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촛불시위를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된 이래,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반값 등록금은 여야 모두의 공통 공약이 되었다. 2015년 1월 5일, 교육부는 정부예산 연간 3.9조원을 투입하여 대학 부담 몫을 합쳐 연간 총 7조원이 지원되므로 전체 14조원으로 추정되는 등록금의 절반을 지원하게 되었으므로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공약이 달성되었다고 발표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소득 1, 2분위의 저소득층에게는 연간 최대 480만원까지 지급하고, 성적 기준을 완화하여 C학점까지도 지원받게 되어 전체 대학 재학생 210만명 중의 60%인 125만 명이 지원을 받으므로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50% 정도 경감되는 것 뿐만 아니라, 수혜 대상 학생 수 측면에서도 절반 이상이 혜택을 받으므로 실질적으로 반값 등록금이 달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값 등록금 정책의 효과와 한계
그런데 왠지 당사자인 대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올해 2월에 납부해야 할 등록금 마련의 부담이 별로 줄어들지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돈은 분명히 들어가는데,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반값 등록금 운동의 출발 당시부터 제기된 ‘정책의 방향과 슬로건의 잘못’에 기인한다. 대학등록금이 너무 비싸니 매학기 내는 등록금을 지금의 반 정도만 내도록 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한 반값 등록금 정책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촛불시위에 대학생들이 나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등록금 마련이 힘든 학생들과 학부모의 부담을 경감시키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옳은 요구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슬로건을 제안하면서 등록금이 비싼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질과 대학 운영시스템 등의 문제를 무시하고, 등록금 부담을 경감시키는 쪽으로 집중하다 보니, 정책적 대안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잘못 결정된 정책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오래 전부터 정부의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적해왔다. 첫째, 등록금을 대학의 이사회(실질적으로는 설립자나 소유주)가 마음대로 정하도록 하는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현재의 등록금 수준이 적정한 지에 대한 근거가 없는데, 이렇게 책정된 등록금의 절반을 국가가 지급하는 것은 그 의미가 반감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지금 반값 등록금 정책에서 대학이 절반을 부담하도록 한 것도 사실은 등록금을 더 높게 불러 놓고 25%를 깎아주면서 나머지 25%를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는 정책에 불과하다. 이런 정책은 교육의 질이 낮고 지원자가 적은 사립대학들이 국가의 지원으로 연명하도록 하는 부작용까지 낳을 수 있다.
둘째, 반값 등록금 정책을 시행해도 대학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동일 수준의 비용을 지출한다면 미국이나 호주 등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국비가 3.9조 원이나 매년 투입되는 데도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이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보고는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가 하는 것이라고는 문제가 있는 극히 일부 부실 대학을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 정도의 소극적인 방책뿐이었다. 국민의 세금인 정부재정을 지출하면서 교육의 질을 따지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이고 국고 유용의 방치라고 도 볼 수 있다.
셋째, 등록금 부담이 줄어도 생활비나 자취방의 임대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각종 어학원 등록비나 자격증 취득 관련 비용, 해외 어학연수 등 소위 스펙 개발비의 고정적인 지출이 줄어들지 않으니 학생들입장에서는 야간에 하는 아르바이트가 줄지도 않고, 지원되는 등록금만큼 공부할 시간이 더 생기지도 않는다.
복지국가를 위한 합리적 등록금 경감 정책
그런데 반값 등록금 정책이 실효성을 발휘한 사례가 있다. 서울시립대의 경우 서울시에서 대학에 직접 운영비를 지원하며 등록금 고지서 자체가 지금까지 납부하던 금액의 50%로 나가게 되니, 체감하는 학생들도 좋아하고 실질적으로 부담도 경감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인해 서울시립대가 합격선이 높아지는 등 신흥 명문대학으로 부상했다.
학교에 지원하는 서울시립대 보다 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반값 등록금 정책은 왜 효과와 만족도가 모두 낮은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대학 교육의 공공성 때문이다. 북유
럽의 복지국가가 아니라도 유럽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대학 교육이 무료이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대
학 학비를 학생과 학부모가 부담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선진국들 중에서는 거의 없다.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필요한 모든 책은 도서관을 통해 공급하고, 공부하는 데 사용하라고 국가가 많게는 월 90만원의 학생수당을 지급하는 나라도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대학 교육과 별도로 자신이 비용을 들여 스펙을 쌓을 필요도 없다. 심지어는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에게도 국가가 무료로 대학 교육을 시켜주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 교육의 수혜자는 학생과 가족이지만, 그들이 양질의 노동력으
로 성장하면 기업과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는 국가와 경제사회 전체에 이득이다.
기업과 국민이 낸 세금으로 대학 교육을 국가가 보장한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대학은 국립이거나 지방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설립한 대학이다. 엄청난 비용과 고급 인력이 투입되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대학을 공적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거시적으로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산업구조를 바꾸고 노동시장을 재편하여 수출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아도 급여의 차이가 적도록 하고, 적극적인 국가 복지를 보편적으로 강화하여 중소기업에 다녀도 재벌 대기업이나 공무원 보다 복지 혜택이 못하지 않는 제도를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또 대학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조건으로 대학에 대한 국가재정의 직접 지원을 강화하여 대학교수 확보, 도서관 확충, 실험실습 기자재 마련 등 구체적인 교육 내용의 질적 개선이 담보되는 항목에 대해서만 조건부로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10만명이 넘는 시간강사들에 대한 착취를 근거로 대학을 수익사업으로 운영하는 곳에 국가 지원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대학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고 좋은 인력들이 대학에 더 많이 채용되어 양질의 고등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가의 지원이 이루어져서 이것이 대학 등록금의 실질적인 인하로 연결되고, 국가의 지원이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기존의 ‘반값 등록금 정책’을 대폭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지국가의 발전 방향에 부합하는 우리의 이런 정책 제안들을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심각하게 검토해주기 바란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