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조운 기자]-ICT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편리하고 유익하기만 한 ICT가 점차 우리 삶의 거의 전 분야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ICT가 과연 우리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9일 열린 ‘2015 ICT 인문사회 심포지엄’에서는 지능정보사회에서의 인간의 삶의 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ICT가 인간의 삶의 질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지난해 영화 <백 투 더 퓨쳐>가 개봉 30주년을 맞아 재개봉했다. 30년 전 과거에서 상상하던 2015년의 모습과 현재 2015년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까지 더해지며 재개봉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화 팬들의 호응을 받았다. 당시 미래로 여행한 주인공들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하늘을 나는 자동차 등을 보며 편리해진 현실에 감탄했다. 2015년부터 상영 중에 있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그 옛날 1818년도에 만들어진 동명소설이 원작이지만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되어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과학기술이 만든 괴물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과학 기술이 남용될 때 엄청난 재앙이 올 수 있음을 경고하며 오늘날까지도 공감을 얻고 있다.
인간의 삶을 파고든 ICT, 인문학과의 융합시도
ICT(정보통신기술)를 넘어 최근에는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로 발전한 정보통신기술은 가전제품,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스마트홈, 스마트카까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ICT의 엄청난 발전 속도에 인간이 쫓아가지 못하는 현상마저 나타나면서 ICT가 인간을 위한 기술인지, ICT를 위해 인간이 맞춰가야하는 것인지 헛갈리는 주객전도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다 주체적으로 ICT에 접근해 가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하려는 노력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애플의 전 CEO인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적 감성,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술 제품에 투영함으로써 대중을 사로잡았고 신 가치를 창출해냈다. 그가 살아생전 한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애플의 DNA다.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야만 가슴을 울리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스티브잡스, 2010
지능정보사회에서의 삶의 질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ICT도 가치가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최근 ICT와 인문사회학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2월3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 김도환)은 <2015 ICT-인문사회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Interesting ICT: 사물-사람-데이터가 만드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날 이루어진 라운드 테이블은 경영, 과학기술, 철학, 정책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석해 ‘지능정보사회에서의 삶의 질’이라는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인간의 삶의 질을 ICT가 더욱 향상시켰는지 오히려 퇴보시켰는지에 대한 각계 분야 패널들과 청중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성균관대 철학과 이종관 교수는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ICT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최첨단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현상을 지적하며 ICT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비관적 시선을 보냈다. “요즘 청년들의 사회 비탄적 용어인 ‘헬조선’, ‘흙수저’는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질과 현실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 원인에 대해 우리나라의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와 치열한 경쟁을 꼽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ICT가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간 대 인간의 유대, 협력의 가치를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협동조합주의의 등장
ICT에서 협력의 가치가 등장한 것은 플랫폼의 발달과 함께 한다.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키는 기반이 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플랫폼은 과거 구글과 애플처럼 선도 ICT 기업들이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확대하거나 거대 기업으로 급성장하는 방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격체계가 아닌 사회관계와 공유의 윤리를 기반으로 하는 ‘공유경제’가 플랫폼과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낳고 있다. 라운드 테이블에 앞서 KISDI 손상영 연구위원은 ‘공유경제의 사회적 가치와 삶의 질’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미국의 에어비앤비(Airbnb)와 우버(Uber)의 사례를 분석하였다.
에어비앤비는 전세계 숙박공유 서비스로 애초에 빈 방을 무료로 빌려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가 현재는 개인 거주지를 여행객들에게 제공하는 형태로 발전된 플랫폼이다. 우버는 승용차를 가진 개인이 택시 기사처럼 서비스를 제공하여 차량예약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동 수단 공유 서비스이다. 이 두 사례는 모두 일반인이 자신들의 남는 시간이나 자신들의 소유물 중 이용하지 않는 시간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얻는 구조로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손 연구위원은 공유경제가 사용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선도적 플랫폼이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나아가 공유경제 플랫폼 시장을 독점하는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이러한 우려로 상업용 플랫폼에 대항하여 공유경제의 잉여를 조합원들에게 분배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개최된 “Platform Cooperativism(플랫폼 협동조합주의)” 컨퍼런스 소식을 전했다.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인터넷의 플랫폼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화두로 제시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이 보통의 사람들이 다른 일반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회사들이라면, 이에 기여하는 모든 관계자가 공동으로 회사를 경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을 때 일부에서는 페이스북의 콘텐츠는 사용자들이 만드는데그 이익은 플랫폼이 다 가져간다며 원래 페이스북의 가치는 사용자가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이처럼 플랫폼이 사용자들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모습에서 플랫폼 협동조합 논의가 나타난 것이다.
시민사회와 산학연의 협업 네트워크
또 다른 협동의 가치는 ICT를 통한 사회문제해결에 있어 사용자와 시민사회 그리고 산학연의 협업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토론자로 나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사회기술혁신연구단 송위진 단장은 과학기술·ICT를 통해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켜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송단장은 실제 대전에서 일어난 사례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협업 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했다. 한 중년 여성이 비로 불어난 하천 돌다리를 건너다 족사했지만 정부가 예산을 핑계로 문제를 외면하자 시민사회가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은 함께 힘을 합쳐 하천의 양 끝에 수위 센서 시스템을 구축해 앱을 통해 하천의 수위 현황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송 단장은 “지역발전도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출발해 지역의 혁신 생태계를 만들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같은 맥락에서 인간 삶의 질 문제도 자기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창조는 사람과 사람간의 연대, 그리고 협력의 산물 ICT에 있어 협력과 연대의 가치는 새로운 창조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종관 교수는 “창조는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다수의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하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우리 모두보다 스마트할 수 없다”는 혹자의 말을 인용해 “실제로 천재는 없고, 천재라 일컫는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새로운 과학이나 기술의 창조가 개인 혼자만의 창조물이 아니며 사람과 사람간의 연대와 협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남영 교수 또한 한 목소리를 냈다.
남 교수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ICT 분야의 상당한 성과를 인정했지만 최근 그 주도권과 가능성을 잃어가는 추세라고 지적하며 기술 혁신, 새로운 창조는 인력 네트워크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남 교수는 한국 온라인 게임 주요 개발 인력의 네트워크를 보여주며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였던 넥슨의 송재경, 김정주, 네이버의 이해진을 중심으로 한 다음의 이재웅, 한게임의 김범수, 엔씨소프트의 김택진으로 연결되는 한국 온라인 시장 주요 개발 인력의 네트워크를 예로 들었다.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몇 해 전부터 ICT와 인문사회학의 융합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켜 왔다. 인간과 사회·문화의 근원을 이해하는 인문학적 통찰력에 기초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어 실리콘밸리에서 인문사회학자를 채용하고 소셜 미디어들도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산업화에 성공했다. 근대사회의 과학만능주의는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일으켜 물질적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인간에 대한 고려없는 무지막지한 산업화는 인간소외, 빈부격차, 환경파괴 등 되돌리기 어려운 문제들을 낳았다.
최근 우리나라 취업시장에서는 인문계 출신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대학들은 인문계열의 학과들이 ‘돈벌이’가 안 된다며 전공 통폐합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혀가며 인간을 위한 ICT 세상을 꿈꾸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번 <ICT-인문사회 심포지엄>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고민했던 것처럼 사람과 사물 데이터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지 우리 각자가 고민해야 할 때이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