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신비로움과 독립적인 성격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신진 작가 김명신은 모녀의 이야기를 고양이 작품으로 표현한다. 서로를 향한 배려와 애정은 고양이의 몸짓에 그대로 담겼고, 부드러운 붓 선은 모녀의 단단한 유대감을 표현한다. 고요한 화면 속에서 서로를 향한 따스함이 흐르고 작품 속 여백은 따스함이 머무를 자리로 변모한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심장 소리에 안정감을 찾는다. 모녀 관계에서 시작된 따뜻한 유대감은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김명신 작가는 고양이라는 동물을 매개로 우리 사회의 건강한 관계성을 새롭게 성찰한다. 이랜드 문화재단 공모전 당선작 전시회인 ‘고양이 세상’은 서울 금천구 이랜드빌딩 1층 스페이스 홀에서 전시(2025.01.31.~02.27)되고 있다.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1층의 넓은 공간은 커피숍을 겸한 갤러리다. 여기에서는 15기 공모 당선작들이 한 달씩 돌아가며 전시되고 있다.

◇김명신 작가의 당선작 ‘옹기종기’
김명신 작가의 당선작은 제품명 옹기종기(한지에 수목 채색 180x97cm, 2024) 작품이다. 수묵의 굵은 선이 큰 획으로 커다란 바나나 잎을 그렸는데 검은 먹이 진하다가 연해지며 선명한 녹색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중국 항저우에서 공부하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는 바나나 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이국적인 풍격이거든요. 출품작을 어떤 주제로 그릴지 고민하다가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니까 가장 먼저 바나나 나무가 떠올랐어요.”
수묵화는 사물의 외형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 먹색이라고 한다. 작가는 먹은 채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색이 있어서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먹은 한 긋 안에서도 층을 만들고 제일 진한 색부터 연한 색까지 완벽하게 나온 상태로 그어야 예쁘게 색이 나온다. 하나의 선 안에서 변화무쌍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동양화의 매력이다.
김명신 작가는 전통 동양화 재료를 쓰고 사의화(寫意畫)
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사의화법은 한국화에서 묘사 대상의 생긴 모습을 창작가의 의도에 따라 느낌을 강조하면서 그리는 그림이다. 반대로 공필(工筆) 화법은 작가가 표현하려는 대상물을 어느 한구석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꼼꼼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기법이다. 외형 묘사에 치중하여 그리는 직업 화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화법이 공필 화법이다.
작가는 처음부터 사의화법을 썼다. 회화영역에서 동물을 그리기에 최적화된 기법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작가는 이 화법을 쓰면서도 동물을 너무 세세하게 그려 사진 같은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붓의 선을 유지한다고 했다.
◇국내외 오픈 공모전에서 작품성 인정
이번 공모전은 내외국 작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오픈 공모전으로 열리며 경쟁이 치열해 실물 작품 심사까지 올라온 작가만 해도 90여 명이나 됐다. 김명신 작가는 그중 선정작 8개 중 하나의 작품으로 선정되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동양화를 그렸거든요. 점점 그림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다 다양한 재료를 구하기 힘들어서 중국으로 가게 됐죠. 중국에선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용기를 내고 가긴 했는데 정말 힘들었죠. 중국어로 된 고전 시를 풀이해서 써야 했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서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던 거 같아요.”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양이의 모습으로 작품에 담는다. 전시된 작품은 20여 점. 작품 속의 고양이들은 각자 다른 표정으로 나무 사이에서 뭔가를 응시하거나 바닥에 벌러덩 누워 세상 편한 자세로 뒹굴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짚은 채색의 수묵과 진한 녹색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작가는 너무 딱딱한 재료보다는 자연물을 구조적으로 표현해서 동물과 어우러지도록 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붓끝에서 떨어진 먹물이 번질 때 느끼는 ‘스릴’
작가는 동양화의 매력을 “붓끝에서 먹물이 떨어질 때 확 번지는 느낌을 컨트롤하는 스릴”이라고 표현했다. 반대로 가장 큰 어려움은 그림을 나무화판에 붙이는 작업인 배접이란다.
“배접은 정말 어려워요. 잘못하면 애써 완성한 그림을 못 쓰게 되니까요.”
작가가 ‘도파민 중독’에 관련된 책을 읽고 그렸다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작품은 이 물질이 우리 몸에서 작용하는 느낌을 고양이 10마리의 표정으로 담아냈다. 작품 속 고양이들은 각자 다른 표정과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작가는 전통적인 작품을 통해서도 새로운 뭔가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우리 사회의 단절된 관계를 치유하고 건강한 유대감을 만들어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 삭막하잖아요. 뭔가를 과시하고 부를 축적하려고 하고요. 인간과 다르게 동물들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돕거든요. 고양이를 통해서 그런 모습을 담아내는 관계성에 많이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는 작가는 직접 고양이를 키우면서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웃었다.
