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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선아 패션평론가의 '명품의 러브스토리'

세계에서 가장 트렌드가 앞선다는 패션 선진국인 프랑스나 이태리와도 견줄 만큼 우리 나라 국민들의 소비심리와 유행 추구 성향은 뛰어나다. 명품 소비 스타일 역시 유럽 사람들과 똑같은 브랜드를 선호하고 명품의 정의에 대해서도 각양각색의 이론들이 난무해, 가격이 비싼 것이 일단 명품이라는 인식까지 등장했다. 급기야 명품이라는 단어가 빠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동차, 아파트, 옷, 가구, 쥬얼리, 심지어 먹는 것까지 명품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명품이 아니면 사지도 팔지도 않는 시대.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명품일까?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불어 닥친 명품 열풍은 뉴스에도 자주 등장 할 정도로 핫 이슈였다. 샤넬의 퀼팅백은 시어머님들이, 루이비통 또는 프라다 가방과 까르띠에 패물, 불가리 시계는 젊은 며느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혼수품이 됐다. 또 펜디의 억대를 호가하는 모피코트는 재벌가에 시집가는 며느리들이 시댁에 드리는 뇌물 수준(?)이고, 예비 신랑에게는 구치의 스니커즈나 몽블랑만년필, 혹은 듀퐁 라이터를 보내면 썩 괜찮은 집안의 며느리 혹은 사윗감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한술 더 떠 백화점 명품 바이어들에게 전해 듣는 명품 관련 에피소드는 페라가모의 벨트와 지갑은 고급 룸 살롱 마담이 VIP손님 관리용으로 대량으로 사갔다고 하고, 불가리의 명품 시계는 어느 기업 회장님이 사모님용과 애인용 두 가지를 똑같은 모델로 사갔다가 사모님이 바꾸러 오는 바람에 결국 회장님의 은밀한 사생활이 들통나 곤욕을 겪었다는 등 웃기지만 그냥 웃어 넘기기에는 뭔가 껄쩍지근한(?) 내용들이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명품관련 해프닝을 듣다 보면 바다 건너 멀리까지 온 이들 브랜드들이 원래의 탄생 취지와는 맞지 않게 이류, 삼류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진짜 우리가 명품이 무언지나 알고 소비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루이비통은 서울 시내 주요 거리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수많은 여성들이 짝퉁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3초마다 눈에 띠어 3초 백의 별명으로 불린다. 샤넬의 핸드백은 2백만 원대의 가격을 유지하다, 환율이 오른데다 브랜드 가치도 올리려고 했는지 5백만 원대로 급상승했다. 여기에는 한국과 일본 소비자들의 열광도 한몫 했다는 후문이다. 비싸면 사지 않아도 되는데 트레이딩 업 해서라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여성들의 심리인지라, 두 배 가까이 폭등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아이템을 구해달라는 문의가 수도 없이 온다는 백화점 관계자들의 전언이 이어졌다.

 


지난해부터는 명품 열풍이 백이나 신발뿐 아니라 아웃도어 브랜드로 번져나가 덕다운(오리털)에 이어 100만 원대의 몽클레어나 캐나다 구스다운(거위털)점퍼를 서로 입겠다고 예약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여져 유럽의 아웃도어 명품 브랜드들은 한국 시장을 가장 중요한 소비국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품은 왕족과 귀족들에 납품하던 보석 세공업자, 승마를 위한 마구업자, 여행가방업자, 옷을 맞춰 입던 커스텀테일러들이 각각 발전해 가문을 이루고 이를 패밀리 비즈니스화 세계적인 기업으로 탄생한 회사의 제품들이다. 압축적인 정의를 내리자면 명품은 한마디로 1,2차 세계대전을 거친 브랜드들이다. 역사를 담고 있고 이야기가 있으며,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정체성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는 브랜드가 바로 명품인 것이다. 우리가 면세점이나 명품관에서 만나는 모든 제품을 다 명품이라고 착각하기 쉽상이지만 정확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명품이 바로 이야기, 그중에서도 사람간의 소통과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명품을 빛나게 하는 진정한 사랑 이야기


1936년 12월, 영국 왕실의 왕위계승자 윈저공(1894~1972)은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자이면서 조지 5세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에드워드 8세로 10개월의 재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5년간 은밀히 만남을 이어온 그의 애인, 심슨부인(1896~1986년)과의 결혼이 수상과 반대파의 압력으로 무산되자 영국 전역으로 생중계 되는 BBC를 통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과 도움없이는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 나갈 수가 없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영국 왕의 신분과 모든 권리를 동생인 조지 6세에게 전격 이양하고, 그날 밤으로 영국 해군의 구축함에 심슨부인과 함께 몸을 싣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평생 죽는 순간까지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지도, 축복 받는 결혼식을 올리지도 못한 채(그들의 결혼식에는 18명의 하객만이 참석했다) 심슨 부인의 곁에서 즐거우나, 슬프나, 미우나, 고우나, 그녀와 함께 생을 마쳤던 윈저 공은 ‘사랑을 위해 왕위까지 버린 세기의 로맨티스트’란 칭호를 얻으며 뭇 여성들의 심금을 울린 한 남자로 기억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시사하는 점은 윈저공의 사랑에 대한 진정성이다. 순수하게 부인을 죽는 날까지 사랑했던 윈저 공과는 반대로 심슨 부인은 젊었을 시절부터 잘 나가던 사교계의 여성이었다.

