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지난 8월 24일 90세의 일기로 자택에서 타계했다.
일본인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본의 3대 경영인의 한 사람이다. 일본 사람인 만큼 우리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는 우리 나라의 식량 증대에 기여한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의 사위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승려가 됐지만 77세의 나이에 수상의 부탁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일본항공 JAL의 회장으로 취임해 8개월 만에 24조원의 부채를 갚고 재기할 수 있도록 했다. 10여 권이 넘는 많은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가 2009 년에 출간한, 아무런 홍보도 없이 묵직한 메세지만으로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다는 『왜 일하는가?』 라는 책을 소개하며 그가 남기고 싶어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들어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 책은 지난 10년간 삼성 임직원들이 가장 많이 추천했고 기업인들의 서평이 가장 많이 붙었다고 한다.
왜 일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일을 한다는 것은 지금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한다는 뜻이다. 그런 일은 삶에서 오는 모든 고통을 이겨내는 만병 통치약과 같다. 역경과 불행에 사사건건 휘둘리며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무의식중에 살아갈 의욕마저 잃게 된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더욱 맹렬히 전념해야 한다.
일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닥쳐온 시련을 이겨 내고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더 자기가 맡은 일을 사력을 다해 전념하라. 가능하다면 무아지경에 빠질 때까지 몰입해 보라.
추위를 견뎌낸 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한다. 꼭 위인이 아니더라도 위업을 이루고 명성을 이룬 사람들은 누구도 범접 할 수 없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자신 이 해야 할 일에 매진했다. 끝 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큰일을 해내고 훌륭한 인품을 갖춘 것이다. 인류에게 근대문명을 안겨준 서양세계에서는 일이란 곧 고역(苦役)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바로 거기에서 일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끝내고 보수는 최대한 많이 받는 게 좋다는 노동관이 생겨났다. 동양에는 이 같은 노동관이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동양에서는 직업을 가진 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평 없이 일을 계속했다.
“저 친구는 참 안됐어” 사람이란 모름지기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불행한 상황에 한 번쯤 놓여보는 것도 좋다. 겨울이 추울수록 그 겨울을 견뎌낸 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고민과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크게 성장하고 행복을 붙잡을 수 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경험한 고통과 좌절은 나중에 전부 성공의 토대가 됐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어렵다고 생각한 일에 도전하고 적극적으로 맞서온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불러왔다. 내가 맞닥뜨린 고난과 좌절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최대의 행운이었다. 물론 평탄한 인생도 좋다. 하지만 역경이 있는 인생이라면 더 좋다. 그러니 자신이 처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어떤 순간이라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마라. 절대로 주저하지마라.
오랜 시간 아무런 목표도 없이 일하지 않고 나태하게 생활하다보면 인격적으로 성장하지 못 할뿐더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마저 썩혀 버리고 만다.
