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 단팥빵의 유래

  • 등록 2015.02.15 13: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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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은 일제 강점시대에 들어와 노년층에겐 추억이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꾸준하게 사랑받는 음식이다. 그런데 빵은 서양음식인데 안에 들어있는 팥소는 동양에서 먹는다. 이 국적불명의 단팥빵은 어디서 왔을까.


일본에서 다시 태어난 단팥빵


향수를 일으키는 음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장면, 수제비, 돈가스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많은 사람의 추억이 담긴 음식 가운데 하나는 단팥빵이 아닐까 싶다. 빵 안에 들어있는 달콤한 팥소는 보기만 해도 행복해 진다. 빵은 서양음식인데 안에 들어있는 팥소는 동양에서 먹는다. 이 국적불명 아리송한 단팥빵은 어디서 왔을까? 우선 답을 말하자면 단팥빵은 일본에서 발명됐다. 동양에서는 밥이 필수듯이 서양에서는 빵이 필수적인 음식이다. 일본에 빵이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오랫동안 밥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빵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호에 돈가스에 대해 언급했듯이 고기를 먹지 않던 일본인들이 서양에서 들여온 고기 요리법을 일본식으로 재창조해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췄듯이 빵도 독특한 형태로 재창조했다. 그것은 바로 간식으로 먹는 ‘과자빵’이었다. 단팥빵은 돈까스와 마찬가지로 일본식으로 다시 태어난 일본 음식이다. 육식이 일본인들의 식탁에 자리잡기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단팥빵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맨 처음,
일본인들이 빵을 본 것은 16세기에 들어선 이후다. 1543년, 포르투갈 트럼엘타 호가 폭풍우로 다네가시마
에 도착했다. 그 때 당시 성주였던 다네가시마 도키타카는 배에 있던 포르투갈 사람들과 중국인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그 보답으로 철포 두개와 화약을 받았다.


이 때 포르투갈인들이 빵을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1549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라는 선교사가 카고시마에 상륙해 기독교 포교를 허락 받았다. 그는 포교에 필요하다며 빵과 와인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 후 서양인의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서양문화와 함께 과자도 들어왔다. 에도 시대 중기인 1720년 나가사키 야화에 따르면 설탕과 아몬드로 만든 과자인 하르테, 치즈케이크, 카스텔라, 별사탕, 캐러멜, 비스킷, 빵 등 과자가 나가사키 지방의 토속산물로 열거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400년 전에 이미 빵이 과자의 하나로 일본에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6년 걸린 단팥빵 만들기


다시 단팥빵으로 돌아가보자. 처음으로 단팥빵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기무라 야스헤에라는 사람이다. 서양음식인 빵을 일본인 취향에 맞게 개발해서 전국을 휩쓴 사람이다. 야스헤에는 원래 메이지 원년에 도쿄직업훈련소에서 사무직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 직업훈련소에서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저택에서 빵을 굽던 우메키치를 만났다. 빵 만드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낀 야스헤에는 50살이 넘은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느껴서 훈련소를 그만두고 빵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시대에 빵이란 밀가루를 반죽해 구운 것이 전부였다. 야스헤에는 1869년 도쿄에 작은 서양식 잡화점 겸 빵집을 열었다. 이 집이 도쿄 빵집의 원조다. 아까도 말했듯 이 시대에는 밀가루 반죽을 구운 것이 빵의 전부였다. 발효에 맥주효모를 이용해 쓰는 것이 세계적인 대세였다. 일본에서는 발효종을 얻기가 어려워, 찐빵을 만들 때 넣는 술누룩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한 시간 계산과 과학적인 지식에 의존하기보다는 오로지 경험과 눈치로 발효가 얼만큼 되었는지, 얼마동안 굽는지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실패가 거듭됐다.


야스헤에의 목표는 이런 틀을 벗어나 완벽하고 새로운 빵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야스헤에는 주식이 아닌 ‘간식용’으로 빵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일본인들이 중국에서 들여온 면 제조법을 일본인들이 일본식으로 창조해 소바, 우동, 소면 등을 탄생시킨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빵도 일본식으로 재창조 시키기로 한 것이다. 빵은 이스트 냄새가 나서 일본인들의 입에 맞질 않는다. 하지만 술찐빵은 그 독특한 맛이 일본인들에게 잘  맞는다. 그러면 빵 반죽에 설탕이나 계란을 넣으면 전통적인 일본 과자 같은 맛이 나지 않을까? 단팥소를 안에 넣어보고 찐빵처럼 찌는게 아니라 빵처럼 구워도 보고 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술누룩은 발효력이 약했다.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야스헤에는 마침내 성공했다. 6년만의 성공이었다.