윈저 공을 만나기 이전부터 한번의 이혼경력이 있었고 1931년 윈저 공과 사랑에 빠질 당시에도 두 번째 결혼생활을 하던 터였다. 미국여성, 평민, 게다가 두 번의 이혼 경력, 바로 이러한 점이 철저하게 보수적인 영국 왕실이 그녀의 왕후자격을 반대한 이유였다.

 

그러나 윈저공 스스로가 심슨부인의 모든 장애물을 스스로 물리치고 문제로 삼지 않을 만큼 그녀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으로 사랑의 완결판을 만들었으니 ‘세기의 로맨스’라고 불릴만 하다.

 

사람들은 심슨부인이 윈저공의 마음을 훔친 이유가 혹시 빼어난 미모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녀는 예쁜 얼굴이 아니었다. 심슨부인 자신도 그러한 단점을 알았는지 옷 잘 입는 것으로 매력을 승화시켜 패션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심슨부인은 늘 “남편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남보다 멋진 옷을 입는 것뿐입니다. 방 안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면 함께 있는 남편이 자부심을 느낄 거예요. 그게 저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하곤 했다. 당시 결혼생활 내내 파리에 살면서 지방시, 이브 생 로랑, 발렌시아가, 스키아파렐리, 자크 파투 등 당대 최고의 패션디자이너들의 의상을 즐겨 입었던 그녀는 날씬하고 가느다란 허리를 강조하는 워스프웨이스티드(Wasp Waisted) 스타일의 투피스 정장을 즐겨 입었다.


심슨은 윈저공을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푸른 드레스를 입었던 것을 상기하면서 웨딩드레스로서 역시 푸른색을, 그리고 윈저공의 장례식 때도 검은 색 상복 위에 푸른 숄을 걸치고 나왔으며 1986년, 생을 마감 할 때도 푸른색 드레스 수의를 입혀달라는 유언을 남겨 블루컬러를 사랑의 색으로 승화시키고 ‘심슨블루’란 컬러코드를 남겼다. 윈저공은 옷 잘 입는 부인이 그 아름다움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생전에 많은 양의 보석을 종종 선물하곤 했는데 이들 때문에 가장 유명해진 보석 하우스가 바로 ‘까르띠에’와 ‘반 클림프아펠’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맹세한 반지, 까르띠에의 링에 각자의 이름 에드워드의 E와 심슨부인의 이름, 월리스의 W를 교환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이터니티 반지’이다.

 

윈저공이 최고의 보석이라고 칭호를 내린 이후 까르띠에는 승승장구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고 이터터티 반지는 죽을 때까지 사랑이 변치 않는 정표로써 요즘 세대에도 결혼예물로 선택되고 있다. 윈저 공이 심슨부인에게 사주었던 수많은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 목걸이, 십자가가 달린 참 팔찌, 플라멩고 브로치와 까르띠에의 아이콘인 표범주얼리들은 아직까지 사랑의 표시로 인식되고 있다. 이 두 사람 덕분에 까르띠에는 “우리는 쥬얼리를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논하는 브랜드입니다”라는 광고까지 내걸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쥬얼리 하우스 ‘반클림프아펠’은 심슨부인이 아이디어를 내서 더욱 유명해진 명품이다. 윈저공이 심슨에게 선물한 ‘자레띠에르브레이슬릿’과 40살 생일 선물로 준 ‘타이 목걸이’는 반클리프아펠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얼리컬렉터로도 유명했던 심슨이 직접 디자인에 관여해 지퍼 스타일의 목걸이를 잠그면 팔찌로도 사용 가능한 새롭고 혁신적인 반클림프 스타일을 탄생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윈저공 역시 스타일 아이콘으로 영국 신사답게 넥타이 묶는 법을 그만의 방법으로 새로 고안해 내, 네 번 돌려 묶는 ‘윈저노트’라는 넥타이와 각이 벌어진 와이드 스프레드 드레스 컬러 셔츠, 우리가 흔히들 승마바지라고 부르는 플러스 포 트라우저즈(Plus-Four-Trousers)를 골프복으로, 노동계급이나 입는 스웨터를 드레스셔츠와 넥타이 위에 매치 시킨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또한 아가일 무늬 스웨터의 효시로서 현대에 와서 클래식 정장을 논할 때 윈저공의 이름이 빠질 수 없을 정도로 지금으로 치면 스타일의 고수이다.