악의 근원을 없애는 방법은 열심히 일하는 것
욕망,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은 인간 감정을 괴롭히는 번뇌 중 가장 추한 감정이다. 석가모니는 이 세 가지를 ‘탐진치(貪 瞋痴) 삼독(三毒)’이라고 부르고, 인간을 잘못된 행동으로 이끄는 악의 근원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그 독소를 희석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유일무이한 방법이 바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젊은이였다. 그저 특출한 재능도 없었고, 집이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당장 취업해서 돈을 벌어먹고 사는 게 인생의 목표였다. 모든 일에 흥미가 없고 금세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랬던 청년이 어떻게 60년이란 세월동안 한 분야에서 일하며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내가 스스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마음가짐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극적으로 변화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천직은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은 내 삶의 원동력이자 어려운 고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그 마음가짐이 그 일의 성공과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미리 알고 그 일을 선택해 자신의 평생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천 명에 한 명 아니 만 명에 한 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 명 중 9,999명은 불행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하니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고 봐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인생의 출발을 좋아하지 않는 일을 맡으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성공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 비하하고 마지못해 계속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 보다는 우선 주어진 일을 좋아 하려는 마음부터 갖길 바란다.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어야 일도 오래 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조금 단순한 면이 있어서 실험을 하고 생각 한대로 결과가 나오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펄쩍펄쩍 뛰었다. 남들이 보기에 경망스럽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내 연구보 조였던 한 청년은 늘 나의 그런 모습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느 날 나는 펄쩍 뛸 듯이 기뻐하며 데이터를 측정하는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 결과가 기쁘지 않나?” 그는 나를 흘끗 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그 정도로 기쁘지 않습니다. 이미 그럴 것이라 예측하고 실험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요? 당연한 결과죠. 게다가 남자가 그렇게 펄쩍 뛰면서 기뻐할 일이 평생에 몇 번이나 되겠습니까. 좀 경박스럽다 할까. 제가 보기에 너무 가벼워 보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겠다만 그래도 자네가 꼭 알 았으면 하는 게 있다. 소소한 일에도 기쁨을 느끼고 감동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지. 단조롭고 반복적인 우리의 연구를 지치지 않고 계속해 나가려면 좋은 결과가 나올 때 기뻐할 줄 알아야 해. 그 기쁨과 감동이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법이니까. 자네가 아무리 내게 경박하고 가벼워보인다고 말 해도 나는 앞으로도 작은 성공을 충분히 기뻐하면서 내 일에 매진할 걸세.”
사소한 일에 기쁨을 느끼고 간절한 마음을 가져라
나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일을 하면서 사소한 일에도 기쁨을 느끼고 감동하는 것, 그리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물질은 불에 가까이 대면 타는 가연성 물질, 불에 가까이대도 타지 않는 불연성 물질, 스스 로 잘 타는 자연성 물질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연성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야만 행동하고, 불연성 인간은 타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씨까지 꺼버린다.
이에 반해 자연성 인간은 스스로 타올라 행동으로 옮긴다. 기업이든 팀이든 뜨거운 열의가 없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전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불연성 인간이 가득한 회사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차분히 생각해 보라. 당신은 스스로 타오르는 자연성 인간인가, 아니면 불이 닿아도 타지 않는 불연성 인간인가?
지시한 대로만 일을 하지 말라. 스스로 타오르지 않고 끌려만 다녀서는 아무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남에게 지시를 받고 일하기 보다는 그 일의 중심으로 들어가 리더가 됐다는 생각으로 일을 끌고 나가라. 교세라를 창업하고 나는 마츠시다 고노스케의 강연을 맨 뒷자리에 앉아 들은 적 있었다. 그는 “경기가 호황일 때 방만한 경영을 하지 말고 경기가 좋지 않을 때를 대비해 힘을 비축해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을 막아두는 댐처럼 준비성 있는 경영을 하라는 소리로 들었다. 그때 어느 중소기업 경영인이 일어나 “그런 정도는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면 좋겠는가?” 라고 질문 했다. 질문인지 항의인지 당혹스런 표정을 짓던 고노스케 회장이 생각에 잠겼다가 혼자말로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으면 되지” 하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순간 강연장이 술렁댔는데 나는 그 순간 전기가 내 몸에 흘러 찌릿한 충격을 느꼈다.
그건 바로 “당신 회사에는 당신 회사에 맞는 게 있는 법이지, 당신 스스로 마음먹어야 하는 거야. 그런 준비경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되는 거지, 구체적인 방법이 뭐가 있는가 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한 마음, 절실한 다짐이 경영의 시작 이라는 말로 나는 받아들였다.
