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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우리는 KTX 승무원입니다”... 해고부터 복직까지

2006년 정규직 전환 요구하다 해고
단식·고공농성·법정투쟁 12년
‘승무원으로 복귀’는 미지수

 

[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절규가 멈췄다. 지난 7월21일 한국철도노동조합과 코레일은 5차례 교섭 과정을 거쳐 KTX 해고 승무원 18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데 합의했다. 2006월 5월19일 정규직 전환과 코레일 본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다 280명이 해고된 지 12년만이었다.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시속 300㎞로 서울에서 부산을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초고속 시대’가 열렸지만, 비정규직 해고 승무원들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정규직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아주 느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필요했다. 그 지난한 투쟁의 세월을 톺아봤다.

 

‘지상의 스튜어디스’ 탄생 그리고 해고

 

2004년 1월, 경부고속철도 개통을 3개월 앞두고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은 KTX 여승무원을 공개 모집했다. 1기 351명 모집에 젊은 여성 4,600여명이 몰렸다. 13대 1의 높은 경쟁률이었다. 이듬해 2월 2기 모집에는 50명 채용에 6,791명이 지원해 136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채용 공고는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입사 당시 이들은 철도청 산하 홍익회 소속의 계약직 신분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채용 당시 1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다는 철도청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은 1년 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철도청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 이름을 바꾸고(2005년 1월) 자신들이 했던 말도 바꾸었다. 2005년 여승무원들은 홍익회에서 분리된 한국철도유통(2007년 코레일유통으로 사명 변경) 소속이 됐다. 그해 11월 코레일은 애초 약속했던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KTX 관광레저’(현 코레일관광개발)라는 자회사와 계약을 맺으라고 요구했다. 고용 기간 2년이 넘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당시 비정규직법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6년 3월1일부터 철도노조가 현장인력 충원과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이 파업에서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목소리도 함께 터져 나왔다. 파업은 ‘명분 없는 파업’이라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나흘만에 종료됐다. 하지만 여승무원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싸웠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비정규직 매년 위탁업체(홍익회→한국철도유통→KTX관광레저)만 바뀌는 불안한 비정규직 신분, 한 달 130~150만원에 불과한 월급, 불합리한 현실을 바꿔야 했다.

 

2006년 5월21일 철도유통은 KTX관광레저로 이적을 거부한 여승무원 280명은 정리해고 했다. 이때부터 이들은 ‘지상의 스튜어디스’ 대신 ‘KTX 해고 여승무원’이 됐다.

 

“우리는 KTX 해고 여승무원입니다”


해고됐지만, 파업은 계속 됐다. 해고 여승무원들은 거리로 나섰다.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2006년 9월 해고 여승무원들은 비정규직과 여성에 대한 이중 차별을 상징하는 쇠사슬을 감고 국회를 향해 행진했지만 경찰에 막혔다. 이듬해 7월에는 서울역에서 22일간 단식 투쟁을 벌였고, 2008년 8월 서울역에 있는 40m 높이 조명 철탑에 올라 20여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 사이 투쟁하는 여승무원들의 숫자는 90명 남짓으로 줄었다. 이들은 KTX가 출발하는 서울역 주위를 계속 맴돌며 정규직 고용이라는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정부와 코레일은 묵묵부답이었다.

 

코레일의 침묵 속에 해고 여승무원들은 결국 투쟁 장소를 법정으로 바꾸어야 했다. 34명의 해고 여승무원들은 2008년 11월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보전과 임금 지급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고용할 때 코레일이 하지 않았던 말들이(默) 실제로 눈에 보이는(示) 고용관계로 성립됐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해고 여승무원들은 사실상 코레일이 업무를 지시하고 관리·감독한 주체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코레일은 코레일유통과 승객서비스업 위탁협약을 맺었고, 코레일유통이 독립적으로 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하고 관리·감독했기 때문에 승무원들과의 근로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2010년 8월26일.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재판장 최승욱)는 해고여승무원들이 코레일의 ‘묵시적 근로자’라고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서는 ‘위탁’, ‘도급’, ‘외주화’, ‘위장도급’이라는 용어들이 뒤엉켰지만 결론은 명확했다. 여승무원들이 승소했다. 재판부는 코레일유통이 위탁협약을 통해 코레일에 KTX 여승무원들로 하여금 승객서비스를 제공하게 했지만 사업경영의 독립성이 없는 노무대행기관에 불과하다고 봤다.

 

오히려 코레일과 여승무원들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수준과 근로조건 등을 정했다며,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존재를 인정했다. 근로계약이 인정되면서 해고의 정당성도 사라졌다. 재판부는 복직 때까지 밀린 임금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코레일은 항소했지만 2011년 8월 2심 재판부도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물론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위장도급까지 인정했다. 재판부는 승객서비스 업무 중 KTX 여승무원의 업무를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의 업무와 분리해 이를 도급형식으로 위탁한 점을 지적했다. 즉 여승무원의 업무영역(승객서비스)과 열차팀장의 업무 영역(안전)이 혼재돼 있어 이를 분리해 도급계약을 맺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기나긴 싸움의 종착역이 보이는 듯 했다. 코레일은 상고했지만 1심과 2심에서 승소한 재판 결과가 대법원에서 뒤집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법원 패소…그리고 3년

 

