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이 1970년 ‘4일 40시간’에서 “진보는 기술의 발명에서 나온다. 주 4일 근무제 역시 사회적 발명에 속한다”고 서문에 언급했고, 2022년 페드로 고메스 경제학 박사는 ‘금요일은 새로운 토요일’이란 저서에서 “주 4일제가 경제를 살린다”는 희망적인 페러다임 전환을 세상에 알렸다.
이들의 책 제목만 보고 직장인들은 마음이 설레였다. 주 5일 근무제에 익숙한 우리는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휴일’을 맞이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된다. 불가 2년 전만해도 희망사항에 불가하던 ‘주 4일’ 근무가 현실로 다가왔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 지금이 적기인가?
최근 주 4일제로 대표되는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노동시간 체제 전환’의 관점에서 다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도입한 우리나라의 법정근로시간 ‘주 40시간제’가 일과 사생활의 비중을 따지면 저출산·고용 안전 차원에서 개선이 필요하지만, 경영계는 적정 수준의 임금 보장 전제되어야 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
이에 ‘주 4일제 네트워크’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국회에서 연 ‘주 4일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올해로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된지 20년이 된 한국은 2023년 기준 1인당 1,872시간을 연간근무하며 OECD 평균인 1,724시간을 초과했다. 또한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7개국중 33위에 불과해 노르웨이, 독일 등 연간 노동시간이 적은 국가에 비해 오래 근무하면서도 생산적이지 못한 나라가 됐다.
여론은 노동시간 단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4일제 네트워크의 ‘직장인 1000명 노동시간 및 주 4일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비율이 63.2%에 이르며, 법정 연차휴가를 현행 ‘15일부터’에서 ‘20일부터’로의 확대하는 안에 찬성하는 비율은 79.2%에 달한다.
단, 임금 삭감과 동반된 주 4일제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2021년 한국리서치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임금 삭감을 동반한 주 4일제’로 물음에 ‘반대(64%)’가 ‘찬성(29%)’보다 높아졌다.
이처럼 ‘주 4일제’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것과 현실로 적용하기까지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경영단체와 현장 노동자, 시민단체 전문가들은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임금보전, 노동시간 양극화 등 선행 논의는 물론, ‘일과 생활의 균형’을 통한 삶의 질 개선, 지속가능한 잠재력 강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40→36→32시간 점진적 축소...1년차 휴가 20일 상향 필요”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1998년부터 주 35시간제가 시행한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당시 마르틴 오브리 프랑스 노동부 장관은 이 법은 현장 혼란을 고려해 사업장별 규모를 나눠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저출생 극복과 자녀 양육을 위해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 4일제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다. 기존 법적으로 ‘주 5일, 7시간 근무’를 ‘주 4일 8시간’으로 몰아서 하고 3일을 쉬는 안이 유력하다.
그러면서 한국의 노동시간 제도화 개편을 통해 △법정 노동시간 ‘40→36→32시간 △1주 연장근로 제한 52시간→48시간 △법정 연차휴가 상향(1년차 기준) 15일→20일 등을 패키지 법안으로 제안했다.
또한 주 4일제 법 제도 변경안을 9일 국회 첫 법안 논의를 시작으로 차후 2030년 ‘주 32시간’까지 단축하는 데 국회가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목소리를 냈다.
주목할 점은 프랑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에 나선 노사에 상당한 재정 지원을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근로시간을 줄인 사업장에서 신규 채용, 고용 유지가 이뤄지면 사회보장분담금 7년치를 경감하는 방식으로 도왔다.
이에 김 소장은 “프랑스는 최저임금이 일정 수준 인상될 때까지 보조수당을 한시적으로 유지했다”며 “2002년 주 35시간제에 대한 최초 평가 보고서를 보면 30만개 일자리가 창출되고 단체협약 협상이 늘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이 같은 주 4일제 도입 주장에 반대했다.
황용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전세계 평균적인 근무시간을 언급하며 ‘주 40시간 미만’으로 정한 국가는 호주(38시간), 벨기에(38시간), 프랑스(35시간) 등 3개국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황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중 15년간(2008년~2023년) 2,200시간에서 1,800시간대로, 세계에서 가장 근무시간이 많이 줄어든 나라”라며 “또 다른 국가에 비해 자영업자 비중이 크고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작은 탓에 1인당 연간근로시간이 비교적 길게 나타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근무시간 축소땐 제조업 등 중소기업의 경우 일감이 줄고 인력확보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영세기업이 임금이 줄이면 근로자들은 소득 보전을 위해 투잡을 하는 등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다”고 경고했다.
한진선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과장은 “교육·육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유연 근무제 도입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실상은 연차 소진율 조차 다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선적으로 탄력근무제, 연차휴가 몰아쓰기 등 사회적 대화 못지 않게 주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도 지자체·대기업 중심 ‘주4일제’ 시범 사업... 확대 가능성은?
현재 지방자치단체와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주4일제 시범 사업을 비롯해 격주 4일제, 주4.5일제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경기도는 내년부터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를 시범 도입한다.
일부 산하 공공기관과 도내 50개 민간기업 중 △격주 주 4일제 △주 35시간제 △매주 금요일 반일근무제 중 한 가지에 노사가 합의하면 근무시간 단축분에 대한 임금을 경기도가 지원한다. 연간 1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경기도는 주4.5일제 도입 이유로 저출생과 노동시간 단축을 언급했다.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도의 주 4.5일제는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했던 것처럼 개별노동자를 위한 단편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전면 도입을 통해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전체 직장,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고 설명했다.
주요 기업들도 4.5일제를 시범 운영중이다. SKT는 격주로 주 4일 일하는 ‘해피 프라이데이’ 제도를 운용중이다. 주 40시간 근무를 유지하면서 초과근무를 모아 쓰는 방식이다. SK하이닉스는 초과근무를 모아 월 1회 금요일에 쓸 수 있다. 포스코, 삼성전자, LG전자도 비슷한 방식으로 시행 중이다.
김종진 소장은 “현 정부가 육아와 출산 장려 정책 중 하나로 육아휴직자 동료들에게 20만원 더 주는 정책을 내놨지만 그런다고 애를 더 낳지는 않는다”며 “일과 삶이 불균형하고, 유급노동시간, 잠자는 시간 등 근본적인 문제인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내용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인 연구위원은 “사회 재구조화에 따른 ‘노동시간 체제’ 변화에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이 공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며 “기후위기의 가속화,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에너지 휴가제의 효과 등 지금은 지속가능한 삶의 조건을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에서는 연장·야간·휴일 근무 등 임금 문제와 연계돼 근로시간 단축이 공론화됐다”며 “사회임금(복지혜택을 모두 현금으로 환산해 더한 수치)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워라벨과 노동자 개인의 자유를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사회복지 향상이 기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