(아이디어는 다 싸구려다)”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뜻을 물으니 당시 감독이 “Execution is expensive(실행이 더 비싸다)”라는 말과 함께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진짜 많지만, 끝까지 만드는 사람이 몇 안 된다”며, 결국 돈은 그들이 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구나. 아이디어는 아무리 좋고 많아 봐야 그 자체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면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고 잘못했다간 실행조차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짧은 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들의 어려움과 인력을 육성시키는 현장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고, 정부의 지원정책이 현장에 맞지 않은 부분도 알 수 있었다. 정부가 귀를 열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22

최종대 기자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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