세계 최고의 신사복 브랜드가 모여 있는 새빌로(Savile Row)거리와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해 치수를 재러 오고 영국에서 만든 다음 양복을 보내주는 맞춤 양복 시스템, 비스포크트립( bespoke Trip)이 윈저공의 이름을 고객 명단 제일 윗줄에 걸어 놓고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으니, 비록 왕위를 계승 받진 못했지만 사후에도 시대를 넘어 최고의 패션 아이콘으로서 ‘패션왕 부부’라는 칭호를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러브스토리


명품의 러브스토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커플을 논하라면 바로 나폴레옹 황제(1769~1821)와 조세핀 황후(1763~1814)이다. 27살의 청년 장교인 나폴레옹이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둘인 6살이나 연상 이혼녀인 조세핀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을 두고, 혹자는 코르시카섬 출신의 빽도 없고 가문도 없는 나폴레옹이 필요에 의해 귀족 가문의 조세핀에게 접근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죽을 때까지 조세핀을 찾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으로 보아 나폴레옹의 조세핀에 대한 사랑은 한결 같은 신념이었는지 모른다. 특히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며 유럽을 한동안 점령하기도 한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조세핀에게 “당장 달려갈 테니 씻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애원편지를 보낸 것은 천상 두 남녀가 요즘 세대의 말로 ‘케미컬적’으로 맞았던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 아이템들이 있는데 하나는 나폴레옹이 수없이 조세핀에게 보냈던 러브레터와 나폴레옹이 사치스런 조세핀을 위해 왕실 납품을 지정했던 보석하우스 ‘쇼메’, 그리고 케미컬적으로 꼭 들어맞았던 조세핀의 체취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랑세’ 향수를 들 수 있다. 정복자 나폴레옹이었지만 시니컬하며 사치스럽고 방탕한 그녀를 위해 생전에 전장에서도 수백 통의 연서를 보내 조세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때때로 선물공세를 펼쳐 전장의 용사답지 않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한 남자로 다가왔다.


결혼식을 마치자 마자 이탈리아 전쟁터로 떠난 나폴레옹이 편지를 통해 “아내여 내 삶의 고통이요, 기쁨이요, 희망이자 영혼인 사랑이여, 내 사랑 난 당신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고 싶소.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줄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존재라오”라고 쓴 내용만 보더라도 수 없이 많은 밀당으로 나폴레옹의 애 간장을 끓게 만든 그녀만의 사랑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이 나폴레옹을 완벽한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버린 그녀가 가장 애용했던 것은 현존하는 최고의 쥬얼리 하우스 브랜드인 ‘쇼메’였다.


나폴레옹이 황제 즉위식이 진행되던 날, 덩달아서 황후가 된 조세핀이 쓴 왕관이 바로 쇼메였으니 지금까지도 쇼메가티아라의 장인정신을 가진 유일한 브랜드로 인정 받는 데는 조세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겠다. 매일같이 궁전 안에서 호화스러운 파티를 열었던 조세핀은 추운 날씨에도 하늘거리는 엠파이어 드레스(허리선이 올라간 상체가 꼭 맞는 옷)에 간단한 모피숄을 두르는 스타일을 즐겨 입었고 귀족 부인들도 당시 트렌드 세터였던 그녀를 따라 입느라 감기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여기서 한가지 잠깐 언급하자면 조세핀은 시스루 패션의 원조였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속이 훤히 비치는 실크 드레스는 섹시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으며 당시 제작된 드레스만 700벌이 넘어 조세핀이 얼마나 패션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나폴레옹은 항상 그녀만을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도 잊지 않았는데 원래 향수를 좋아해서 직접 조향도 즐긴 그가 향수 제작을 명령해 탄생한 것이 랑세의 ‘조세핀 향수’이다. 랑세 가문은 천연식물과 꽃들이 풍부한 프랑스와 그라스지역에서 귀족들을 위한 향수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랑세 향수에 매료된 나폴레옹이 랑세를 황실 지정 조향사로 임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명품브랜드로 재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랑세는 400년간, 11대를 이어오면서 세계적인 천연 향수브랜드로 자리매김 해오고 있다.


이 밖에도 모나코의 레이니에 대공과의 결혼으로 화려한 은막을 뒤로 한 채 왕비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레이스켈리의 반 클림프아펠 진주 목걸이, 레이니에 대공과의 결혼 이후 만삭의 배를 가리려고 들었던 에르메스 백, 재키가 두 번째 남편인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결혼생활 내내 애용했던 구찌재키 백은 사랑이야기가 담긴 이 시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명품으로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MeCONOMY Novemb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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