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흡연율 감소를 명분으로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담뱃값을 올린다면 '서민 경제'를 살리는 일 일까, 죽이는 일 일까.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및 부자 감세 정책이 2년 반 동안 적용되면서 약 84조(지난해 기준 적자 규모 100억대 예상)에 달하는 세수 펑크가 국민과 지자체에 전가되고 있다. ‘12.3 계엄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나라살림을 통째로 바닥으로 추락시켜 버렸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세수 펑크에 대한 빚은 고스란히 서민경제의 암세포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국세수입 재추계에 따르면, 2024년 예산에서 예상한 국세수입 367조3,000억원보다 29조6,000억원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해마다 수십조원의 세수펑크가 나는 상황에서 추경뿐 아니라 주세 및 담뱃세의 개별소비세 인상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담배와 술에 대한 ‘교정세’(사람들의 행태를 바꾸기 위해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조세) 인상을 염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민간에서 담뱃세 및 주세 개편 관련 논의를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신중히 접근하는 모양새다.

●10년만에 인상 조짐...“세수펑크 메우는 카드로 담뱃값 만한 게 없지”
10년간 내리막을 걷던 흡연율이 최근 들어 다시 올라갔다. 지난해 말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제9기 2차 연도(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남성 흡연율은 32.4%로 1년 전보다 2.4%포인트 증가했다. 여성 흡연율도 6.3%로 1.3%포인트 증가했다. 전자담배를 포함한 담배제품 사용률은 남성 38.9%, 여성 8.3%까지 올랐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담뱃값이 아직도 너무 싸서 그렇다”, “1갑에 1만원에 팔면 흡연율이 확 내려갈 것”, “담뱃값을 올린다고 담배 피울 사람이 안 피우겠냐?”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담뱃값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는 싼 편이다. OECD 평균으로 봐도 절반 수준이 그치고 있다.
담배는 국가마다 제조사가 다양하고 제품별로 가격 차이가 있다. 비교 통계 사이트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필립 모리스 사의 ‘말보로’ 한 갑(20개비)의 우리나라 가격은 환율 1,454원 기준 3.12달러(한화 약 4,500원)로, 집계된 99개국 중 70위다.
우리나라에 비해 담뱃값이 비싼 국가 1위부터 5위는 호주(28.30달러·4만1천여원), 뉴질랜드(22.58달러·3만2천여원), 영국(17.43달러·2만5천여원), 아일랜드(17.09달러·2만4천여원), 캐나다(13.87달러·2만여원)였다. 미국은 주마다 가격이 다르지만, 평균 10달러(1만4천500여원)로 우리나라보다는 약 3배 비싼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담뱃값은 각국의 물가 수준이 같다고 가정해 봐도 하위권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37개국의 평균값인 8.54달러(1만2천여원)에도 크게 못 미친다.
이처럼 같은 담배라도 국가별로 가격이 차이 나는 이유는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는 개별소비세(594원)와 부가가치세(409원), 담배소비세(1,007원), 지방교육세(443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841원) 등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 3,323원으로 73.8%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담뱃값은 담배사업법에 따라 제조업자나 수입판매업자가 판매가격을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시·도지사에게 신고한 뒤 공고하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10년 전에 박근혜 정부는 금연 확대와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인상 당시만 해도 “담뱃값을 이렇게 한꺼번에 인상한 건 서민경제로 보면 있을 수 없는 굉장한 횡포”라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재벌과 부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간접세는 내리고 직접세를 적절하게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담뱃값 인상은 금연으로 이어지나...세수 확보와 금연의 상호관계
공중보건을 책임지는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정책 중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세금 인상, 즉 담뱃값 인상을 줄곧 꼽아왔다. 우리나라의 현재 담뱃세(73.8%)는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이 권장하는 담뱃세 비율(75% 이상)에 근접한 수준이다.
한국의 성인 흡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6%) 수준이다. 흡연율을 확 떨어뜨린, 한국의 금연정책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담배 판매 마케팅, 신종담배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각심이 부족한 실태라고 지적한다.
WHO의 ‘담뱃세 정책 및 관리에 관한 기술 매뉴얼’(2021)에 따르면, 담뱃값이 10% 증가하면 고소득 국가의 담배 소비량은 약 4% 감소하고,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는 약 5% 감소하는 효과를 보인다.
브라질, 터키, 필리핀은 21세기 들어 지속적이고 강력한 담뱃세 인상 정책을 시행해 담배 소비 감소와 세수 증가를 동시에 이뤄냈다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콜롬비아는 2017년 담뱃세를 대폭 인상했는데, 인상 전후를 비교하면 2년 만에 판매량은 33.7% 감소했고, 세수는 97.9% 늘었다.
다만 담뱃값과 흡연율은 상관관계가 있을 뿐, 그 자체로 효과를 내는 인과관계는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애당초 세계 흡연율은 2000년 49.3%에서 2020년 36.7%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34.3%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되는 등 흡연율 감소는 세계적 추세일 뿐, 가격 인상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김현숙 대한금연학회 회장은 가장 효과적인 금연 정책으로 ‘담뱃값 인상’을 꼽았다. 김 회장은 “국내 담뱃값은 지난 2015년 4500원으로 2000원 오른 뒤 10년째 유지되고 있다”며 “담뱃값 인상이 추진되면 적어도 OECD 평균 담뱃값 8000원~1만 원 수준이어야 한다”고 전망했다.
김관욱 덕성여대 인류학과 교수(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다른 나라 기준에 맞춰 현행보다 강력한 금연정책을 추진한다면 담배가격을 8,000원~1만원까지 인상해야 흡연의 진입장벽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며 “누구나 알듯이 담배는 세수 확보원이다. 보건당국이 담뱃값 인상을 통한 금연정책을 추진하고자 해도, 가격을 너무 올리면 담배 판매량이 떨어질 것이기에 재정당국과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담배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세수부족 때문에 담뱃값 인상 카드를 적용한다며 따를 수밖에 없다. 아직은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담뱃값이 오르는만큼 세금도 오르기 때문에 유동성을 가지고 대처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