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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품셈’ 거부하고, ‘표준시장단가’ 선택한 성남시


<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3대 무상복지’에 이어 이번에는 공공 공사의 ‘표준품셈’ 문제로 중앙정부와 성남시가 맞붙었다. 결국 성남시는 정부의 ‘표준품셈’을 거부하고, ‘표준시장단가’로 자체발주를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성남시는 10억 이상 공공발주 사업의 건설공사 내역을 시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공개항목은 설계내역서·도급내역서·하도급내역서·원하도급 대비표·설계변경 내역 등이다. ‘건설공사 세부내역’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공개하는 것은 최초다. 성남시의 ‘표준품셈’ 거부로 불거진 논란을 살펴봤다.


지난해 성남시는 공공산후조리원·청년배당·무상교복 등 이른바 ‘3대 무상복지’ 논란으로 중앙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이재명 시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는 등 논란은 전국으로 번졌다. 하지만 결국 복지부는 불수용처분을 내렸다.


이에 지난 1월4일 이재명 시장은 긴급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3대 무상복지정책을 전면 시행한다고 밝히면서 “이미 법적근거(조례)를 만들고 총194억원의 필요예산을 모두 확보했으나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며 “이번 과정을 통해 단체장과 의원이 주민직선으로 선출돼 독자적인 집행체계를 갖춘 지방자치 단체는 정부 산하기관이 아니라 헌법이 인정하는 독립된 자치정부임을 증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중앙정부와 마찰을 이어가던 성남시가 이번에는 공공 공사에 있어 정부의 ‘표준품셈’을 거부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재명 시장, “표준시장단가로도 충분하다”


지난 2월1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성남시청 한누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헌법상 자치단체인 성남시의 발전적 정책시행을 격려하고 방만한 정부재정운영의 개선계기로 삼아야 함에도, 성남시 복지정책에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방해하더니 급기야 ‘제2의 4대강사업’ 또는 ‘지방판 4대강사업’으로 불리는 ‘공사업자 퍼주기’ 예산낭비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자체가 300억원 미만의 공사를 할 때 ‘표준시장단가’ 대신 ‘표준품셈’으로 공사원가를 산정하도록 한 정부의 지침에 대해 이재명 성남시장이 ‘제2의 4대강사업’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정부가 지자체의 예산낭비를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10월 300억원 미만 공사의 공사비를 산정할 때 지방계약법이 정한 표준시장단가 대신 표준품셈으로 산정하도록 ‘지자체 입찰 및 계약집행기준(행자부예규)’를 개정
했다.




건설공사비 산정기준은 ‘표준시장단가’와 ‘표준품셈’ 두 가지가 있다. ‘표준시장단가’란 과거 수행됐던 동일 종류의 공사 계약(거래)단가를 축적해 만든 기준으로 공사비를 책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표준품셈’이란 대표적인 공종·공법을 기준으로 삼아 소요되는 재료량·노무량 및 기계경비 등을 수치로 제시한 것을 말한다. 표준품셈은 시장거래 가격을 반영 못해 수십 년간 예산낭비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받아 왔다.


이 시장은 “실제 시장거래 가격인 표준시장단가에 의하더라도 철저한 관리·감독과 부당하도급 방지 등으로 공사품질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지금까지 공사비가 적다고 어떤 문제도 없었으니, 공사비 증액은 공사업자 배불리는 정경유착 예산 퍼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성남시는 지난해 12월 표준시장단가로 산출한 서현도서관의 공사비 204억원에 대해 조달청에 원가 검토 협의를 의뢰했으나 조달청은 표준품셈을 적용하라고 요구했고, 시가 지난 1월21일 재차 원가검토를 협의요청 했지만 조달청의 답은 전과 같았다.


“자체발주 검토할 수밖에 없어”


성남시는 올해 서현도서관을 비롯해 태평4동종합복지관, 야탑청소년수련관, 복정도서관 공사에 대한 입찰을 예정하고 있는데, 행자부예규에 따라 표준품셈으로 원가를 산출할 경우, 자체지침인 표준시장단가로 산정한 721억원보다 약 50억원이 비싼 771억원이 소요된다. 이 시장은 “성남시 연평균 공사발주비는 약 1천523억원(2014, 2015년 기준)이니 예규에 따를 경우 연간 약 107억원이 지속적으로 낭비될 것이고, 전국적으로 보면 그 금액은 천문학적 규모에 이를 것”이라며 “이는 성남시민 1인당 1만1천원이 넘는 엄청난 시민혈세를 공사업자 배불리기에 퍼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돈이면 성남시의 무상교복(25억원)을 4번, 또는 모든 산모에 산후조리비 110만원 지급, 또는 23세 청년에게도 청년배당으로 약100만원씩을 지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성남시 3대 무상복지사업에 대한 정부의 반대 이유가 지속적 재원확보의 어려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강요하는 이런 ‘세금낭비’를
막는 것이 바로 성남시가 해 온 가중 중요한 복지재원 확보방안”이라며 “정부가 방해만 하지 않고, 낭비 강요만 하지 않아도 상당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시장은 “불법·부당한 강요가 계속된다면 ‘시장 지시사항’으로 추가의 원가검토 협의를 생략하고 자체적으로 발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힌다”며 “선택해야 한다면 제2의 4대강사업이 아니라 주민복지를 선택할 것이고, 세금 퍼주기라면 공사업자가 아닌 시민여러분께 드리겠다”고 밝혔다.


