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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28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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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유학의 ‘이치’ 탐구 정신

한국의 정신문화를 찾아서 <14>

한국경제가 1953년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반세기 남짓 기간에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할 수 있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여러 원인을 들고 있겠으나 조선 선비의 ‘이치 탐구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고 본다. 조선 유학의 치열한 이치탐구 정신의 뿌리는 우리 민족의 ‘재세이화’의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재세이화’에 대해 여러 모호한 해석들이 있는데, ‘세상을 보살펴 이치로 화하게 한다’는 뜻으 로 보고자 한다. ‘이(理)’는 이치(理致)로도 쓰인다. ‘재(在)’는 있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다’, ‘살피다’의 의미도 있다. 세상과 인간의 이치를 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신 전통은 조선 성리학에 와서 더욱 정밀해지고 나아가 퇴계 선생에게 와서 ‘하늘과 하나 되어 지극한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정신 및 종교적 경지를 열었다. 

 

 

‘이치’는 형이상학적 진리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동양은 자연철학이 미발달하여 서양과학을 만나기 전까지 형이상학적 진리를 일관되게 추구해온 학문 전통을 갖고 있다. 형이상학적 진리는 우주와 자연의 관찰에 의한 가설과 선현들의 깨달음, 합리적 추론과 체험에 의한 깨달음 등을 근간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돼야만 하는 과학적 진리와는 다른 사유 방식이다.

 

형이상학적 진리 혹은 이치는 종교 교리와 비교해보면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불가능한 믿음 체계라는 점에서 유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나 전자는 이성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데 반해 후자는 ‘믿음’의 강조, ‘기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유학자는 하늘을 경건하게 받들고 천도 따르기를 열심히 하지만 기도하여 복을 달라고는 않는다.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 인식은 무소부재, 전지전능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기독교에서는 기도가 강조되고 신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염원이 강렬해 결국 과학의 발달을 이끌어낸 것으로 이해된다. 동양의 신(神) 인식은 신의 ‘완전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신의 완전성에 관한 초점은 자연히 우주와 자연, 인간세상, 인간관계, 인간의 마음이 어떤 원리와 이치,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가를 천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유학이 유독 주역을 학문의 근간으로 삼은 배경엔 우주와 인간세상, 개인 운명을 관통하는 원리와 이치를 포착하려는 열망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 이치는 우주와 자연, 인간세상, 인간 자신에 대한 오랜 체험과 숙고를 통해야 확신에 이를 수 있는 까닭에 중년 이후 노년에 이르러 완성된다. 참된 이치를 좀 더 이른 나이에 얻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 속의 물욕과 쾌락적 욕망이 방해를 놓기 때문에 이치 공부는 자꾸 지체된다.

 

조선 성리학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이치를 밝히는 데 힘쓰는 것과 아울러 실천적인 수양을 특히 강조했다 조선 선비들이 이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율곡이 왕에게 바친 「성학집요」에 잘 나와 있다. 그중 일부를 발췌했다.  


“신(율곡)이 살피건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때로는 책을 읽어서 의리를 밝히기도 하고, 때로는 고금의 인물을 논하여 잘잘못을 가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사물에 접해서 그 옳고 그름에 따라 처리하는 것 등이 모두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에 해당됩니다.”


소씨가 말하였다.

“널리 배우되 뜻이 알차지 않으면, 아는 것은 많겠지만 이루는 것이 없을 것이요, 엉성하게 묻고 원대한 것만 생각하면 수고에 그칠 뿐 어떠한 효과도 얻지 못한다.”


공자가 말하였다.

“배우기만 했지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할 뿐 배우지 않으면 위태하다.”


주자가 말하였다.

“배운 것을 마음으로 깊이 이해하여 실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사리에 어두워져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한 것을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위태하게 되며 불안하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사물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것은 모든 사물들의 이치들을 하나하나 다 탐구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도 만 가지의 이치를 다 알 수 있다는 뜻입니까?”
정자가 대답하였다. “오늘 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내일 또 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나날이 자꾸 쌓아나간 다음 에라야 툭 트여서 하나로 통하게 되는 그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또) 어느 한 사물의 이치를 극진히 탐구하면 다른 것들 은 유추해 나갈 수 있다. 만일 한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없거든 우선 다른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때로 쉬운 것을 먼저 하 기도 하고, 때로 어려운 것을 먼저 하기도 하여 공부하는 사람 각자의 수준에 따라야 한다. 만물은 저마다 하나의 이치를 갖고 있지만, 모두 한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유추해 보면 모두 통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일이 없을 때에는 그러한 줄을 알지만, 일에 임해서 잘못을 저지르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일의 처리가 불분명한 경우에 해당된다.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은 한가할 때에 해야 하지, 일에 닥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가할 때 도리를 이 해하는 것이 분명하면 일이 닥쳤을 때 그 일의 처리가 저절로 분명해질 것이다.”


