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생각하면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또 맥주나 소주와 달리 정장을 입고 마셔야 할 것 같은 이미지와 비싼 것이 맛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과연 그럴까? 물론 와인은 어렵고 복잡하고 비싸고 고급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유럽의 와인과 신대륙 와인
와인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프랑스와인, 이탈리아 와인하면 고급스럽고 비쌀 것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프랑스 뿐 만 아니라 유럽의 와인들은 포도재배역사, 와인 제조 역사가 굉장히 깊고 오래됐다. 그래서 와인이 어렵고 까다롭고 비싸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또 저렴한 와인도 있고 언제 어디서나 와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면도 있다.
유럽의 와인은 라벨을 보면 전통적으로 포도재배지역을 강조하고 있는데 전문용어로는 와이너리라고 한다.
반면 미국, 호주, 남아공 같은 신대륙 와인들은 어떤 포도 품종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강조한다.
신대륙이 이처럼 포도 품종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 적으로 유명한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고급와인을 생산했던 브랜드 네임이 강한 유럽 와인과 경쟁하기 위해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의미이다.
유럽의 와인 라벨을 보면 때로는 포도품종을 표시하지만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현재는 시대에 맞게 많은 와인들이 표기를 하고 있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굉장히 많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뽑자면 포도 품종과 와이너리, 몇 년 묵혔냐 하는 것들인데 가장 쉽게 맛을 예상할 수 있는 힌트는 포도 품종이다.
그래서 신대륙의 와인들은 어떤 포도 품종이 어떤 맛이 나는지만 기억하면 쉽게 자기 취향에 맞는 와인들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의 와인들은 재배지역을 강조하기 때문에 고르기가 쉽지 않다. 즉 유럽의 와인들은 그 지역의 역사를 알아야 제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복잡한 점이 있다. 유럽와인은 담근 지 1년 안에 마셔야 하는 보졸레부터 수십 년씩 숙성을 하는 고급 빈티지 와인 등 가격과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유명한 와이너리에서 만든 고급 와인을 알아내서 그것을 구입했다고 해도 그 와인들이 모두 똑같은 맛을 내지 않는다. 이유는 유럽의 기후 변화 때문인데 포도를 재배하는데 있어서 기후는 와인에 많은 영향을 준다.
유럽의 기후는 변덕이 심해서 어제 만든 와인과 오늘 만든 와인의 맛과 품질이 다를 수 있다. 반면 신대륙 와인은 기후가 안정되어 있어서 빈티지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 없고 신생 와인이라서 가격차가 유럽처럼 크지 않다.
또 유럽 와인은 전통과 역사가 깊은 만큼 그 종류가 너무 많고 다양해서 혼란스러워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와인에 등급을 매긴다.
프랑스 와인
프랑스 와인은 복잡하고 까다롭다. 나라에서 법으로 엄격하게 와인을 관리하고 그 법의 핵심을 모르면 어떤 와인인지 알 수 없고 지역마다 품종과 재배하는 방식이 다르다.
프랑스 와인을 제대로 알려면 와인을 만드는 지역들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데 1000개 이상의 와인 양조장이 있기 때문에 소믈리에들도 다 알기란 어렵다.
전에 말했듯이 프랑스 와인에는 등급이 있다. 제일 좋은 것이 AOC, 2번 째가 AO-VDQS, 마지막이 VdP와 VdT이다. 프랑스에는 원산지호칭제한이라는 법이 있다. 어떤 특정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의 이름을 다른 지역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원산지호칭제한 고급와인은 VQPRD라는 유럽연합 분류법을 따르고 있다. VQPRD란 한정 지역 생산 고품질와인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고급와인은 AOC, 그 다음 것이 AO-VDQS인 것이다. 그 밑에 VdP와 VdT는 쉽게 말해서 테이블 와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가격도 부담 없고 매일 집에서 식사할 때 물처럼 마실 수 있는 와인이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AOC 등급 안에서 또 다른 차이가 있다. 같은 AOC라고 다 같은 AOC가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이라는 지역이 있다고 하자. 서울 지역 안에서 중랑구라는 조그만 소도시가 있다.