“고양이는 잠은 많이 자면서도 예민한 동물이잖아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좋을 때는 와서 안기고요. 그런 점은 저를 닮은 거 같아요. 고양이는 수직 구조를 좋아해서 늘 높은 곳을 좋아하는데 세로 구도를 많이 쓰는 동양화와도 많이 닮았죠.”
김명신 작가의 어머니는 수묵화 대표 작가인 류재춘이다. 수묵화는 한국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으로 주로 먹과 물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데, 류재춘 화가는 여기에 색을 더해 사실적인 묘사에 몽환적인 작가의 감정까지 담아낸다. 어머니의 벽이 너무 높았던 걸까? 작가는 산수화를 하지 않고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동양화를 그리는 선후배인 모녀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규칙들에 대해서는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구하는 시간도 자주 갖는다고 했다.

◇고양이의 삶을 사계절로 표현
전시회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4개의 작품은 사계절을 표현하고 있다. 먼저 작품 ‘본(한지에 수묵채색) 작품의 노란 개나리가 화사하다. 작가는 “개나리의 꽃말이 희망과 기대인데,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가 태어나 자라는 시기라서 ’희망‘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여름 작품은 파란 수국이 화사하게 피어있는데 수국의 꽃말은 변심이다. 이 시기 고양이는 사춘기가 시작된다. 또 목화로 표현한 가을 작품은 어머니의 사랑을, 겨울을 표현한 동백은 엄마 고양이와 함께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사계절 속에 고양이가 태어나 독립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인간관계에 조금 더 주목하려고 했어요.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공동 양육을 하거든요. 어미 고양이에게 어떤 일이 닥치면 다른 어미 고양이가 와서 아기 고양이를 돌보기도 하고요. 우리 사회도 이렇게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앞으로 더욱 다양한 동물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담아보려고 한다는 포부도 밝혔다. 웬만하면 사람들과 친숙한 동물부터 해서 점점 동물의 수를 늘려가겠다는 것이다.
“먹색으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작품을 표현할 수 있어요. 먹 자체가 검정이니까 하나의 색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푸른 기가 도는 먹도 있고, 갈색이 도는 먹도 있고, 붉은 기가 도는 먹도 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 변화를 주려고 여러 가지 먹을 바꿔서 쓰죠.”
◇도파민 중독 책을 읽고 그린 그림엔...
뒷배경을 붉게 칠한 작품은 작가가 ’도파민 중독‘이라는 책을 읽고 그린 그림이다. 작가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은 평상시 모습이 아닌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며 "역동적이고 격정적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하다 붉은색 배경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 작품 속 10마리의 고양이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표현했다.
“저와 티격태격하는 언니도 있고 모든 걸 외면하고 절대 끼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지와 모든 거를 관망하고 있는 어머니도 계시죠. 친구들도 있고요. 신기한 것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물감이 반짝거리잖아요. 동양화의 매력은 이렇게 우연이 합쳐져서 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근대 이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기법과 양식에 의해 그려진 동양화는 먹의 농담으로 표현하는 기법의 그림으로 여백의 미를 중요시한다. 이번 전시회를 본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작가는 진한 먹색에 녹색의 신선함을 담은 작품과 고양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신기하다고 말한 분들이 많았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어머니의 품에서 비롯된 관계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현대 사회의 병리적 관계 문제를 회복하는 단초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절된 관계를 치유하고 건강한 유대감이 만들어 내는 희망적인 미래를 함께 그려보기를 기대한다.
김명신 작가
-2025.2 이랜드 문화재단 15기 공모작가
-2025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재학 중)
-2023 中国美术学院졸업
-2020.8 烏合之卒(단체전)
<작가 노트>
동물은 아주 오랜 기간 인간의 친구였으며, 인간과 교류하고 공생해 왔다. 이는 그들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질서와 체계를 갖춰 살아감을 뜻한다. 인간 또한 그 유사성을 느낄 수 있었기에 작품에 동물을 등장시켜 은유적, 풍자적으로 인간 사회의 여러 모습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더 이상 자연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도 생존할 수단이 많아졌고, 풍요로워진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점이 수면에 드러난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며 반복되는 피로를 느낀 나는 자연스러움과 가장 자연스러운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고, 그 해답은 ‘동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수많은 동물 중 ‘고양이’는 개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사랑받는 동물이다. 작품 속 날렵하고 변화무쌍한 몸짓, 유연하고 탄탄한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동감은 동양미술에서 이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기준이 되는 육법의 첫 번째,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강조한다. 동양화 필법의 힘찬 선과 스며들고 번지는 먹색의 변화에 현대적인 색감을 가미한 고양이 그림에서 때론 삶을 이어가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감사를, 인간 사회와의 유사성을 찾으며 삶의 목적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