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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한민국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나올 수 있을까?

 

지난 14일에 수능시험이 끝났다. 수시의 확대로 수능의 의미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개인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수능은 대한민국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다. 그래서 긴장된 마음에 날씨까지 추워지면 ‘수능한파’라는 독특한 용어를 생산해냈다. 다행히 올해는 포근한 날씨를 보여, 예년 같지 않다는 소리가 나왔다.

 

올해 대학입시의 특징은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서 재수생 등 N수생의 수능응시가 21년 만에 가장 높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0년~2023년에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정시모집에 합격한 학생 중 재수생은 61.2%를 차지한 데 비해 고3 재학생은 36%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전국 의대 정시모집 합격자 중 재수생은 77.5%에 달했으며, 이중 삼수 이상은 32.5%에 달하는 등 의대 쏠림 현상도 재수·삼수생을 증가시키고 있다. 올해 의대 정원이 1500여 명 증원됨에 따라 N수생들이 더욱 늘어났다.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한국사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안정된 삶을 위해 의대로 몰려들고 있다.

 

◇교육, 대한민국을 비약시킨 힘

 

대한민국이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의 문턱까지 진입하게 된 데는 교육의 힘이 컸다. 해방 후에 불완전하게나마 토지개혁이 진행되자, 대부분 소작료로 지불됐던 잉여를 자식들의 교육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회질서들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교육은 신분 상승을 위한 유력한 수단이 됐다. 더구나 유학의 전통으로 공부에 대한 남다른 선망이 있던 한국 사회의 가정들은 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1945년 해방 후 남한의 문맹율은 77.7%에 달했지만 5·60년대 교육열과 함께 탈문맹 정책으로 1970년에는 7%로 급감했다.

 

익히기 쉬운 한글의 장점과 함께 산업화를 하려는 국가 정책, 민초들의 교육열이 합쳐지면서 엄청난 속도로 문맹은 낮아졌다. 이렇게 높아진 교육 수준이 한국사회를 산업화, 민주화로 이끌었다. 7·80년대는 노력해서 공부하면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가능한 시대였고, 또한 그런 사례들을 이웃에서 빈번하게 접할 수 있었다. 높아진 교육 수준과 함께 대한민국은 단시간에, 제3세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의 문턱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역으로 교육이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교육의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층 대물림의 통로’로 변질되고 있다.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고등학생의 사교육비는 전국 평균 월 74만원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월 98만8000원으로 광역지자체 중에서 가장 많았다. 2·3위를 기록한 경기(79만6000원)·인천(75만1000원)과도 20만원이 넘는 차이를 보였으며,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적은 곳은 전남(51만8000원)으로 서울의 52.5%에 불과했다.

 

지역뿐 아니라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도 3.6배에 달했다.

 

월 평균소득이 800만원 이상인 가구는 학생 1인당 사교육비로 월 67만1000원을 지출하는데 비해 월 소득 3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는 월 18만3000에 불과했다. 지난 70년 한국사회를 역동적으로 이끌었던 교육이 이제는 계층질서를 공고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점점 한국사회도 역동성과 통합성이 사라지고 있다.

 

◇복잡성의 미래,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개발도상국의 과제는 선진국의 따라잡는 일이었기에 비교적 미션과 과제는 분명했다.

 

선진국을 잘 복사해서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환경과 조건이 달라 부작용도 있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선진국의 모방하고 따라잡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선진국에 진입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그와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와 같은 나라들이 70년대 선진국의 문턱까지 진입했지만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것은, 사회를 이끌 수 있는 리더와 국민들의 역량을 키워내지 못한 탓이 크다.

 

세계는 복잡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앞으로 더욱 복잡해지고 불확실해지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위험에 대처하고 국민 개개인들의 역량을 최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유럽의 교육이 그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북유럽은 영유아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국가가 교육을 무료로 책임지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역량을 최대한 계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들의 역량을 최대화하려는 교육철학과 정책이 오늘날의 역동적인 북유럽 복지국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북유럽은 인구 500~1천만 안팎의 작은 나라들이지만, 그런 교육철학과 정책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동시에 안정적인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스웨덴의 15살 여중생 ‘그레타 툰베리’는 지구환경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 대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기후변화로 지구의 미래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기성세대의 대응과 태도는 안이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툰베리의 말과 행동은 전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세계 정상들을 질타했으며, 북유럽 환경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미진한 정책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2019년 타임즈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으며, 노벨평화상 후보 1순위로 등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툰베리의 말과 행동은 125개국 2천여 도시에서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전세계적 물결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교육부터 근본적이고 혁신적 전환을!

 

만약 대한민국에서 그레타 툰베리같은 여중생이 나올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여중생들이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사회가 용인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그런 대담한 발언과 과감한 행동을 하기는 힘들다. 지금처럼 교육을 입신양명, 출세의 도구 정도로 생각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그레타 툰베리는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 대한민국은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상태로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6·70년대 교육이 대한민국을 비약시킨 계기를 제공했다면, 지금의 교육은 추락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르크스는 역사에 대해 “역사는 되풀이 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고 했다. 제대로 성찰을 하지 않으면 희극은 언제든지 비극으로, 제대로 성찰한다면 비극은 희극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미래는 얼마만큼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계획하느냐에 달려 있다. 핵심은 미래를 계획하고, 미래세대를 키워낼 교육에 있다. 15살 청소년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해도 지지하고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북유럽이 이미 좋은 모델을 만들어놨으니 우리 실정에 맞춰 적절하게 바꿔서 사용하면 된다. 대한민국 교육부터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전환을 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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