그리고 이 소도시에 신내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중랑구 소도시에서 신내동이라는 마을의 포도가 특히 뛰어나다면 등급을 매길 때 A신내동C이라고 정한다. 신내동이 아닌 중랑구 지역 와인은 A중랑구C, 기타 서울 안에서 특히 뛰어난 포도 재배 지역이 없다면 A서울C라고 쓰는 것이다.
이탈리아 와인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함께 최대 와인 생산국 1,2위를 다투는 곳이다.
기원전 2000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해 온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로마제국의 팽창과 함께 유럽에 와인 문화를 전파한 곳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탈리아 와인은 프랑스 와인처럼 그렇게 고급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프랑스의 와인시장은 하나로 강력하게 통합되어 있지만 이탈리아는 작은 여러 개의 시장으로 쪼개져 있어서 힘이 분산되어 있고 19세기 정치적 변동과 혼란 그리고 유럽을 휩쓴 필록세라 해충과 1,2차 세계대전 때문에 와인산업이 힘을 잃어버렸다.
이탈리아에서 현재 와인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프랑스보다 2배나 더 많다. 하지만 개인당 포도 재배 지역은 프랑스보다 훨씬 작아서 영세성을 드러내 왔다. 그러다 보니 이탈리아 와인은 고급스럽지 못하고 싸구려 와인이라는 인식이었다. 과거에 수출을 할 때도 탱크째 실어버리는가 하면 공업용 알코올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짧은 세월 동안 와인 혁신을 이루어 현재는 프랑스 와인 못지 않게 굉장히 고급와인으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 인식되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와인에 등급을 매긴다. 최고가 DOCG, 두 번째가 DOC, 세 번째가 VdTIGT 또는 IGT, 마지막이 VdT이다.
이탈리아 와인도 원산지호칭제한 와인으로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다. 따라서 규제나 간섭이 심하여 일부 와인 생산자들은 까다로운 규제들을 모두 지킬 바에 DOCG나 DOC 등급을 버리고 자기 노하우대로 만들어서 VdT급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탈리아는 국가 전체가 와인 포도재배가 가능한 지역이다. 전국에서 300종이 넘는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때문에 다양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와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와는 다르게 미국은 신대륙 와인 국가이다. 때문에 미국 와인은 더욱 쉽게 알 수 있고 실용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는 나라이다.
미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와인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다. 미국 와인의 90%는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고급와인부터 싸구려 와인까지 다양한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다.
미국에 최초로 포도를 심은 건 1562년 프랑스 신교도들이었다. 하지만 이때에는 하나님 제사에 쓸 용도로만 만든 와인이어서 테이블 와인으로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796년 스페인 선교사 후니페로세라가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 포도를 심은 것이 계기가 되어 점차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미국의 와인산업에서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필록세라 해충들이 캘리포니아 포도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을 때와 1919년 미국 전역에 금주령이 선포되어 모든 양조장이 문을 닫았을 때였다.
잠잠했던 미국 와인 시장은 1960년대에 다시 부활하기 시작한다. 로버트 몬다비라는 사람이 양조 전문가 앙드레 첼리스테프와 함께 프랑스 와인을 모델로 캘리포니아 와인을 많이 발전시켰다. 그리고 J.F.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부비에가 프랑스 사람이어서 대중들의 프랑스 와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한 시기였다.
엄청난 사건은 1976년에 일어난다.
세계 와인의 맛을 평가하고 1위의 와인을 감정하는 세계적인 대회에서 블라인드 테스팅으로 진행하였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명품 와인을 제치고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폭발적인 와인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년 후인 1797년 프랑스는 갓난아기 같은 미국 와인에게 졌다는 치욕을 갚기 위해 와인올림픽을 개최했다. 33개국에서 330종의 와인이 참가 했고 10개국에서 62명의 와인 전문가들이 블라인드 테스팅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승리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1986년 또 다시 세계 와인 대회가 개최되었고 역시 승자는 미국 와인이었다. 이로써 캘리포니아 와인은 신대륙 와인이 싸구려 저급이라고 생각하는 세계인들의 인식을 확 바꿔버리게 된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