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국정과제인 ‘농어촌기본소득’ 사업의 시범사업 대상지로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 전북 순창, 전남 신안, 경북 영양, 경남 남해 등이 선정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6~2027년도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공모 결과 7개 군을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시범사업에 선정된 지역의 주민들에는 월 15만 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이 2년 간 지급된다. 정부는 해당 사업을 통해 농어촌 여건에 맞는 지속 가능한 정책 모델을 발굴하고 효과를 검증해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수도권 인구가 집중되며 정부는 지난 2022년부터 ‘지방소멸대응기금’과 ‘고향사랑기부제’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이번 시범사업이 실효성 있는 국정과제로 자리 잡으려면 추진 방식과 사업 전체의 종합계획에 관한 폭넓은 소통과 의견 수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정부 정책이 효과를 못 본 건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했기 때문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과제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지속가능한 정책 방향은?" 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는 그간 많은 예산을 퍼부었음에도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지역민들이 요구하는 것과 달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발제를 맡은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은 “2021년,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 전국의 8개 도, 18개 시·군을 순회하며 3천 명 이하 면 지역민들에게는 월 30만 원의 ‘농어촌주민수당’을 지급하고, 대상 지역을 순차적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당시 농어촌기본소득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기본소득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했기 때문"이라며 "농어촌 주민의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역할에 대한 보상적 성격의 수당이라는 점을 분명하려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어촌주민 수당은 단순한 현금 지급이 아니라, 지역과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인정이며, 농정과 지역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시금석"이라며 "이 제도를 통해 농촌은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망을 갖고, 지속가능한 생활 기반 마련은 물론, 국토·환경·문화의 다원적 기능이 지켜진다”고 강조했다.
우리와 달리 유럽에서는 농민을 ‘국토의 정원사(gardener of the land, gardener of the nation)’라고 부른다. 단순한 농업 생산자가 아니라, 경작을 통해 들판·숲·하천·마을 풍경을 가꾸고, 토양·물·생물다양성을 지키며, 공동체의 생활양식과 전통문화까지 유지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농민의 다원적 기능을 인정해 직불금, 환경·생태농업 지원, 경관·문화유산 관리 수당, 소규모·고령 농민 특별수당 등 다양한 형태로 보상한다. 또 농민이 농촌에서 지역경제·공동체 활동, 전통음식 생산·판매 등을 수행할 때도 이 같은 지원은 이어진다.
박 이사장은 "농어촌 주민이 의식적으로 지킴이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실제로 농촌에 살며 지역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지킴이 기능"이라고 강조하며 "이들이 지역을 떠나면서 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화됐다"고 강조했다.
◇ 농촌 주민에 대한 특별한 조치 필요해
농촌 주민이 지킴이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토와 환경은 파괴되고, 전통문화와 공동체는 붕괴해 결국 도시민의 행복까지도 해치게 될 것이라며, 이들이 지역을 지키며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려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박 이사장은 “농어촌 주민수당은 이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누리며 지역을 지키는 데 기여한다”며 △지역경제 활성화, △주민 생활 안정, △공동체 유지와 정주 기반 강화, △국토·환경·문화의 다원적 기능 보존, △주민자치 등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 과정없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농어촌기본소득 지급의 정당성과 정책 효과, 그리고 명칭과 지급 대상, 지급 금액 및 재원 조달 방안, 추진체계 등이 졸속으로 추진될 경우 농어촌에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시범사업이 공모되면 지역 간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며 "더욱이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리며 재정 여건이나 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기초단체나 광역단체 모두 지방비 부담 60%(광역 30%와 기초 30%가 원칙인데, 일부 지역은 유치운동을 할 정도로 적극적이지만, 지방비로 어려움을 겪는 군의 경우 신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농어촌 기본소득이 군 단위로 지급되면서 치명적인 문제점도 생긴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89개 지역 가운데 69개 지역으로 대상을 제한했는데, 「지방분권균형발전법」에 근거해 대상이 된 지자체의 시범사업에 대해서는 농식품부가 담당하도록 했다. 그런데 농식품부가 ‘농어촌지역’을 군 단위로 잡으면서 54개 도농통합시의 면 지역이 대부분이 제외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이유 등으로 농어촌기본소득을 농식품부가 담당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예산상 모든 농어민에 지급할 수 없어 선별해야 한다면 인구감소가 심각한 면 지역부터 지급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은 다만 “지방비 부담을 하는 경우 자치단체장으로서 읍 지역을 제외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면서 "농어민 수당을 전액 국비로 지급해야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농어민 수당 30만원과 관련해서는 “도시민과 농촌주민의 소득격차가 대략 월 30만 원 정도"라며 "농어촌 주민의 대상 설문조사에도 ‘월 30만~40만 원 지급이 적당하다’는 답변이 있었고, 최근 국회에 발의된 ‘지역소멸 위기대응을 위한 농어촌기본소득법안’(신정훈・용혜인 의원 공동대표발의)은 월 30만 원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 3천 명 이하의 지역부터 월 30만 원을 지급하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 가자"고 제안하며 “농어민 수당을 월 30만 원씩 인구 3천 명 이하 지역, 약 139만 명에게 지급한다면, 연간 약 5조 원이 필요하다. 이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월 15만 원을 69개 군 272만 명에게 지급하겠다는 본사업 예산 연간 4조 9천억 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2024년 말 기준으로 전국 1,177개 면 가운데 인구 3천 명이 안 되는 면은 711개(1,384,514명)이다. 인구 5천 명이 안 되는 면의 인구수는 967개 면(2,349,399명)이다.
