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넘게 개발해 3,700억원을 투입한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6호’가 완성됐지만, 여전히 발사되지 못한 채 창고에 보관돼 있다. 러시아의 발사체 이용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산되면서 대체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후에도 해외 발사체 결함으로 발사 일정은 무기한 연기됐다. 이 과정에서 수백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으며, 비슷한 사례가 아리랑 7호, 차세대 중형위성 등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한국이 독자 발사체로 대형 위성을 쏘아올릴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정부는 누리호의 성능개량과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일정 지연과 사업 공백 우려는 오히려 산업 현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가 “버텨줄 주문이 없다”며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가운데, 정부의 중장기 수요 계약과 정책적 투자 없이는 ‘K-우주’의 뿌리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 3700억짜리 위성, 못 쏘는 나라… ‘발사 주권’ 없는 韓의 딜레마
가로·세로 50cm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 가능한 서브미터급 고해상도 영상을 제공하는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6호’가 10년 넘는 개발 끝에 완성됐지만, 여전히 지상에 발이 묶여 있다. 국내 기술진이 독자 개발했지만 발사체를 해외에 의존하면서 일정조차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아리랑 6호는 당초 2022년 러시아의 앙가라 발사체를 이용해 발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며 계획이 무산됐고, 정부는 유럽 발사서비스 업체 아리안스페이스와 급히 대체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리안스페이스의 발사체 결함으로 발사가 계속 미뤄졌다.
정부는 2012년 개발을 시작해 37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며 국산 영상레이더(SAR)를 제작했지만 발사를 기다리며 수백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러시아에 지급했던 발사 비용은 돌려받지 못했고, 위성을 창고에 보관하며 유지관리비와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아리랑 6호만의 일이 아니다. 차세대 중형위성 2호 역시 함께 러시아 앙가라 발사체에 실려 올라갈 예정이었으나 발사가 수년째 지연 중이다. 아리랑 7호도 발사가 계속 연기돼 올해 하반기 이후로 예정돼 있다.
위성이 창고에서 대기하면 불필요한 유지·보수·보관비용이 들어가고, 이를 관리하는 인력들의 업무량과 인건비가 늘어난다. 발사 계약이 취소될 경우 이미 낸 수백억 원을 돌려받지 못하기도 한다. 대체 계약을 급하게 맺으면 불리한 조건과 웃돈까지 감수해야 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우주 발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모든 문제의 근간이다. 이노스페이스를 비롯한 국내 민간 기업들이 발사체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은 주로 소형 위성 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대형 위성을 실을 수 있는 기술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또 독자적으로 개발한 누리호가 있지만 아리랑 6호처럼 대형 위성을 발사하려면 별도의 기술 보완이 필요하다.
김영민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 사무국장은 M이코노미뉴스에 “해외 발사체에 의존할 경우, 발사 일정의 불확실성과 외교적 변수 등 다양한 리스크가 존재한다”며 “러시아 발사체 이용이 전쟁으로 무산된 사례나, 유럽의 아리안스페이스와의 협력에서 발생한 연기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국내 발사체가 존재할 경우, 발사 일정의 유연성과 기술 주권 확보, 외화 유출 방지 등 다양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스페이스X나 아리안스페이스처럼 해외 경쟁사들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경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하루빨리 우리 발사체로 대형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우리 위성은 우리 발사체로”…누리호 헤리티지·차세대 발사체 사업 진행
이에 따라 최근 우주항공청 등 정부도 누리호의 성능개량과 차세대 발사체 개발에 본격 나서고 있다. 2021년 첫 시험발사를 시작으로 세 차례 궤도 진입에 도전해 온 중대형 발사체 누리호는 기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형 위성의 안정적 운송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 위성은 우리 발사체로 쏘아올린다’는 원칙 아래, 누리호의 성능 개량과 차세대 발사체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간발사체 산업활성화 토론회’에서 우주항공청은 이른바 ‘누리호 헤리티지’ 계획을 처음 공식 소개했다.

