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인상된 난방비에 강한 한파까지 찾아오면서 겨울철 ‘요금 폭탄’을 맞았다는 사연이 줄을 잇고 있다.
1월 난방비 고지서가 알람으로 속속 도착하면서 25일 소셜미디어(SNS) 엑스에는(X·옛 트위터)에서는 “33평 아파트 관리비가 평소 40만원대(난방비 외 관리비 30만원대 포함)가 나오는데 지난달에는 60만원 초반대가 나왔다. 오른 금액 대부분은 난방비 때문이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18평대 투룸에 살고 있는데 평소 난방비를 아낀다고 21도 이상을 안 켜고 다녔는데 20만원 초반대 금액이 나와 충격을 받았다”, “10평도 안되는 원룸에서 가스비만 10만원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흔히 사전적으로 알고 있는 난방비 인상 이유는 난방기기의 과도한 사용, 창문 틈새나 문 아래 틈새를 통해 실내 열이 빠져나가는 열 손실, 오래된 주택으로 인한 단열 부족 등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7월 주택 난방 사용요금이 9.8% 인상된 데에 따른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메가칼로리(Mcal)당 101.57원에서 112.32원 올렸다. 이는 4인 가구 기준 한달 평균 6000원가량이 인상된 셈이다.
●난방비 부담 증가에 서민들 아우성...무엇이 문제인가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원인이지만, 정부가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문제, 민자발전사 직수입 규제 미비 및 공익서비스 비용 지원책 등을 등한시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단순히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넘어 에너지 복지의 관점에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최근 들어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과 직결된 에너지 문제가 러·우 전쟁 발발과 동시에 국제 LNG 가격 급등으로 가스공사 민수용 원료비 미수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미수금은 13.88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가스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 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계속 쌓여가는 재정 부담은 결국 가스공사의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졌고, 그 피해는 요금폭탄 고지서로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유럽은 급등한 에너지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총 7,580억 유로(한화 약 1100조)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투입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횡재세’ 도입과 정부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가스 공동구매, 비축 의무 강화 등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정책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공익적 차원의 공급을 유지하면서도 그에 따른 비용과 책임을 충분히 분담하고 있지 않다. 이로 인해 가스공사와 한전은 미수금이 쌓이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
25일 국회에서는 ‘난방비폭탄방지법 법안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로 나선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가스공사 미수금 발생의 구조 및 해결방안을 제시하면서 직수입 문제와 공익서비스비용 지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구준모 기획실장은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할 때 수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직수입 물량을 늘리지만,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해 직수입에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면 직수입을 포기하면서 가스공사로부터 받은 물량을 공급받는다. 이런 선택적 구매 행위를 체리피킹(Cerry Picking)이라고 한다. 이런 직수입 민자발전사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따라 이들은 구조적으로 가스공사보다 싼 가격의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고 현주소를 설명했다.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의 한·일 천연가스 평균 수입가격을 비교에 따르면, 2022년 11월부터 2023년 10월 기간에 직수입 없이 가스공사의 평균 수입단가가 6.3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5년 일본과 수입가격이 비슷했지만 2022년에는 일본보다 비싼 가격에 천연가스를 수입했다. 즉, 2022년에는 우리나라의 직수입 천연가스를 포함한 평균 수입단가가 일본보다 약 20%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겨울철 난방비폭탄 방지법 추진...원인은 아는데 왜 해결되지 않나
이런 변화를 볼 때,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원료비 부담으로 전가되는 직수입 사업자들의 행태를 정부가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준모 실장은 “3대 직수입 민자발전사(SK E&S, GS EPS,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최근 5년간 누적이익이 5조원을 넘는다”며 “외부적 요인이나 우연적 수익 기회에 따른 이득을 본 민자발전사는 손실을 입은 가스공사에 재분배하는 것이 공평하다. 유럽처럼 횡재세를 적용한다면 2022~2023년 기준 약 3조 원의 횡재세를 걷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스 비축 의무화, 가스 공동 구매 등 정부의 에너지 공급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황규수(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난방비폭탄방지법에서 공익서비스 비용의 주체는 국가다. 정부는 개별 기업이나 직수입 민간기업의 사회 환원 강화, 가스도매사업자에 대한 재정 지원, 과도한 미수금 해소를 위한 정책 등을 통해 에너지 위기는 물론 국민생활 안정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형 공기업에 물가관리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를 비판했다. 정 교수는 “최근 정부는 취약계층 지원 책임을 가스공사에 떠넘기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시장형 공기업에 대한 모순적인 요금 통제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물가관리 정책의 책임은 국가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스공사의 미수금 누적에 따른 재정상 부담은 공익서비스 비용에 산입돼야 한다”며 “또한 LNG직수입 규제와 공익서비스 비용 마련을 위해 적정 요금수준 및 일반재원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가스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언론에서 언급되는 공기업의 ‘방만 경영’ 지적에 대해 다소 억울한 측면이 많다고 강조했다.
강경택 산업통상자원부 가스산업과 과장은 가스공사의 약 14조의 미수금에 대해 “공기업에 전가되는 여론과 달리, 단기간에 에너지 가격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크다”면서 “전기·가스 요금의 실무자로서 경험에 비추어 복잡한 전달 체계로 인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도 있고 에너지원 별도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승용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지부장은 “가스공사가 방만 운영을 하는 면도 있겠지만 모든 직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미수금 확대 등 에너지 정책의 모든 책임을 공기업의 잘못이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가스공사 직원들도 사람이다 보니 미수금 장기화로 인해 부정적인 여론에 무력감도 느끼고, 사업적인 면에서 국내외 신규 투자 지연으로 연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난방비폭탄방지법이 국민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한 제언을 이어갔다. 그는 “원칙 없는 연동제 미작동은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천연가스 직수입 시장의 제도적인 흠결을 보완과 동시에 소비자가 부당하게 추가 부담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이번 기회에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