대법원은 2심 판결 후 5년이 지난 2016년 2월에서야 선고기일을 잡았다. 그 사이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2009년 119명의 해고 여승무원들이 제기한 별도의 소송이 2심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1심은 승소) 당시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정종관)는 “원고들이 내세우는 사실만으로는 KTX 여승무원과 코레일 사이가 종속적인 관계에 있어 실질적으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지급받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로 보기 어렵다”며 “철도유통이 KTX 여승무원을 고용한 뒤 코레일의 지휘와 명령을 받아 근로에 종사하게 한 근로자파견관계로도 보기 어렵다”고 코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재판부가 각각 다른 결론을 내렸다.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2015년 2월26일 대법원(주심 고영한)은 해고 여승무원 34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한 원심 결정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로부터 상당한 지휘·명령을 받은 점 ▲코레일 소속열차 팀장과 같은 공간에서 혼재된 업무를 수행한 점 ▲코레일이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채용과 교육 훈련, 임금항목 구성, 징계 등에도 관여한 점 등 1심과 2심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로 인정한 근거들은 모두 인정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결론의 방향을 정반대로 틀어버렸다. 대법원은 “코레일유통 소속인 KTX 여승무원과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의 업무내용이 ‘승객서비스’와 ‘안전’으로 구분돼 있고, 화재진압 및 승객 대피 업무는 이례적인 상황에 필요한 조치일 뿐 여승무원의 고유 업무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철도유통이 코레일의 자회사라는 사실은 위탁협약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사유가 될 수 있지만 각자의 사업만큼은 코레일과 독립적으로 이뤄졌고, 인사 등 노무관리도 코레일유통이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판결했다.

 

8년 가까운 법정 투쟁이 A4용지 4쪽 5,300자의 대법원 판결문으로 허무하게 끝났다. 대법원 판결은 해고 승무원들이 돌아갈 직장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뿐만 아니라 승무원들은1·2심 승소로 코레일로부터 받은 임금과 소송비용 8,640만원을 모두 반환해야 했다. 여기에 이자가 붙어 토해내야 할 돈은 1인당 1억원이 넘었다. 해고 승무원들은 순식간에 1억원이 넘는 빚을 진 채무자가 됐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20여일 뒤인 2015년 3월16일 해고 여승무
원 박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 살 아이의 엄마였던 박 씨는 자신의 빚이 아이에게 상속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람 죽이는 판결’이라는 절규 속에 2015년 7월24일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을 열고 해고 여승무원들의 패소를 최종확정했다.

 

이 판결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가 선정한 그해 ‘최악의 걸림돌 판결’ 중 하나가 됐다. 민변은 “불법파견 및 근로자 지위 인정 여부에 있어서 상반된 입장을 보였던 원심의 판결들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으로 정리해 결국 사용자의 손을 들어줬다”며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간접고용의 문제를 더욱 확산시키고 불법적 파견에 면죄부를 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송당사자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최종 패소 3년 후인 2018년 5월25일. 상황이 급반전됐다.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설치를 두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 문건 속에서 ‘KTX 승무원 사건’이라는 문구가 발견됐다.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설득 방안’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KTX 여승무원 해고소송을 사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해온 사례 중 하나로 적시했다. 당시 대법원 차원에서 재판에 개입했는지, 아니면 대통령 입맛에 맞는 재판들을 판결 이후 따로 모아 놓은 건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대법원이 ‘사람이 죽은 판결’을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밖에 여기지 않은 건 확실해 보였다. 대법원이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1심과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배경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해고 여승무원들은 5월30일 대법원장 비서실장과의 면담에서 소송의 직권 재심을 요청했다.

 

 

12년 만에 복직, ‘승무직’ 복귀는 아직 미지수


2018년 7월21일. 코레일과 철도노조는 2006년 철도유통에서 정리 해고된 여승무원 280명 중 180명에 대한 복직에 합의했다. 2006년 5월 해고 이후 12년 만이었다. 노사는 코레일 자회사 취업 경력이 있는 승무원을 제외하고,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승무원을 특별채용 형식으로 복직시키기로 했다. 지난 2월 취임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노사 간담회에서 KTX 해고 승무원 문제의 해결을 약속하며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 가운데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공개가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다만 복직 승무원들은 곧바로 KTX 승무직을 맡는 것이 아니다. 코레일 소속 역무직으로 배치될 예정이다. KTX 승무원은 여전히 코레일이 아니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이기 때문이다. 안전업무는 코레일이, 관광·유통·승무업 등은 코레일관광개발이 맡고 있다. 코레일의 KTX 승무원 직접 고용이 향후 또 다른 논쟁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7월23일 T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코레일에는 여승무원이라는 직종은 없다”며 “지금(여승무원이) 안전업무를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논란이 여전하다. 그 부분은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정부 부처와 계열사의 기능조정 문제들도 같이 봐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여승무원들은 승무업무에 안전업무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코레일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놓은 상태다.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공공부문 2단계 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보면 생명·안전업무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도록 돼있다. 국민의 생명 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에 비정규직을 고용한다면 업무 집중도와 책임의식 저하로 사고 발생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이에 맞춰 코레일 노·사·전문가 중앙협의기구는 6월 안전업무 용역노동자 1,432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승무업무를 포함해 자회사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문제는 결론짓지 못했다. 전문가들이 8월 중순쯤 조정안을 내놓으면 노사가 연내에 합의한다는 계획이다. 만일 코레일이 코레일개발로부터 승무업무를 가져오면 코레일이 여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여승무원들은 정부가 자신들에게 붙였던 ‘해고’라는 글자를 12년 만에 떼어냈다. ‘KTX 승무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열차에 오를 때까지는 얼마나 또 시간이 지나야 할지 두고 볼 일이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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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 "친일파 백선엽, 현충원 아닌 야스쿠니 신사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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