꾸준한 노력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편한 방법만 찾는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나머지는 신께 빌며 천명을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다.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할 만큼 당신은 당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냈는가? 몸이 부서질 만큼 제품 하나하나에 영혼이 스며들게 했는가? 그렇게 까지 강렬하게 염원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냈을 때 비로소 신이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자연계의 법칙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자연을 보면 어느 동식물이든 온 힘을 다해 살아가지 않는 생명은 없다. 오직 인간만이 편하고 쉬운 길을 찾는데 열중한다. 동식물들은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것에만 열중하며 온 힘을 다한다. 자연의 섭리란 원래 그런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지 않는 식물은 하나도 없다. 노력하지 않는 생물은 생존하지 못한다. 그것이 자연계의 법칙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노력이라든가 열심히 산다는 말을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특별한 일처럼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경영자로서 수많은 인재를 채용하는 일에 직접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면도날 같은 사람들을 만난 적도 많았다. 일머리가 좋은 것은 물론이고 일에 대한 습득 속도도 빠른 한마디로 재기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반면 일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사람도 많았다. 똑똑하지도 않은데다 눈치까지 없어서 옆에 있는 사람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경영자가 기대를 가지는 인재는 당연히 전자다. 그런데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의외로 정반대의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전자는 안목이 있어서 그런지 자기 일이 지루하거나 회사의 가망이 없다고 느껴지면 빠르게 회사를 그만두었다. 또 자기 업무에 성과가 없으면 변명을 늘어놓거나 동료 또는 회사에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결국 회사에 남은 사람은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일머리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남들이 싫다고, 내팽개친 일도 결코 싫증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꾸준히 해나갔다. 세월이 흐르며 그저 평범하고 성실했던 직원들이 어느새 비범한 인재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 을 알아차리고는 무척 놀랐다.
소처럼 서툴지만 우직하게 한 가지 일에 매진한 시간과 노력이 그들의 능력 뿐만 아니라 인격까지도 갈고 닦아 훌륭한 인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민첩하고 영리한 머리보다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도 끈기 있고 성실하게 해 나가는 지속의 힘이야말로 일을 성공으로 이끌고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진정한 능력이다.
눈앞의 현실이 중요...오늘을 성찰하고 내일 1cm의 개선과 궁리(窮理)
대개 멀리 내다보고 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의 방법을 택했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현실만 보기로 했다. 내가 딛고 서 있는 발 밑만으로 보기로 한 것이다. 아무 것도 보지 말자. 오늘 달성하기로 한 일은 반드시 오늘 해내자. 일의 성과와 진척상황을 하루 단위로 구분해서 확실히 지키자. 하루 동안 적어도 한걸음만큼은 나아가지, 오늘은 어제보다 1cm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자.
단순히 앞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오늘을 돌아보고 그 성찰을 토대로 내일은 반드시 한 가지 개선, 한 가지 궁리를 더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루를 살아가는 단위로 정하고 그 하루하루를 온힘을 다해 살아가며 열심히 일하라.
나는 교세라 창업 이후 1년간의 경영계획만 세우기로 했다. 3년 후, 5년 후의 일은 그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1년 후의 일이라면 그리 큰 착오 없이 미리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1년의 계획을 월별 일별 목표로 세분화해서 그렇게 쪼갠 일정을 반드시 달성하려고 노력했다.
교세라의 첫 고객은 마츠시다 전기공업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던 마츠시다 고노스케 경영철학을 배우고 싶어 하던 내가 그에게 제품을 납품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거래하다보니 가격, 품질, 납기일 등 모든 면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까다로웠다. 협력사에 가혹 했고, 납기일을 하루라도 지키지 못하면 그것으로 거래를 종료시키기로 악명이 높았다. 가격에는 더 가혹해서 가격인하 요구가 올 때는 감사의 마음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 때 미국 서해안에 있는 반도체 기업이 우리 제품을 주문했다. 우리 제품이 품질이 월등하고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수입하겠다는 수량은 일본 내 총량을 넘어섰는데 그 때 나는 비로소 마츠시다 고노스케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혹독한 훈련을 시켜줬으니까. 엄격한 기준을 요구해 거기에 맞추기 위해 필사적이게 했으니까 말이다.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라,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
자신의 상황을 놓고 부정과 원망하는 마음만 키워갈 것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요구라도 자신을 성장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일지는 오직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인간은 실패와 실수를 되풀이하며 성장한다. 실패해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 그것을 교훈 삼아 새로운 행동에 도전하라. 그런 사람만이 설사 궁지에 몰리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성공을 이룰 수 있다.
