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매진 사례’가 이어지는 건 입장권만이 아니다. SPC삼립(구 삼립식품)이 1999년 국진이빵, 2022년 포켓몬빵에 이어 2025년 신제품 크보빵(KBO빵)을 출시해 메가히트급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캐릭터 스티커와 추억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크보빵’은 빵 자체의 맛 보다는 띠부씰의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크보빵 열풍도 1900원이라는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야구 굿즈를 구매할 수 있고 MZ 세대들의 컬렉션 욕구에도 안성맞춤이다.
또한 한 해 1000만 관중을 모으는 KBO리그 응원 문화 속에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선수에 대한 애정을 야구 직관이나 유니폼 구매 이외에 ‘나만의 굿즈’를 모으는 것도 야구팬들의 추억을 저장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띠부씰’ 캐릭터의 규모와 역사...제대로 알면 마케팅 흥행이 보인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크보빵’이 주목을 받는 비결의 중심에는 ‘띠부씰’이 있다. 띠부씰은 탈부착 스티커로 ‘띠고 부치고(떼고 붙이고) 띠고 부치는 씰(seal)’의 앞글자를 딴 신조어다. 2022년 포켓몬스터 띠부씰이 출시된 후 열풍이 불면서 편의점에서 ‘띠부씰 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스티커가 들어있던 빵의 시조격인 ‘국진이빵’은 IMF 상황에서 히트친 상품이다. 당시 삼립식품은 IMF의 여파로 망하기 직전인 부도 상태였다.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개그맨 김국진을 캐릭터 디자인한 스티커를 넣은 빵을 출시했다. 개당 500원 하는 빵을 팔아봤자 코흘리개 아이들이 얼마나 사 먹겠냐고 생각했지만, IMF 구제금융 중인데도 아이들이 빵 속의 국찐이 스티커만 모으고 빵을 버릴만큼 인기를 끌었다.
국진이빵은 출시된 이후 하루에 50만개 이상 팔려 연간 약 210억 매출을 올리며(월평균 36억) 삼립식품이 부도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 전설의 빵이 됐다.
2022년 2월 출시된 ‘포켓몬빵’은 출시 후 3일 동안 75만 봉이 판매됐고, 당시 월 최대 매출은 120억원에 달했다. 그해 2분기부터 5개 분기 연속으로 두 자릿수 베이커리 매출 성장세가 이어지기도 했다.
포켓몬 빵 띠부씰 1세대는 151종인데 그중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포켓몬 8종을 추가해 총 159종에 이른다. 이후 추가된 2세대는 116종이며, 러블리 30종, 할로윈 27종이 있다. 번호가 뒤로 갈수록 시세가 비싸진다.
2022년 한 창 인기를 끌 때는 중고마켓 플랫폼 ‘당근 나라’에서 1세대 전체 종의 판매 가격이 80~150만원에 직거래 되기도 했다. ‘구하기 어려운 포켓몬빵 띠부씰’(1세대 뮤·뮤츠, 2세대 루기아·칠색조·세레비)은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를 확인하면 4만원에서 5만원 사이에서 거래됐다. 희귀 씰은 지금도 1~3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크보빵의 인기비결... ‘띠부씰 모으기’ 덕후와 ‘프로야구 팬심’의 결합
한국야구위원회(KBO)·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협업해 출시한 크보빵은 출시 3일 만에 100만 봉 판매(23일 기준)를 돌파했다. 삼립이 출시한 신제품 중 역대 최단기간 기록이다. 지난 13일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진행된 사전예약 판매는 하루 만에 완판됐다.
출시 후 온라인에 다양한 후기가 올라오며 반응이 개막한 야구 열기만큼 뜨겁다. 크보빵 오픈런, 띠부깡(빵 속에 띠부씰을 까는 행위), 드래프트 라인업 인증 등 제품을 활용한 밈 콘텐츠 양산도 일어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포켓몬 빵 히트 이후 잠잠했던 편의점에 오픈런이 재현됐다는 점이다. 보통 편의점 3사(CU, GS, 세븐일레븐)에는 저녁타임에 물품이 들어오는데, 최근 편의점 업주들은 크보빵의 인기에 예약을 걸어놓는 손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크보빵을 찾은 이가 많아지면서 편의점은 긴급 공수작전을 벌이기도 한다. 24일 오전 6곳의 편의점에서 크보빵 입수에 실패한 본지 기자는 그날 저녁 예약주문이 되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4개의 크보빵을 어렵게 구했다. 구매와 동시에 띠부씰을 뜯어 봤는데, 한 번만 빵과 띠부씰 선수의 소속팀이 일치했고 나머지는 다 달랐다.
