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보수단체를 불법 지원한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유죄를 확정했다. 다만 강요죄에 대해선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13일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직권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한다"라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에게 직권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범죄이고, 직권은 국가의 권력 작용에 의해 부여되거나 박탈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경련에 특정 정치성향의 시민단체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구한 행위는 대통령비서실장과 정무수석비서관실의 일반적 직무 권한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라며 "전경련 부회장은 위 직권남용 행위로 인하여 전경련의 해당 보수 시민단체에 대한 자금지원 결정이라는 의무 없는 일을 하였다는 원심의 판단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고 했다.
앞서 김 전 실장은 2014~2016년 전경련에 총 21개 보수단체에 대해 약 24억원 가량을 지원하라는 부당한 압력을 넣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전 수석 역시 2015년부터 1년간 31개 단체에 대해 35억여원의 지원을 강요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김 전 실장에 징역 1년 6개월을, 조 전 수석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강요죄 부분에서는 대법원의 판단이 달랐다.
대법원은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라며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이 그 지위에 기초해 어떠한 이익 등의 제공을 요구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요구를 협박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이어 "원심은 피고인들이 전경련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윗선을 언급하거나 감액 요청을 거절하거나 자금집행을 독촉하고, 관련된 보수 시민단체의 불만 및 민원사항을 전달하며 정기적으로 자금지원 현황을 확인했다"라며 "전경련 관계자들의 진술은 그 내용이 주관적이거나 대통령비서실의 요구가 지원 대상 단체와 단체별 금액을 특정한 구체적인 요구라서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꼈다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