정혜경 우주항공산업과장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누리호 4~6차 발사가 예정돼 있지만, 이후 2028년부터 2031년까지는 발사가 없는 공백기가 발생한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방부의 요청으로 국방 시험위성 2기를 누리호로 발사하는 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2028년까지 약 1,578억 원을 투입해 누리호 1기를 추가 제작하고, 페어링과 발사운용체계를 개선해 경사궤도 발사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이번 발사는 누리호에 처음으로 국방 위성을 탑재하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자체 발사체 사용은 아리랑 6호와 같이 해외 발사체 의존으로 발생되는 리스크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진승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해외 발사체를 이용하면 단가만 보면 더 저렴할 수 있지만, 국내 일정을 해외 일정에 맞춰야 하는 비효율이 크다”며 “이런 비용을 국내 발사체 산업으로 흡수해 기술력과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도 속도를 낸다. 차세대 발사체는 재사용형 로켓으로 전환해 민간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다양한 탑재체를 유연하게 수송할 수 있는 모듈형 시스템으로 2032년 발사가 목표다.
◇ “버텨줄 주문이 없다”…사업 없는 공백기에 흔들리는 ‘韓 우주생태계’
정부에서는 사업 공백기를 없애려 누리호 헤리티지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오히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누리호 추가 제작 이후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차세대발사체 개발 일정이 당초 2030년에서 2032년 말로 연기되면서, 산업계가 우려해온 ‘발사 단절’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발사체 분야는 단일 프로젝트 공백이 길어질 경우 부품 협력사와 제조 라인이 붕괴되는 특성이 있다.
경남지역 핵심 부품 공급업체들은 “실물 발사를 통한 경험 축적과 수익 모델이 없다면 설비 가동률과 전문 인력 유지가 불가능하다”며 “민간이 버텨낼 수 없는 기간이 올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가장 시급하게 거론되는 대책은 정부가 중장기 수요 예측과 발사 계획을 명확히 수립해 안정적 ‘주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준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무는 “지금 누리호 6차 발사 부품까지 납품을 끝낸 협력업체들이 많지만, 이후 발사 공백으로 생산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정부가 공공분야 수요를 바탕으로 누리호를 여러 해에 걸쳐 반복 발사하는 ‘블록 바이(Block-Buy)’ 계약을 추진한다면 산업 생태계 존속은 물론 가격 경쟁력도 함께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블록 바이’는 수년간 일정 물량을 일괄 계약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 전무는 “2028년부터는 국내 위성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에 국내 발사 역량이 유지된다면 수요를 자체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발주할 저궤도 위성 발사 수요만 수십 기에 달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간기업의 시장 진출도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는 “발사체 사업화는 실적이 전부”라며 “첫 발사 성공 이력이 있어야만 국내외 고객이 상업 계약을 고려한다. 정부가 공공 발사 서비스를 일정 비율 민간에 발주해야 사업화가 가능하다”고 요청했다.

◇ K-스페이스X 만들려면 정부 주도 ‘발사체 장기계약’이 관건
우주 발사체 민간기업들은 생태계 유지와 발전을 위해 정부 주도의 장기적인 발사체 사업 계획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성공은 단순히 일론 머스크의 추진력만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해주는 정부 사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미국 NASA는 상업용 궤도운송서비스(COTS)를 통해 스페이스X에 2억7800만달러를 지원했다. 2008년엔 16억달러 규모의 화물운송 계약을 체결하며 민간 우주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그 결과, 스페이스X는 민간 최초의 로켓 발사 성공에 이어 2015년 ‘재사용 로켓’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냈다. 발사체를 회수해 재사용하면서 발사 단가는 획기적으로 낮아졌고, 결국 시장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본은 2002년 자국 발사체 ‘H-IIA’의 상업화를 선언한 뒤, 정부 위성 수요를 토대로 매년 1~2회 정기 발사를 이어오고 있다. 기술은 물론 제도를 기반으로 민간 발사체 산업을 키웠다. H-IIA 개발 이후엔 비용 절감을 위해 H3 발사체를 개발하며 업그레이드를 지속했다. 일본 정부는 민간기업 주도의 발사체 사업 전환을 추진하면서도 발사비 지원, 제도 보장 등을 통해 산업기반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누리호보다 압도적인 가격차이로 위성 상당수를 스페이스X에 의존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 발사체 산업은 반복발사의 기회도, 민간 시장 확보도 없이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김영민 사무국장은 “발사체 산업은 구조적으로 민간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정부 수요가 끊기면 기업 존속 자체가 어렵다”며 “스페이스X의 성공도 결국 미국 정부의 장기 수요 계약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처럼 1년 단위 예산 편성으로 발사 계약을 끊어서 진행하면 오히려 단가가 올라간다”며 “우리도 정부가 10년 단위로 발사 물량을 일괄 계약해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조 원을 들여 확보한 발사체 기술이 단절되지 않으려면 지금이야말로 중장기적 투자와 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