일본에서 생겨난 중국과 서양의 결합물


1874년, 야스헤에는 단팥빵 만들기에 성공했는데 쌀누룩종을 쓰는 새로운 발효법을 통해 완성시켰다. 일본술의 효모가 증식해 유산이 생성되면 잡균의 번식이 억제되고 빵 반죽이 잘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도 이스트보다는 발효력이 약했기 때문에 발효시간을 늘리고 설탕을 35% 이상으로 늘렸다. 90분간 2차 발효를 시켜 숙성이 된 후 10분간 구웠다고 한다. 누룩으로 만든 단팥빵은 부드러웠다. 당분이 많은 상태에서도 발효가 잘 됐고 씹는 맛, 풍미, 감미 모두 일본인의 입맛에 맞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단팥방은 기존의 중국의 찐빵과 서양의 빵과는 전혀 달랐다.


시타바 요네사쿠는 ‘일본빵 400년 사’ 라는 책에서 쌀누룩빵의 특징으로 “일본술의 향기가 날 것, 식어도 오랫동안 부드러움을 유지할 것, 당분을 많이 사용해도 왕성한 발효력을 지닐 것” 등의 항목을 들고 있다. 또한 “종래의 단빵은 단순히 단맛만 들인 것이지만, 야스헤에가 창안한 빵은 단팥소를 안에 넣은 것으로서 그전에는 전혀 없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농업학자 나카오 사스케의 ‘요리의 기원’ 에서는 “일
본의 단팥빵은 참 재미있는 음식이다.


단팥빵을 한번 이렇게 보자. 중국의 빙류에는 속에 여러 가지 재료를 채워 넣은 것이 많다. 고기를 넣어 구운 것은 러우빙이라 한다. 그것을 굽지 않고 만터우처럼 찐 것은 바오쯔라고 한다. 일본 단팥빵의 단팥소는 그야말로 중국적인 것이다. 이 빙과 바오쯔를 서구식 빵안에 넣어 만든 것이 바로 단팥빵이다. 따라서 단팥빵은 중국문화와 서구문화의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그것이 생겨난 곳은 중국도 서양도 아닌 일본이라는 점이 재미있다”고 기록돼 있다.


긴자 명물에서 궁내청 납품까지


야스헤에가 1874년 단팥빵을 팔 때 그 인기는 점점 높아져서 눈깜짝할 사이에 긴자의 명물이 됐고 하루 판매량이 1만5천개에 달했다. 그는 소금에 절인 벚꽃 꽃잎을 구워내 단팥빵에 박았고 메이지 천황의 시종에게 보냈다. 그 시종이 이 단팥빵을 천황의 식탁에 올리자 천황이 이를 먹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단팥빵은 궁내청에도 납품됐다. 1884년, 납품용 빵에 시판용 빵과 구별하기 위해 빵 한가운데가 푹 들어가게 하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소금에 절여 얹기 시작했다. 벚꽃 꽃잎은 후지산과 사이코 호수 주변에서 채취한 것을 사용했으며 맛이 변하지 않게끔 매실 초에 담가 사용했다. 그러다가 1897년부터는 시판되는 빵도 가운데를 들어가게 하고 벚꽃 꽃잎을 썼는데 이를 사람들은 ‘기무라야의 배꼽빵’ 이라고 불렀다.


단팥빵 탄생 이후 일본에서는 새로운 빵들이 속속 발명되기 시작했다. 1900년에는 영국의 샌드위치 비스킷용살구잼을 넣어 만든 빵을 선보였고 1904년에는 커스타드크림을 넣은 크림빵이 탄생했다. 단팥빵을 응용해서 단팥 도넛도 선보였다. 그리고 샌드위치처럼 빵 사이에 한재료를 끼우는 방식의 빵들이 탄생되기도 했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5

김소연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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