포켓몬빵처럼 팬끼리 ‘띠부씰 교환’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중고마켓 플랫폼 ‘중고나라’에서는 구단 및 선수별 금액을 자체적으로 측정해 판매하고 있다. 판매자들은 “KIA 나성범, 국가대표 김도영 판매해요”, “두산 선수들 띠부씰 있는데 한화 선수들과 교환하실 분” 등 띠부씰 교환 및 판매글 70여 건이 올라와 있다. 지난해 MVP를 받은 김도영 선수와 같은 인기 띠부씰은 1만원대에 육박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KBO빵, 구단 팀색깔 살린 맛과 디자인 눈길...롯데 팬들만 울상
크보빵 면면을 보면, 디펜딩챔피언 KIA는 ‘타이거즈 호랑이 초코롤’이다. 겉표지는 호랑이 무늬인데, 내용물은 초코크림을 돌렸다. 삼성은 ‘라이온즈 블루베리 패스츄리’다. 패스츄리의 부드러움과 블루베리 커스터드가 신·구 조화를 연상케 한다.
줄무니 유니폼을 연상케하는 LG ‘트윈스 쌍둥이 딸기샌드’에는 크림을 잔뜩 넣었고, 서울 라이벌 두산은 ‘베어스 곰발바닥 꿀빵’으로, 곰 발바닥 모양 빵에 꿀 필링을 가득 채웠다. 곰이 꿀을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일종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제품이다.
수원 마법사 군단 KT 꾸덕한 초코 브라우니 사이에 바닐 크림을 마법처럼 샌딩한 ‘위즈 빅또리 초코바닐라 세트’로, SSG는 버터 시트를 돌돌 말아 솔티하게 만든 ‘랜더스 소금버터 우주선빵’으로 탄생했다.
이번 시즌 새 구장을 선보인 한화는 ‘이글스 이글이글 핫투움바 브레드’로, NC는 흑임자 케익에 초코쿠키 크럼블을 올려 공룡알처럼 만든 ‘다니오스 공룡알 흑임자 컵케익’을, 히어로즈 영웅필승 ‘자색고구마팡’을 맛볼 수 있다. 이외에 특별히 배트 모양의 33㎝짜리 롤케익 ‘홈런배트롤’를 추가해 10종을 완성했다.
삼립은 인기에 힘입어 내달 21일까지 ‘크보빵 띠부씰 드래프트 이벤트’를 진행한다. 동봉된 선수 띠부씰을 촬영해 필수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야구공 모양 순금, 아이패드 미니, 국가대표 유니폼 등을 선물한다. KT 고영표 등 현역 선수들도 “우리 팀 빵이 다 팔리고 없다” 등 크보빵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삼립 관계자는 “출시와 동시에 고객과 야구 팬들의 뜨거운 반응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관심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크보빵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크보빵은 포켓몬빵보다 빠르게 100만 봉 판매를 돌파했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며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가 출범 이후 최초로 천만 관중을 넘어섰으며, 올해 KBO리그 개막 시점과 맞물려 크보빵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번 크보빵은 롯데가 빠진 채 9개 구단으로만 제작되면서 롯데 팬들은 울상이다. KBO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 자이언츠는 계열사인 롯데웰푸드가 제빵 사업을 해 경쟁 기업인 SPC삼립 제품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는 웅진식품이 지난 21일 출시한 ‘하늘보리 KBO 에디션’에서도 빠졌다.
롯데 팬들은 “롯데도 알아서 빵을 내놓든지 하라. 다들 재밌게 즐기는데 우리만 뭐냐” “롯데만 크보에서 왕따당하는 기분” “KBO가 롯데랑 협업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등 아쉽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