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김미진 기자)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는 농촌풍경은 아름답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 줄지어선 모들이 산들바람에 몸을 맡긴채 흔들리는 들녘. 논두렁의 풀을 베는 농부는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자라는 풀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중이라는 농부는 “그래도 지금은 한가한 때”라고 말했다. 한가한 듯 하면서도 바쁘기만 한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의 하루를 담아봤다.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주는 시골길은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기에 너무나 좋은 풍경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 곡식들은 각자의 역할을 해내기에 바쁘고 농부들은 그 곡식들이 다칠 새라 조심스러운 손놀림을 한다. 6월의 농촌, 밭에선 마늘 캐기가 한창이었고 논에선 논두렁의 풀을 베는 기계음이 하늘을 향해 날았다.
“아휴 이젠 농사도 못 짓겠어. 나이가 들어서 통 몸이 말을 들어야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할머니가 푸념 아닌 푸념을 한다. 19살에 옆 마을에서 시집와서 5남매를 낳아 모두 출가시켰다는 할머니는 “이 지역 마을은 향이 좋고 맛이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요즘은 다리가 아파서 농사를 짓는 것도 힘들어 포기할까 생각 중이라는 할머니는 그렇다고 놀자니 그러지도 못해 올해도 마늘농사며 벼농사를 하던 대로 짓고 있다고 말했다.
밭고랑에 풀썩 주저앉아 마늘을 묶던 할머니는 자식들이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내려와서 일하는 것이 고마움보다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총 출동한 할머니네 마늘 캐기는 해가질 때까지 이어졌는데 부모님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손자손녀들까지 총출동한 모습이 마음까지 포근하게 했다.
밀밭 사잇길 걸으며 추억 만들기
부드런 밀밭사이로 불어오는 나른한 바람~그녀의 머릿결이 내 코끝을 살며시 간질이고~밀밭은 청춘남녀의 사랑을 담고 있다. 그래서 밀밭은 아름다운 추억이다. 최근 밀밭을 개간해서 농가수익을 올린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일대. 이곳에서는 지난 5월28일과 29일 양일간에 걸쳐 청보리 축제가 열렸다. ‘청상에서 놀자’는 예쁜 주제로 관람객을 불러 모은 청리면 ‘청보리축제’에는 이틀 동안 약 5천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옛 추억이 생각나서 찾은 사람에서부터 색다른 축제라 찾았다는 사람까지 이들의 몰려든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행사장 안에서 함께 한 즐거움은 비슷했다. 잊고 있었던 밀사리 체험장에는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큰 관심을 모았으며 노란 황금물결 속 밀밭 사잇길 걷기에는 앞을 다투어 참가했다.
‘푸르고 보배로운 마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은 청보리축제는 곧 청리면을 칭하기도 하다. 당시 축제의 개막식에는 이정백 상주시장과 남영숙 시의회의장·시의원, 도의원 등 유관기관 단체장과 관람객 등 약 700여 명이 참석해 지역민들의 노고를 축하했다. 이번 축제는 특히 지역의 예능인들이 너도 나도 각자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나눔의 행사로 밀을 소재로 한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도 돋보였다.
건강 먹거리 장터에서는 밀을 재료로 한 밀쌀비빔밥, 잔치국수 등의 음식이 관람객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으며, 밀밭 사이길 걷기, 보릿고개, 밀사리 체험, 밀대로 비눗방울 불기, 연 만들어 날리기와 같은 전통체험은 따뜻한 추억을 남겼다. 정재현 상주시의원은 “이번 축제를 바라보는 마음이 남달랐다”고 전했다. 지역경제를 끌어 올려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자 노력해 오던 그에게 ‘청리’라는 두 글자는 곧 아이디어가 됐다고 전했다.