무언가를 열망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세상 모든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강인한 힘이 들어 있으며 그 의지가 강렬하고 순수하고 한결같을수록 더 큰 힘이 발휘되어 불가능할 것으로 여기는 계획과 목표마저도 실현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고 다짐하라. 모두 함께 일하고 기쁨을 나누어라.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어라. 남을 배려하고 자상하게 행동하라. 성실하고 정직하며 겸허하게 노력하라.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욕심을 버려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지녀라.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과 한국과의 인연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장인인 우장춘 박사의 첫 호적 이름은 우명박이다.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는 원래 황궁을 지키는 별기군 대대장이었다. 그러나 을미사변 때 적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보복이 두려워 일본으로 망명했다. 본처가 한국에 살고 있었지만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우장춘의 아버지는 우장춘을 사생아 신분으로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우장춘은 도쿄대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교토의 타키아 종묘에 간부요원으로 입사했다.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자 이 회사가 소유한 한반도 내 토지가 몰수당할 위기에 내몰렸다. 회사는 우장춘으로 하여금 한국에 가서 로비를 부탁했지만 고집스런 우장춘은 이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그는 회사에서 해고됐고, 지독한 가난 속에 허덕이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일본의 조직적인 반대를 물리치고 혼자 한국에 왔다.
우장춘 박사는 일본인 아내와 사이에 2남 4녀를 뒀는데 4녀인 아사코가 이나모리 가즈오의 아내다. 아사코는 교세라 창업 초기 돈이 없어 어려워도 이나모리에게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남편이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한 번도 먼저 자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향한 이나모리 회장의 사랑이 꿀물처럼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이나모리 회장은 우장춘 박사에게 결혼을 승낙 받을 때, 자기철학이 뚜렷한 우장춘 박사가 큰 인물임을 직감했다고 후일 고백했다. 우장춘 박사가 1959년 사망하자 국장에 준하는 성대한 사회장으로 장례를 지냈다. 이나모리 회장은 매년 경기도 수원 농업시험장 언덕에 있는 장인의 묘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또한 박지성이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할 때 이 팀의 메인스폰서가 교세라였다.
이나모리 회장의 약력(略歷)
이나모리 회장은 가고시마현립대 공학부를 졸업한 후 회사원으로 일하다 27세인 1959년에 자본금 300만 엔으로 교토 세라믹(현 교세라)을 설립했다. 창업 당시 교세라의 종업원은 28명이었다. 교세라가 현재 종업원 8만3,000여 명, 매출 1조8,400억 엔(약 17조9,000억 원) 규모의 세계적인 전자·정보기기 대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이나모리 회장 특유의 경영 방식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기업을 10명 이하의 소집단(아메바)으로 재편하는 아메바 경영을 도입해 직원들이 자신의 성과를 명확히 인지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시간 단축, 매출 증가를 꾀했다. 1984년에는 일본 제1이동통신사인 NTT가 통신 사업을 독점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이니덴덴(DDI)이라는 장거리 전화 회사를 설립했다.
DDI는 이후 합병을 거쳐 현재 일본 2위 이동통신사인 KDDI로 거듭났다. 이나모리 회장은 좌우명인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숭배하고 인간을 사랑하다)’에 걸맞게 기업 경영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역설했다.
1983년에는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경영 비법을 전수하는 교육기관을 설립해 말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강연을 했다. 1984년에는 이나모리재단을 설립하고 이듬해 ‘교토상’을 창설해 첨단기술·기초과학·예술 분야에 공헌한 이들에게 상을 수여 해왔다. 여러분은 그의 일생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그는 습관처럼 죽기 전까지 일하러 출근하면서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시오?. 그래서 당신은 그 일을 통해 무엇이 되기를 꿈꾸시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