◇ 농어민 수당 논의... 농어민 기본소득·농어촌 기본소득 등의 흐름
이어진 토론에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 소장은 “농산어촌개벽 대행진에서 시작된 농어촌주민수당 논의는 농어민기본소득→농어촌기본소득 등의 흐름이 있었다. 다만, 민간 영역에서 더 활발한 토론과 합의가 필요했었다”며 “그러나 내부적으로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대선과 국정기획위원회 단계를 거쳐 현재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발표됐다"고 짚었다.
이어 “현재 기본소득을 강조한 그룹은 도시민과의 소득격차를 강조하며 무조건적 지급을, 주민수당 그룹은 공익적 활동에 대한 대가를 강조하고, 농촌위기에 대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농민운동 그룹은 기존의 농어민수당은 그대로 두고 추가적으로 기본소득(주민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농식품부 발표내용에 대해 페이스북 반응을 보면 ‘총론 찬성, 각론 비판’이 대세인데, 근본적인 관점에서 사업취지와 목표에 대한 합의는 여전히 많이 미흡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시범사업 대상 지자체 선정을 위한 심사과정에서 이것이 얼마나 반영되었을지는 의문”이라며 “기본소득으로 지급되는 지역사랑상품권의 집행방식에 주민들이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인 지급’으로 그치고, 개인이 결정하는 방식은 ‘행정 주도’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며 “‘군 단위’ 전체 일률 시행보다 읍면자치 관점에서 ‘면 단위’ 지급이 더 효과적이다. 군청소재지 읍과 그렇지 않은 읍면은 구분하여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인구 3천 명 이하’라는 경계 구분이 또 다른 쟁점을 만들 수 있지만, 소규모 면부터 시작하자는 제안에는 적극 찬성"이라며 "‘4천 명 이하 읍면’으로 하면 지방 지자체의 거의 대부분 읍면은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전액 국비’로 하는 방식은 그동안 농식품부에서는 시도한 적이 없었지만 공익직불금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며 “재원도 정책 의지만 있다면 못 할 게 없다. 다만 지자체 행정이나 주민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 소장은 “10∼20%를 공동체 기금으로 조성해 주민이 자율적으로 집행한다면 개인 지급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지자체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지역 내 선순환과 외부 유출 막고자 지역화폐로 지급
서봉균 농어촌기본소득운동전국연합 정책실장은 “‘인구소멸극복’을 목표를 잡으면 2년 시범사업에서는 솔직히 어렵다"고 말한 뒤, "‘지방소멸'을 극복한다는 방향을 잡은 뒤 농어촌기본소득이 지역 내 선순환되고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지역화폐로 했다. 일부라도 현금으로 지급하지 못한 점은 분명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박형대 전남도의원은 "자체 재원 마련 계획에서 재생에너지 난개발 우려 및 무리한 계획이 남발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 뒤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영양군이나 신안군은 재생에너지 관련된 부분이 강조됐는데, 자칫 기업 중심의 난개발을 조장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재원은 국비 중심과 일정 정도의 지방비로 부담하되, 지방소멸대응기금 활용, 교부세의 지방자율권 확대를 열어줘서 지방재정운용 체질 개선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묘 “지급대상은 정책 타당성을 기초로 하되, 국민적 합의 및 현실 진단을 고려해 면단위로 한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군단위 및 도농복합도시의 면단위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시범대상 69개 군으로 한정한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
이에 김영수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과장은 “시범 대상을 69개 군으로 한정한 것은 경기형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이 면(청산면) 단위로 시작됐고, 인구가 적은 지역은 읍면 간 차이가 크지 않아서 우선 군 단위에서 실험을 해보자는 취지였다”며 “또 하나는 읍면을 특정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어 행안부 소관법(지방분권균형발전법)을 따른 것도 현실적인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인구감소 지역을 읍면 단위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황으로, 해당 제도가 마련되면 면, 읍, 군 단위별 대상 지역을 본 사업 전에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도입 및 관련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정부는 농식품부, 기재부, 행안부, 해수부, 복지부가 참여하는 TF팀을 구성해 운용하고 있다.
김 과장은 "현재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사업 세부시행방안 마련 및 보완 등을 위해 지자체와전문가가 함께 자문회의를 운용 중”이라며 "기재부에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비타당성조사 등에 대해 면제 요청을 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역에 대한 고민은 많지만 그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며 "다행히 농어촌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에 살 수 있게끔 도움을 주려는 거다. 15만 원이든 30만 원이든 큰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농업 현실이 만만치 않고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반길 일"이라며 "전국이 균형 있는 발전을 했으면 하는 게 농사짓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바램”이라고 말을 맺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신정훈(나주·화순)·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임미애(비례대표)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지역재단 등이 주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