“청리는 푸를(靑)청에 마을(里)리를 쓰는데 중간에 보배(寶)보를 넣으니까 청보리(靑寶里)가 된 겁니다. ‘푸르고 보배로운 동네’라는 뜻이죠. 즉시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어 각 마을의 이장단과 면사무소 직원들을 불러 놓고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너무 싸늘한 겁니다. 보름 후 청리면의 각 단체장들과 이장들이 함께 가는 연수에서도 설명을 했지만 반응이 똑같았어요. 너무 화가 났습니다. 내 마을을 잘 되게 하는 일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반응이 없냐고 제가 화를 냈죠. 내가 사는 세상을 바꾸려면 내가 나서야 하는데 우리 후대에게 먹고 살길을 만들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소연을 했더니 그때서야 감동을 받았는지 ‘맞다’며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말은 쉽지만 행사를 치르기까지 설득과 설득을 반복했다는 정 시의원은 부족한 점이 많은 행사인데도 첫해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농가소득 올리려고 밀 심어
올해 ‘청보리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한 사단법인 전국 새농민회 이성희 회장은 “지역민들을 설득하고 밀밭을 조성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면서 밀밭이 총 16헥타르(48,400평)라고 전했다. 밀 심기는 겨울농번기에 놀고 있는 땅을 개간해 농가소득을 올리자는 역발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정재현 시의원과 이 회장이 한데 뜻을 모아 추진한 것인데 지역의 농민들이 노령화되어 소득원이 줄다보니 농가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밀을 심기로 했다는 것. 이 회장은 밀 소득이 보리소득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중에 거래되는 밀 40kg 한 가마니에 45,000원 정도 됩니다. 거기에 정부 직불금이 한 가마니 당 6,000원 정도 나오니까 51,000원 정도 되는 셈이죠. 지난해 시중에서 거래되는 밀 가격은 42,000~43,000원 정도였습니다. 밀이 보기에는 이래도 수확량이 꽤 괜찮습니다. 농가소득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장은 밀을 비벼 보여주며 밀알이 크고 단단해서 첫 수확치곤 풍년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면서 지난해에는 주민들의 20% 정도만이 참여를 했지만 올해는 더 많은 농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의 연령이 높다 보니까 호응도가 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올해 참여했던 농가들의 소득이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 호응도가 생길 거라고 봐요. 현재 우리나라 밀 자급률이 3~4% 정도 불과한 점을 비춰볼 때 밀농사는 상당히 의미를 갖습니다.”
올해 수확량 35톤...농가들의 입가엔 웃음이
지난 6월20일경 이 지역의 황금밀밭은 알찬 수확을 거뒀다. 정재현 시의원은 “올해 생산된 밀량은 총 35톤(875가마니)”라고 밝히며 “첫해다 보니 큰 수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러나 놀려 놓던 땅에서 한 농가당 3백 여 만원의 수익을 거둔데 대해 농가들이 즐거워한다”고 전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밀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아이쿱(icoop)이 전량 수매해 갔다. 정 의원은 올해 충분한 가치에 대해 공감한 만큼 내년에는 더 많은 농가들이 참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청상리 일대 추억의 거리로 조성
상주시 청리면 청상리는 향후 추억거리로 조성될 전망이다. 정 시의원은 이 지역의 마을 앞 도로를 70년대 추억의 거리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년들의 추억 되살리는 70년대 간판과 음악으로 꾸며 전국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청리에는 기차역이 있습니다. 그걸 살려서 청보리관광열차를 만들려고 해요. 기차역으로 연결되는 도로 약 300m에는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채울 겁니다. 또 행사장까지 관광객들이 경운기를 타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요. 이 외에도 청상리 마을 중간에 미나리 밭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직접 미나리를 채취해 청상리 청상수로 기른 청정지역의 노지미나리를 직접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청상리 마을에는 일 년내내 깨끗한 물이 흐르는 청상리 빨래터도 있습니다. 이걸 복원해서 행사기간 동안 전통복장(하얀옥양목 한복)을 입은 주민들이 빨랫감을 들고 나와 흥겨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삶의 무게를 털어 놓았던 그 시절 우리네 모습도 보여주려고 합니다.”
정 시의원은 올해 첫해 행사의 주제를 ‘청상에서 놀자’고 정한 것도 이런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북 고창과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인만큼 영호남이 어우러지는 청보리밭 포토존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고 주변의 고슬딸기밭, 오디밭 체험을 통해 관광객들에게는 농촌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지역의 농가들에는 수익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취재원이 찾은 상주시 청리면은 풀벌레 소리와 강렬한 6월의 햇살이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냈다. 해질 무렵 인적이 한가한 곳에서 마주친 고라니는 낯선 나그네의 출연에 당혹해 하며 금새 자취를 감춰버렸다. 회색 짙은 도시를 벗어나 마주한 싱그러운 농촌풍경은 도시민의 지친 심신에 상큼한 에너지를 담아주기에 충분했다. 마음의 힐링을 찾아 한 번쯤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은 농촌의 하루는 야속함을 남긴 채 저물고 있었다.
MeCONOMY Magazine Jul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