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 대만 등이 인재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경제안보를 위한 기술 확보와 미국 규제 등으로 핵심 장비를 확보하지 못하자 첨단 산업의 인재 빼가기로 맞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화웨이는 독일의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독일 광학업체 자이스 직원에 이직을 제안했다. 최대 3배 급여를 제안하며 헤드헌터를 통해 면접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까지 제안에 응한 직원은 없었으나 기술 유출을 우려한 독일 당국은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핵심 인재유출도 심각하다. 지난달 19일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핵심 방산인력과 노하우가 대거 대만으로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1,2차 하청업체도 대만의 잠수함 건조 작업에 참여하면서 대만은 단 5년 만에 잠수함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 K방산 인력과 노하우 유출이 성공 요인이라는게 방산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뿐 아니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는 반도체와 배터리·디스플레이도 인력유출로 관련 기술이 해외로 세고 있다.
개인을 통한 기술유출에 그쳤던 방법이 이제는 인력유출을 위해 헤드헌팅 회사를 차리고, 나아가 국내에 버젖이 R&D센터나 관련 회사를 만들어 국가핵심기술을 빼돌리는 대담한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기술팀 부장이었던 김씨는 국내에 컨설팅업체를 설립해 반도체 핵심 인력을 중국 청두가오전에 이직 알선했다. 이를 통해 국가핵심기술인 삼성전자 반도체 20나노급 D램 공정 자료가 넘어가 4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배터리업체 에스볼트는 국내에 지사를 설립해 주요 전기차에 들어가는 삼성SDI·SK온 배터리 관련 전현직 임직원 5명을 통해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올해 초 검찰에 넘겨졌다. 이들은 배터리 업계 주관 협회에 참석해 국내 대기업의 'K-배터리' 연구원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법인 지식일자리포럼 손승우 회장은 국내 인력 유출에 대해 “중국 기업 등이 국내에 R&D 센터 또는 기업을 설립하고 국내 관련 분야 핵심인력을 스타우트해서 기술개발을 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기술유출을 목적으로 위장기업을 설립하는 경우로 국내 인력을 해외로 유출하려는 기존 수범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장성기차의 자회사 에스볼트나 다른 중국 디스플레이 구동 반도체 설계기업 등이 국내 IT 기업이 밀집한 판교, 정자 등 성남 일대에 연구센터를 설치하고 고액연봉과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핵심인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반도체, 바이오, 디스플레이, AI 및 소부장 업체를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판교 정자 등 IT 기업이 밀접 되어 있는 산업지구와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에 대한 산업스파이 활동에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하고 기업 입장에선 핵심인력이 외국 기업의 제안이 있을 경우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컨설팅을 통한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외국의 인재 채용을 대리하는 경우 대리인 등록과 신고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더불어 “주요국과 같이 국내와 외국계 사모펀드를 이용한 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투자에 대한 국가안보 심사를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와 더불어 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산업 스파이법을 제정해 이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H 기관의 한 전문가는 "각국이 산업 스파이라는 개념으로 경제안보법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핵심 기술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 연구자산, 데이터, 인적 자원 및 활동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며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산업 스파이에 간첩죄를 적용해 강력처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에 준하는 처벌 기준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 산업 기술자에 대한 지원이나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반도체, 방산 등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퇴직 후 갈 곳이 없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김민배 교수는 애사심과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최첨단 기술 인력을 지킬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강한 처벌과 함께 파격적인 대우가 추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임직원을 특정하여 파격적인 대우로 종신 고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퇴직한 임직원들의 노하우를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동시에 양자와 인공지능 등 최고의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 인력의 해외 전직을 막고, 최고급 해외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과 주거, 교육과 복지, 연구 환경과 자금 등에 획기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요국이 최첨단 기술의 개발과 보호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기술이 경제고, 국가안보라는 점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반도체가 없어도 세계가 우리를 대우해 줄까“라고 반문하며 ”최첨단 양자 기술이나 인공지능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나. 첨단 기술이 없으면 기업도 일자리도 없다는 현실을 직시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