‘표준품셈’ 논란


‘표준품셈’은 정부 등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건설공사의 예정 가격을 산정하기 위한 일반적인 기준으로 1962년 최초로 제정됐다. 하지만 1994년 건설기술연구원은 ‘적산제도 개선방안 연구용역’에서 표준품셈에 대해 “시장 실태를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가 없어 입찰가격과의 괴리가 존재하는 등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아 외국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정부는 표준품셈 단계별 폐지를 추진했으나 1997년 IMF 사태이후 경기 위축을 이유로 추진을 중단했다.


참여정부 역시 2003년 4월 표준품셈을 폐지하고 실적공사비 적산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건설업자들의 반발로 2006년이 돼서야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그마저도 정권이 바뀌면서 2009년 전면적용에서 50% 수준 적용으로 후퇴시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그러나 실적공사비 역시 당시 부풀려져있던 원도급 계약단가를 현실화 없이 적용해 실제가격보다 높게 책정됐다”며 “정확한 의미의 시장가격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1996년부터 2004년까지 건설업자들이 만든 이익단체인 대한건설협회에 표준품셈 관리를 위탁하기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경실련은 “2006년 조달청도 실적공사비와 품셈가격을 비교했을 경우, ‘실제공사비는 품셈가격 대비 약 78%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면서 “이것은 정부가 적어도 22%의 거품을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실련은 ‘표준시장단가’ 역시 실제 시장거래 가격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단순히 ‘표준시장단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장에서 이뤄지는 가격이 얼마인지 밝히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남시, 10억 이상 공공발주 건설공사 내역 공개 결정


이후 ‘표준품셈’에 가로막힌 성남시는 자체발주를 검토하면서 4월21일 10억 이상 공공발주 사업의 건설공사 내역을 시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공개항목은 설계내역서·도급내역서·하도급내역서·원하도급 대비표·설계변경 내역 등이다. ‘건설공사 세부내역’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공개하는 시도는 최초다. 앞으로 성남시에서는 각종 공공건물이나 도로 등이 어떻게 설계됐고, 각각의 건축공사나 토목공사·조경공사 등에 얼마가 드는지 누구나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공건설은 공공 발주자로부터 도급을 받은 건설사들이 직접시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2, 3단계의 하도급을 통해 수행된다. 도급내역이란 공공과 계약을 맺은 원도급건설사들의 공사비 내역이고, 하도급내역은 원도급업체와 계약한 하도급업체들의 공사비 내역이다. 원·하도급대비표는 원도급 건설사와 하도급건설사들의 세부공종별 공사비 비교표이다. 비교를 통해 원청건설사들이 성남시로부터 받아간 공사비를 실제 공사가 이뤄지는 하청단계에서는 얼마로 집행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경실련은 “공공사업 공사비내역은 발주자의 예산낭비와 건설사들의 부당이득을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보니 철저하게 비공개돼 왔다”면서 “정부 등은 다수의 대법원 판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공개로 일관해 시민들이 수년간의 소송을 반복해야 했다”며 성남시의 이번 결정에 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김남준 성남시 대변인은 “공공건설 공사 내역이 공개되면 민간공사와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공공건설 공사를 할 때 지적되던 부풀리기 설계 여부가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세금을 낭비하지 않고 공공건설 공사 가격이 합리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앙정부도 성남시의 건설공사 내역 투명공개에 동참해 달라”며 “고질적인 공공 공사비 부풀리기 관행을 뿌리 뽑는 환경을 만드는데 함께 해 달라”고 전했다.



결국 자체발주, 도서관공사 경쟁률 ‘369:1’ … 11억 절감


성남시가 정부의 ‘표준품셈’에 반대하자 건설업계 등은 “공사비가 적으면 결국 사업성 악화로 유찰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그래도 사업성 악화로 유찰되는 공공사업이 많아지는 상황에 예정공사비 마저 줄일 경우 공공공사 부문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의 비싼 공사비 산정방식(표준품셈)에 반대하며 시장기준가격(표준시장단가)으로 자체발주한 성남시 서현도서관 건립공사에 369개 업체가 입찰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남시가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해 산정한 서현도서관 건립공사비는 총 207억원으로 표준품셈을 적용한 218억원 보다 약11억원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었다. 조달청은 성남시가 계산한 공사비가 너무 낮다며 지난해 11월부터 4차례나 보완을 요구하는 등 표준품셈 산정을 강요했다.


하지만 결국 성남시는 정부의 비싼 공사비 산정을 거부하고 4월12일 서현도서관 건립공사를 자체 발주했고, 4월26일 개찰을 완료했다. 착공은 5월10일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세금을 아끼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며 “앞으로도 표준품셈을 거부하고 표준시장단가로 예산을 아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적정공사비 산정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


정부 등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건설공사의 예정가격을 산정하기 위한 일반적인 기준으로 1962년에 최초로 제정된 ‘표준품셈’ 제도는 수시로 변하는 시장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공법을 받아들이는데도 한계를 드러내 적정공사비를 산출하는데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따라 다닌다. 실제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공사비 적산기능을 민간에 이양하고,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자가 적정 공사비를 산출하고 정부와 업체는 이에 따라 공사비를 결정하고 있다.


2·3단계의 하도급을 통해 이뤄지는 우리 건설산업의 특성상 적정공사비 산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사비 산출이 낮아도 높아도 부작용은 따라 다닐 수밖에 없다. 원청인 종합건설사 뿐만 아니라 전문건설업체가 함께 공생하기 위해서는 적정공사비 산정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해 보인다.


MeCONOMY Magazine Ma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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