섭씨가 말하였다.

“밖으로 물욕에 흔들리지 않으면 마음이 맑아질 것이요, 안으로 평소 덕성을 함양하면 밝은 지혜가 생긴다.”


주자가 말하였다.

“학자들이 해야 할 공부는 오직 덕성의 함 양과 사물의 이치를 연구함에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공부는 상호 보완적이어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면 몸과 마음을 성실 경건하게 하는 공부가 하루하루 더욱 진보할 것이요, 몸과 마음을 성실 경건하게 하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공부가 날마다 더욱 치밀해진다.”


주자가 말하였다.

“이치의 탐구는 얕은 데에서 깊은 데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순서에 따라 차츰차츰 나아가야 할 것이요, 조급히 서두르거나 절박한 마음으로 구해서는 아니 된다.”


신(율곡)이 살피건대, 생각함에 얻음이 있어 스스로 확신이 서고, 속 시원히 기뻐하며 깨끗하여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있게 되면, 곧 진실로 체득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무언가를 얻은 것 같으나 믿는 가운데 의심이 있으며, 위태롭게 편안하지 못하여 얼음이 녹듯 석연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 였다면, 이것은 억지로 추측한 것일 뿐이요, 진실로 얻는 것 이 아닙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힘들게 생각하여도 마침내 시원하게 풀리지 않고, 마음이 막히고, 어지러우면 모름지기 일 체를 쓸어 버려서 가슴 속을 한 물건도 없이 비워놓은 다음에 다시 정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도 오히려 환히 터득하지 못하면 우선 그 일은 놔두고 다시 다른 일을 궁리해야 합니다. 궁리하고 또 궁리하여 차츰 마음이 밝아지면 전날에 통하지 못한 것이 홀연히 스스로 깨닫게 되는 때가 있을 것 입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노력을 쌓아 하루아침에 환하게 꿰뚫어 사물을 깊게 연구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이 다하지 않음이 없는데까지 이르면, 나의 지식과 견문이 성현과 부합하여, (그 결과) 좋아하고 즐기려는 욕심의 유혹이나 공리의 설과 이단의 폐해가 나의 마음을 더럽힐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큰길이 확 트여서 먼 길을 가는 데도 의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뜻을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이르게 되어, 큰일 을 처리하고 대업을 결정하면 마치 강물을 터 놓은 듯하여 아무도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성학집요」, 고산 역해, 동서문화사)

 


퇴계의 이치 탐구 


조선 유학자 중에서 이치공부가 가장 깊은 학자는 누구일까. 퇴계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퇴계의 심성 탐구는 여러 후학들이 익히 지적한 대로 종교적 경지에 도달했다. 동양의 신 개념은 주자학으로 확립돼 가는 과정에서 인격성은 애써 무시하고 생명성이 희미한 태극과 리기(理氣)만 남게 되었다. 퇴계는 평생에 걸친 이치 탐구로 태극과 리기의 벽을 뚫어내어 유일신적 전지전능함, 기독교적 신의 속성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발견’이라기보다는 ‘회복’,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듯하다.  

 

퇴계의 이치탐구는 드디어 하늘과 자연과 하나 됨의 경지에 도달하여 경건한 기쁨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남긴 산수시와 매화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퇴계는 매화시를 106수나 썼다. 퇴계연보에 따르면 퇴계는 임종하는 날 아침에 시봉하는 사람에게 아끼는 분매에 물을 주라고 하고 그날 저녁 5시경 부축하여 일으킴을 받고 좌정하자 평안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조선 선비의 치열한 이치 탐구정신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실학자들의 서학 탐구와 기독교 전파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계 승되고 있다. 
 

MeCONOMY magazine Jun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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